적멸을 위하여
불어오는 초여름 바람이 시원해 창문을 열어둔다. 도시의 바람이지만, 숲을 거치며 산소를 담아서 인지 아침바람은 산중의 바람처럼 상쾌하다. 문득 무산 조오현 스님이 생각났다. 스님의 시집 ‘적멸을 위하여’를 꺼내 다시 읽어본다. “천방지축 기고만장 허장성세로 살다보니 온몸에 털이 나고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 억!”... 그렇게 무산스님은 가셨다 살아오면서 참 많은 사람을 알고, 만나고, 다투고, 그리워도 했건만 어찌 무산스님은 알지 못했을꼬? 가신 뒤에야 스님의 시를 통해 고요하고 맑은, 가득한 비움의 적멸을 그려본다. 스님은 이미 적멸인데 ... 또 적멸을 위하여? 불에 달구고, 모루 위에 두드리고, 담금질을 해서 더 단단해지고, 내 안에서 더 맑은 소리가 나도록 매질을 반복하는 것일까? "하루라는 오늘..
유초잡감
2024. 5. 23. 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