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5시간이라는 여유가 생겼다.
'짬' 보다는 길고 한정된 시간이지만, 내 마음이 통제받지 않고 여유를 가지는 시간이기에 좋은 말로 '한가하다'는 표현을 써보고 실제 그렇게 느끼고 싶다
벌써 5월 중순이다
4월 중순 서울에 올라왔을 땐 서울에도 벚꽃이 만개하고, 창경궁과 비원의 연둣빛 신록 가운데 듬성듬성 수놓은 하얀 꽃이 라일락임을 알 수 있었는데, 이젠 뭉게구름처럼 거목들이 만들에 낸 불룩불룩한 숲 덩어리만 보일뿐 그나마 늦게 피는 빨간 연산홍도 보이지 않는다.
서울에 올라오면 늘 그랬듯이, 난 오늘도 창경궁 인근의 높은 건물 창가에서 창경궁과 비원을 내려다보며 커피한잔을 마시고 있다.
4월, 5월은 거의 매일 황사 때문에 하늘도 마음도 흐려있었는데, 며칠 전 내린 단비가 봄 가뭄을 해갈하고 황사도 걷어 낸 후라, 맑은 내 마음처럼 멀리의 인왕산이 (촌말로) 꽹하게 눈앞까지 다가와 있다.
저기가 창덕궁, 저 건물이 임금의 즉위식을 거행하고 외국사절을 맞던 인정전,
저기가 왕후마마들이 사시던 창경궁, 뒷쪽이 임금님의 정원인 비원, 숲에 가려져 건물은 보이지 않지만 저곳이 종묘라고 한다.
태조가 1392년에 조선을 건립하고 도읍을 개성에서 서울로 옮기면서 경복궁의 별궁으로 1405년에 지었다고 하니 창덕궁의 나이도 600살.
한때는 저기서 나랏님이 천하를 호령하고 지존의 위엄과 권세를 누렸을 텐데, 오늘은 이름도 모르는 낯선 사람들이 주인이 되어 명정전에서 펼치는 전통무예를 관람하고 있고,
높은데서 보니 그날의 권세와 영화를 보여주던 높디높은 대궐도 그것들 보다 더 오래 살아 온 노거수의 겨드랑이 아래 단아하게만 보이니 인생무상인데, 그것 역시 나의 교만일까 두렵다
어쨌든 복잡하고 바쁜 서울하늘 아래,
날카로운 하이힐에 조막만한 얼굴과 물빛 피부를 하고는 무뚝뚝한 경상도 아저씨가 도저히 감당해 낼 수 없는 애교와 교태를 부리는 서울내기들이 사는 이곳.
(지난 가을도 대학로의 만추를 글로 적어보았지만) 이런 서울에 계절마다 다른 아름다움을 전하는 자연이 있고, 천년의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이 짧은 신기하기도 하지만, 다만 아마존이 지구의 허파인 것처럼 이곳이 서울의 허파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저기 바위 허연 돌산이 인왕산이고 그 오른쪽이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이라고 부산 촌놈끼리 서로 아는 척을 해봤자 아무도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지만,
두 산을 넘은 바람이 비원의 숲을 지날 때면 숲은 대양의 파도처럼 큰 리듬으로 일렁이며 폐부 깊은 곳에서 짙푸른 호흡을 토해내고, 그 바람이 이곳 까지 너울쳐 밀려오면 잠시 머무는 이방인의 답답한 가슴도 시원해진다.
KTX를 타고 빠르게 달리면서도 눈앞에 마주치는 풍경들을 놓치는 것이 아까워 책이나 신문마저 읽지 못하는 사람인데, 한 달 간을 동서남북 콘크리트와 지체 높으신 사람의 벽에 갇혀 숨도 제대로 못 쉰 내게 잠시 '짬' 이라고도 할 수 없는 시간들이 생길량이면 창경궁, 창덕궁의 풍경들을 구멍이 날 정도로 바라보느라 글 하나 쓰지 못했다
이제 한 달간의 부산함을 끝내고 지금은 모두가 떠나 오히려 적막한 5시간의 여유
난 이 한가한(?) 시간을 촌놈의 서울 기행문이라도 적고 가야 될 것 같아 컴퓨터에 앉았다.
“혁아 이 짜슥아. 도대체 어디서 뭐 하노. 살은 겨 돼진 겨 빨리 오이라”
친구 놈 한테서 문자가 왔다
“그래 내일 내려 가꾸마. 인자 니 칭구 소중한 줄 알았제”
커피포트에 물 끓는 소리가 들린다.
스타벅스의 멋진 컵에 카푸치노를 마시는 것도 좋겠지만, 종이컵에 1회용 커피한잔 타서 마시면서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아는 사람은 아는 낭만이다.
한가하다는 것
한가한 시간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오늘 난 살아있음을 느껴본다.
나의 맥심(脈心, macxim), 곧 마음의 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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