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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 (상상의 실재와 모순)

유초잡감

by 유초선생 2024. 1. 3.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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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神話)는 종교뿐만 아니라 물질세계에, 우리사회의 전반에서도 작용한다. 상상의 실재(實在)다. 애국심이라는 신화에 따라 사람들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주식회사가 그렇고 돈이 그렇다. 

 인류가 공유하는 신(神), 국가, 돈, 인권, 법, 정의도 상상 밖에서는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것을 ‘실재하는 사실’이라고 믿고 따르기 때문에 거기에 규칙이 생기고 질서가 유지된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집단적 상상’이 만들어낸 환상이지만 우리가 믿고 따르는 실재다.

 농업혁명 이래 인간사회는 점점 더 규모가 크고 복잡해졌다. 그동안 그런 사회질서를 지탱하는 상상의 건축물 역시 더욱 크고 정교하여 졌다. ‘신화와 허구’는 사람들을 출생 직후부터 길들여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특정한 기준에 맞게 처신하며, 특정한 것을 원하고, 특정한 규칙을 준수하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수백만 명이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게 해주는 인공적 네트워크가 바로 ‘문화’이고 ‘질서’다.

 최초로 등장한 보편적 질서는 화폐질서이고, 이후 제국적질서, 종교의 질서가 등장한다. 
상인들은 세계전체를 단일시장, 모든 인간을 잠재적 고객으로 보고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경제 질서를 세우고 싶어서 만든 것이 화폐다. 정복자들은 세계 전체가 단일 제국, 잠재적 신민으로 보고 제국을 만들었고, 예언자들은 진리는 하나뿐이며 모든 인간은 잠재적 신자라는 전제하에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질서를 세우고자 한 것이 종교다.  

 역사상 최대의 정복자로 사람들을 열렬한 신도로 만든 정복자는 바로 돈이다. 신을 믿지 않고, 왕에게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도 기꺼이 같은 돈을 사용하려 한다. 오사마 빈 라덴이 그렇게 미국의 종교, 문화, 정치를 증오했지만 미국달러를 좋아했다. 

 기독교 신자와 무슬림 신자가 피비린내 나는 종교 전쟁을 벌이는 것은 그리스도나 알라의 영광을 더 크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기독교인들은 승전을 축하하기 위해 십자가와 함께 하나님의 도우심을 감사한다는 내용을 새긴 금화와 은화를 발행했고, 동시에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자다’라고 아라비아어로 적은 화폐도 발행했다. 당시 인기 있는 무슬림 주화는 주교와 기독교인조차도 기쁘게 사용했다. 

 북아프리카 무슬림 상인들은 피렌체, 베네치아의 금화와 나폴리의 은화 같은 기독교 화폐를 이용해 사업을 했고, 이교도인 기독교인을 상대로 성전을 벌였던 무슬림 통치자들조차 경배의 표시로 예수와 성모마리아를 새겨 넣은 주화로 세금을 받았다. 극단주의적 유일신을 숭배하는 것이 기독교와 이슬람종교인데, 그 종교 지도자들마저 돈을 더 숭배하니 신이란 과연 존재하기나 하는 것인가?

 왜 사람들이 돈, 금화, 달러를 신뢰할까?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다. 왕이 그것을 믿고 세금으로 받고, 사제 역시 그것을 신뢰하며 십일조로 요구하기 때문이다. 화폐는 주화와 지폐뿐만 아니라 재화와 용역의 가치를 체계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만든 모든 것이며, 그것으로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을 교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돈은 서로 알지도 못하고 신뢰하지도 않는 사람들까지도 효율적으로 협력하게 만든다.

 전 세계 화폐총량은 60조 달러이지만 주화와 지폐의 총액은 6조 달러 미만이다. 돈의 90% 이상은 우리 계좌에 나타나는 컴퓨터 서버에만 존재한다. 컴퓨터 파일에 들어있는 데이터를 다른 파일로 옮기는 방식으로 거래가 이루어지고 실제로 돈을 옮기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기꺼이 그렇게 하는 것은 자신들의 집단적 상상의 산물을 믿기 때문이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는 주식회사를 실체를 가진 법인(法人)으로 취급하여 재산도 가지고, 법률적 행위도 하고, 물건도 사고파는 등 사람과 똑같은 활동을 하며 사람보다 강한 엄청난 힘도 있다. 

 여기다 수많은 ‘자연법칙 종교’가 근대에 등장하는데, 자유주의, 공산주의, 민족주의, 자본주의, 국가사회주의가 그것들이다. 그것들은 종교가 아니고 ‘이데올로기’라 칭하지만, 공산주의는 이슬람교에 비교하여 종교로서 차이가 없다. 공산주의 역시 강령이 있고 생명을 바쳐서라도 마르크스와 레닌의 복음을 전파한다. 세상의 신념들은 ‘신 중심의 종교’와, ‘신 없는 이데올로기’가 있다.

 모두가 인간의 풍부한 상상력이 만들어낸 '허구의 산물'이고 '상상의 질서'이지만,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협력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고 이것이 바로 사피엔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요인이다. 중요한 것은, 이 허구를 ‘어떻게 남들이 믿게 만드느냐’는 것이다. 일단 믿게 만들면 사피엔스는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되고, 서로 모르는 수백, 수천, 수만 명이 힘을 모아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매진할 수 있게 된다. ‘가상의 실재’는 거짓말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거짓말과 달리 '모든 사람이 믿는 것'을 말한다. 이런 공통의 믿음이 지속되는 한 가상의 실재는 현실세계에서 힘을 발휘한다. 종교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믿으라고 요구하는 반면에, 돈은 보편적 전환성과 보편적 신뢰성을 가지기 때문에 남들이 믿는 것을 나도 믿게된다.   

 자연의 질서는 안정된 질서다. 설령 사람들이 중력을 믿지 않는다 하여도 중력이 작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상의 질서는 언제나 붕괴위험을 안고 있다. 왜냐하면 종교는 신화에 기반하고 있고, 그 신화는 사람들이 신봉하지 않으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신화에 기반하고 있던 조로아스터교와 마니교가 사람들이 그 신화를 신봉하지 않으면서 그 신도 사라진 것처럼, 베네수엘라처럼 경제의 침체로 화폐가치가 폭락해 화폐가 종이조각이 될 수 있고 비트코인 열풍도 거품이 사라져 많은 투자자들을 허무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따라서 상상의 질서를 보호하려면 지속적이고 활발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애국심을 자극하고, 희생을 강요하고, 선교하고, 설교하고, 법과 제도를 만들어 집행하는 것이 그렇다. 이를 통해 그 질서가 상상의 산물이아니라 실재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특히 상상의 질서는 물질세계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사람들은 이미 체화되어 자신의 삶을 규율하는 질서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신의 믿는 대상에 일단 시간과 비용을 투자되면 그것을 알리고 합리화시키기를 원하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또다시 재투자함으로서 자기 합리화, 자기 최면에 더 깊이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상상의 질서를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 우리가 그 질서를 거부하여 감옥의 벽을 부수고 나아가더라도 실상은 더 큰 감옥으로 달려 나갈 뿐이다. 우리는 오늘도 그 상상의 질서속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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