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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사랑으로 핀다

유초잡감

by 유초선생 2023. 12. 6.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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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며칠 만에 필까? 
줄기에 연둣빛 움이 만들어지고 그 꽃망울에 사랑의 꽃물이 가득 채워져 꽃이 만들어 지기까지,
사흘?.....1주일?, 열흘 이면 될까?

우리 회사 화장실 가는 30m가 넘는 복도는 작은 화원이다.
관음죽, 신비디움, 호접란, 군자란, 동양란....

그런데 사무실 화원의 나무와 꽃들은 성한 것이 하나도 없다.
각종 행사, 승진기념에 초대되어 중역실과 사무실에서 사랑을 받다가 어느 날 병들고 시들면 버려졌으니
솔직히 말하자면 식물요양원인 셈이다.

어느 회사나 마찬가지이겠지만, 꽃이 화원에서 사무실에 처음 들여놓아 질 때 반쯤은 꽃이 피고 반은 꽃망울이 달려 한두 달은 보기 좋게 꽃이 핀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면 환기도 잘 안되고, 물도 제때 주지 못해 시들게 되고, 말라가는 잎과 가지를 하나둘 잘라내다 보면 어느새 보기흉한 모습이 되고, 결국 1년도 안되어 바깥으로 쫓겨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회사 미화원 여사님은 나이가 70이 가까운데 이런 꽃을, 나무를 다시 살리는 재주가 있다.
여사님이 처음 우리 회사에 배속 받았을 때 나이도 많고 해서, 이왕이면 좀 젊은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하루 이틀 지나면서 일을 하시는 것을 보니 나이를 가지고 평가할게 못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냥 쉴 새 없이 부지런히 쓸고 닦는데 한 달 정도 지나니 사무실도, 화장실도, 유리창도 반질반질 해 지는 것이 아닌가?.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아주머니 대기실에서 좀 쉬시던가 오늘은 좀 일찍 들어가세요” 해도 수줍은 웃음으로 “괜찮다”고 하시면서 손이 안가도 될 부분까지 신경을 쓰는 모습이 감동이고 모범이다.

비록 회사에서 청소를 하지만 아들 3명이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 임원, 모 TV방송국 부장, 사위는 건축설계사로 있다고 하는데,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열심히 사시는 모습이 오늘의 훌륭한 자식들을 있게 했다 싶어 존경심마저 생기게 되었다.

우리 여사님은 이렇게 버려져 사경을 헤매는 관음죽을 신문지로 감아 습기의 방출의 막아주고, 시든 꽃나무나 호접란, 동양란 등은 오전 오후 옮겨가며 햇볕도 쬐여주고 물도 주어 하나도 죽이지 않고 다시 살려낸다.

노대통령이 사법고시 합격할 때,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관음죽에 꽃이 피었다고 하는데 우리 여사님은 시들어가는 관음죽을 살려 꽃을 피우게 했다. 나도 관음죽 꽃은 처음 보기도 해서 “여사님이 이렇게 정성을 다하고 사랑을 베푸니까 관음죽도 감복해서 꽃을 피웠나 봅니다. 관음죽은 꽃 피우기가 어렵다고 하던데 우리 회사에서 꽃을 피웠으니 여사님 덕에 회사도 직원도 모두 복을 받을 것 같습니다”라고 진정으로 감사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꽃은 며칠 만에 필까?
하루에도 몇 번씩 화장실에 가노라면 언제나 재생을 받고 있는 호접란을 마주치게 된다.
한때는 사랑을 받았건만 흉한 모습이 되어 쫓겨났던 그 호접란이 어느 날 생명줄처럼 가느다란 꽃대하나를 만들고 있었다.

잎도 서너 개 밖에 남지 않은 병든 몸으로, 하늘로, 하늘로 사력을 다해 꽃대를 밀어올리고 얼마 후 그리고 거기다 꽃봉오리를 맺었다.
잉태요, 생명이요, 부활이다.
먼저 맺힌 꽃망울이 자줏빛으로 변하고 엄지손톱만큼 커질 즈음 4개의 꽃망울이 달렸다.
나는 그 생명의 신비를 바라보는 느낌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발걸음을 멈추고 관찰을 하며
생명의 경외감과 그 생명을 다시 살린 여사님의 사랑을 느끼곤 했다.

한 보름쯤 지난 아침, 그 꽃망울이 드디어 꽃으로 태어났다.
사랑을 먹고,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진액을 쏟으며 꽃대를 올리고, 그리고 생명의 꽃을 피운 것이다.
갓 태어난 꽃, 새 아기의 맑고 환한 모습이 어쩜 그렇게 예쁜지 마주도 해보고, 향도 맡아본다. 세상의 어떤 꽃이 이보다 이쁘랴.
살아준 네가 고맙고, 사랑에 보답하는 네가 아름답다.
며칠 후 두 번째 꽃망울이 또 꽃을 피웠다.

나는 그 꽃을 사장님 실에 넣어드렸다.
화분 가득히 핀 호접란 보다 꽃대 하나에 두 송이 핀 꽃이었지만, 사랑으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 그 꽃의 의미를 전해 드리고 싶었다.

무엇이 꽃을 피우게 하는가? 꽃은 무엇으로 피는가?
“사랑은 꽃을 피우고, 꽃은 사랑으로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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