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해 전에 경북 봉화에 한약 지으러 갔다 오는 길가에 전시된 분재나무가 멋있어 하나 샀습니다.
작고 납작한 화분위에 한 뼘 조금 넘는 느티나무가 8그루 심겨진 분재였는데
그중 키 큰 것을 가운데 심고 작은 것은 사방으로 적당한 기울기로 심어져 있었는데, 무성한 잎과
그 아래 조그만 버섯까지 기생해 자라고 있어 분 하나가 곧 작은 자연이고 풍경 이었습니다
10월 중순이라 그 작은 자연에도 가을은 와서 군데군데 알록달록 단풍이 들어 앙징스런 모습이 좋았고,
아파트 베란다 햇볕 드는 창가에 두고 정성스레 물을 주며 가족처럼 소중히 보살폈습니다.
가을이 익어가던 날,
내 작은 느티나무도 단풍이 들었고, 어느새 뿌리를 덮은 이끼위로 빨간 낙엽들이 지기 시작했습니다
물이라도 주면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이 안타깝고, 며칠이라도 더 고운 잎을 달아두고 싶은 마음에
뿌리에 대고 조심조심 물을 주었습니다. 조금 지나면 어차피 다 떨어질 걸 알면서도 말입니다.
바닥에 떨어진 낙엽이 황톳빛으로 변해갈 즈음, 나무는 잎 속에 가리웠던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가지가 드러나고, 줄기가 드러나고......마지막 남은 잎이 떨어지는 날
느티나무는 그리고..... 나목이 되었습니다.
내 메마른 영혼처럼 말입니다
겨울이 되어 옷을 벗은 것인데도 말라죽은 것만 같고,
내년에 다시 잎을 피울 것 같지 않아 내심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겨우 내 햇볕도 쬐이고 1주일에 한번 씩 물을 주면서 봄을 기다렸습니다.
1월이 가고 2월이 가고 3월초가 되었는데 나무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습니다.
혹시 죽었나 싶어 줄기의 껍질을 벗겨보니 파란 속살이 드러나는 것을 보면 죽지는 않은 것 같은데
싹이 트지 않아 아침저녁으로 만져보면서 마음을 졸였습니다.
어느 날 보니 나뭇가지에 깨알처럼 까만 점들이 박혀있었습니다.
작년에 잎이 떨어진 자리의 흔적이려니 생각했는데 살짝 건드려 보니 새싹을 틔우려는 작은 움이었습니다.
“생명이다”, “살았구나”, “그래 꼬박꼬박 물도 주고 햇볕도 쬐어 주기를 잘했지 죽은 줄 알고 버려두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아침저녁으로 새 움들이 돋아나고, 먼저 튼 움에선 작은 연두 빛 새싹이 돋아나는 것을 보면서
환희와 감동, 생명과 인내, 4계절 변해가는 자연의 신비로움을 바로 보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제 또 가을입니다
꽃이 떠난 자리에, 잎이 떠난 그 자리에, 창을 통해 들어오는 초겨울 야윈 햇살이 따사롭습니다.
거기 퀭한 눈의 야윈 영혼이 웅크리고 있습니다.
내 영혼이 맑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내 영혼이 풍요로워 졌으면 좋겠습니다.
죽은 것 같았던 내 작은 나무가 소생하듯이,
내 메마른 가슴에, 믿음의 싹이, 은혜의 잎이, 사랑과 복음의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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