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노인이 되자 (세키 간테이)
저자 세키 간테이는 1920년생으로, 이 책을 출간할 때의 나이는 만81세였다.
소학교 졸업 후 14세 때 국수집 견습 사원을 거쳐, 17세 때 불상조각가 문하생으로 들어가
평생을 조각가로, 불교신자로 살아왔고, 그림, 글, 골동품에도 조예가 깊은 사람이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난행고행(難行苦行), 즉, 고통 속에서 깨달음을 얻고자하는 선불교식 수행이 모두 허망한 것을 깨닫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은 모두 해 보는 것이 생명을 눈부시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간테이 영감은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가 아니라 ‘불량노인’이 되기로 한 것이다.
이후 간테이 영감은 80넘은 나이에도 머리를 기르고, 청바지를 입고, 젊은 사람들과 같이 맥주를 마신다. 한마디로 ‘못 말리는 노친네’ 인데다 ‘색골’인... 힘이 넘치는 ‘불량노인’이다.
색기(色氣)는 삶에 위축되거나 지치면 발휘할 수 없는 것이다.
불교신자인 그를 유교적 관점에서 보면 대단히 천박한 사람이다.
그는 매일 저녁 술집에 놀러가고, 젊은 여자들과 서슴없이 어울리고, 이따금 애정을 고백 받기도 한다. 버스에 가득 채울 만큼 사귀는 여자가 있다고 해서 그런 일들을 굳이 숨기려고도 하지 않는다.
사실 그가 술집에 가는 것은 술을 마시려고 가는 것이 아니다. 그저 많은 사람들을 만나 객쩍은 대화도 나누고, 세상을 알고, 자기가 그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술집은 정년을 마치고 사회그룹에 끼이지 못하거나, 해야 할 일을 다 한 사람들에게는 가볍게 사회와 접할 수 있는 소중한 장소다. 술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술집 분위기, 기분 좋게 수다를 떠는 그런 공기가 좋아서 가는 사람이 많다.
코끼리가 진창에 뒹굴며 온몸에 진흙을 발라 기생충을 제거하듯이, 술집역시 현대인들이 치열하게 사느라 쌓인 스트레스와 놀지도 못한 마음의 때를 벗기는 장소가 되기 때문이다.
여자를 찾는 것도 같은 이유로 설명될 수 있다. 남자에게 여자란 배우자나 성욕의 대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약간 낯간지러운 표현을 쓰자면, 여자는 영원한 동경의 대상이고, 결코 정복되지 않는 이상향이며, 그렇기 때문에 남자에게 불가사의한 활력을 안겨주는 존재인 것이다.
물론 여자를 만난다고 해서 불륜을 저지르는 법은 없다. 그저 친구로서, 생명 대 생명으로서 교류할 뿐이다. 늙으나 젊으나 설렘은 같다. 메마르게 사는 것은 위축되어 사는 것과 같다.
저자는 늙었다고 해서 자기 자신을 퇴물로 여기고 죽은 것이나 다름없이 사는 것을 단호히 거부한다. 그리고 자기의 남성성을 당당하게 긍정하며 그것을 위해 노력할 뿐이다.
이 책의 줄거리는 한마디로, 나이가 들어도 꼰대처럼 살지 말고, 활기차게, 즐겁게 젊게, 당당하게 살자는 것이다. 그렇게 살면 다른 사람들 눈에는 ‘불량노인’처럼 비칠 수도 있지만, 그것이 후회 없는 자신의 인생을 사는 길이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제발 그렇게 사세요”라고 우리에게 주는 충고는 아닐까?
간테이 영감도 수행을 거쳐서 ‘불량’에 도달했다. 여기서 ‘불량’이란 아무것에도 제약받지 않는 바람과 같은 삶이다. 거칠 것 없이 표표히 살아가는, 한마디로 시들지않는 삶을 사는 것이다.
구한 말 경허스님은 무애행(無碍行), 즉 걸림 없는 삶을 산 스님이다. 봄이 오면 “청산에도 꽃이 피고 저잣거리에도 꽃이 피듯이 청산과 속세가 본래 둘이 아니고 하나인 것을, 굳이 산중을 고집할 이유가 있느냐며 속세로 내려와 술도 마시고, 고기도 먹고, 파격적으로 사람들과 어울렸다.
삶이 걸림없어 세상의 비방과 칭찬에 동요하지 않는 삶이 오히려 산과 같다. 간테이 영감역시 살아가면서 얻어지는 깨달음은 난행고행(難行苦行)을 통해서, 산속 깊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리에 그것도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있다는 깨달았기 때문이다.
진리도 구원도 사람의 마음속에 있고, 사람이 있는 곳에, 그리고 마음이 기우는 곳에 진리가 있다. 절이나 교회는 그 방향으로 가면 구원이 있다는 이정표에 지나지 않고 그 표지판 화살표의 끝은 결국 마음이다.
우리는 60만 넘으면 대접받으려 하고, 노인처럼 행동하려 한다. “에이 내 나이 몇인데 ...관두자”라는 생각과, 남들의 눈에 “나잇살 먹어가지고 ...”라는 쯧쯧거림이 볼썽사납고 두려워서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후회하는 것이 ‘진짜 자기가 하고 싶고 되고 싶은 진로를 선택하지 못하고 월급쟁이가 된 것’, ‘여자를 유혹해 보지 못했던 것’이라고 한다. 60중반의 우리 나이, 이젠 머리가 벗겨져도, 키가 작아도 ... 지금은 그런 걸로 주눅들 나이가 아니지 않은가?
인생을 달관한 것처럼 살지 말자, 아는 척도 깨달은 척도 하지말자,
인생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를 들고 뒹굴며 고뇌한다 해도 알 수도 없고, 답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살아가는 인생이 재밌어야 한다.
늘그막 연애?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차 한 잔 할래요?”.... 부끄러움을 몰라야 여자도 사귈 수 있다.
그저 젊은이들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인간의 본질’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겠다는 생각. 본질이란 곧 가공하지 않은 '생의 순수함'이다.
나는 거룩하지 않다. 애초 내 본심이나 성품 자체가 그럴 인물이 못되고, 무엇보다 나 같지가 않아 불편하다. 그렇다고 고위 성직자들이 고급차를 타고 언론의 조명을 받는 것도 결코 거룩해 보이지도 않는다.
당신은 나이가 들어도 펄펄 나는 인생을 살고 싶은가아니면 골목길에 쪼그리고 앉아 노친네라는 소리를 들으며 맥없이 지내길 원하는가?
꽃잎이 흩어지듯 머지않아 내 주위의 친구들도, 내 소중한 것들도 다 떠나갈 갈 것이다.
가볍게 살자, 돈에, 명예에, 권력에, 지위에, 신념에, 관습에, 타인의 시선에 억매이지 말고, 물질에 대한 욕심도, 거룩해야겠다는 부담도 버리고, 여유 있는 마음부자로 살자.
하지만 버릴 수 없는 것이 많은 것이 또 인생이다.
관계,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 주는 일이다.
현대인들은 날마다 치열한 삶을 살아간다. 그 삶이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돌아다보면 남을 위해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간테이 영감처럼, 지금부터라도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사는 것이, 본성의 나의 모습으로 사는 것이, ‘나답게’ 사는 것이고, 가장 자연스럽고 후회 없는 삶이 아닐까?
시인 ‘사라 티즈데일’은 이렇게 노래했다 “Time is a kind friend, he will make us old”.(시간은 나의 좋은 친구다. 나를 나이만큼 늙게 만들어 주니까) ...
허연 머리, 삶의 지혜, 혜안, 안정, 여유 ... 지금 우리 나이가 정말 아름답지 않은가?
지금이 가장 나답지 않은가?
나이를 잊어버리고 살자, 나이가 들면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에 골몰하게 되고, 그것이 나를 노친네로 만드니 이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인가?. “나이는 사람이 죽고 나서 그때 헤아려 보는 것이다”
내 안에 끝나버린 것은 없다. 끝나버리면 시시하다
죽을 때 까지 성장하려면, 죽을 때 까지 아마추어로 초보로 살면 된다.
이 젊음도, 물질도 쓰지 않고 내버려 두면 다 사그라지고 없어질 것이다.
지금이 모처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딱 좋은 나이다.
간테이 영감처럼 ... “불량노인”으로 살아봄직 하지 않은가?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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