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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담금질

유초잡감

by 유초선생 2023. 11. 30.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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쒹~쒹~,
땅! 땅! 따당! ~
치지직~ 쉬익~
대장장이 우직한 팔뚝이,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쳐대는 풀무질과 쇠매질, 담금질 소리가 아니라,
함부로 쓰기에 너무 아까운 몽블랑 만년필로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기 위해
새 노트에 한 줄 한 줄 정성스럽게 적어가는 마음을 담금질 하는 소리다

무슨 마음의 담금질이냐고?
글쎄다...
세상의 유혹과 달콤함에 처음엔 “어쩔 수 없어서”라며 조심스럽게 다가간 게 맞지만,

차츰 나도 모르게 그 향기에 취하고, 이젠 오히려  화려한 축제의 주인공이라도 된 양 정신없이 그 분위기에 휩쓸리다 보니 이젠 내 자아도, 영혼도, 글도, 순수도 빠진 빈껍데기만 남은 것 같고.
이런 내 모습에 놀라 “이건 아니다” 싶어 나를 불가마에 넣어 달구고, 쇠 매질을 하고, 담금질을 해서라도
모양을 바로잡고, 물질의 성질을 바꾸려 하는 것이다

돌아보면, 내게도 자갈 많은 금호강 강가의 맑은 시냇물처럼, 그 맑음과 명랑함과 때 묻지 않은 순수함도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 날 신앙이라는 단어에 부끄러워지고, 순수를 이야기하기에 스스로 가증스러워 보이는 것이 지금 나의 위치를 말해주는 것이고, 그런 것 때문에 힘들어 한다면 한편 내가 돌아가야 할 자리도 있지 않나 싶다

참 어렵다. 세상 살아가는데 무슨 특별하고 정답인 삶의 방식이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육체와 영혼, 맑음과 혼탁함의 편을 가르고, 세 잎 클로버만 해도 세상이 아름다운데 꼭 네 잎 클로버를 고집하는 자체가 
나의 강박관념은 아닐까?

그래도 우리의 삶이 투명하고, 만남이 투명하고, 사람에게서 깊은 울림과 은근함도 있어야겠다는 생각과 
그러지 못해 세상과 순수의 중간쯤에서 갈등하고 방황하는 내 모습에서 서글픔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아침마다 신문쪼가리나 책을 읽다 덜컹 가슴에 다가온 맑고 향기로운 글들,
굵은 장맛비 속에서 지긋한 무게로 누르는 아픔 같은 글들, 심령과 골수를 찔러오는 따끔한 글들을
새 노트에 연애편지 쓰는 마음으로 한자 한자 또박또박 적어가는 것이
키질로 고운 모래를 걸러내듯 혹시라도 남아있을 나의 순수를 걸러내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김광규 시인의 '대장간의 유혹'을 읽으면 그런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풀무질로 이글거리는 불 속에 / 시우쇠처럼 나를 달구고
모루 위에서 벼리고 / 숫돌에 갈아/
시퍼런 무쇠 낫으로 바꾸고 싶다 /
땀 흘리며 두들겨 하나씩 만들어낸 / 꼬부랑 호미가 되어 /
소나무자루에서 송진을 흘리면서 / 대장간 벽에 걸리고 싶다 /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 온통 부끄러워지고 /
직지사 해우소 /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는 / 똥덩이처럼 느껴질 때 /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문득 / 어딘가 걸려 있고 싶다.

정말 그렇다. 나는 나만의 내가 아니고, 규격화되고 정형화된 차이없는 상품이 되어있다. 
다시 대장간을 찾아가 ...
나를 달구고, 두들기고, 담금질하여 모양과 물성을 바꾸어 ... 단 한 사람의 나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
그리고 ... 내 속에서 맑고 깊은 소리가, 경쾌한 시냇물 소리가 시원하게 들리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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