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뭘 했는지 정신없는 가운데 1주일간의 하계휴가도 끝나버렸다.
‘끝나 버렸다’는 말에는 다소 아쉬운 듯한 늬앙스도 있어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냥 휴가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러고 보니 매년 휴가 때마다, 남들이 하는 것처럼 어디론가 떠났다 온 것 같다.
아이들 어릴 때는 바닷가나 계곡으로 캠핑을 갔고, 아이들이 크고 나서는 부부간에 자동차 여행, 작년엔 혼자 시모노세키 초밥여행을 다녀왔다.
휴가, 여행, 모두가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설렘이 있지만, 사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말이 캠핑이지 지금처럼 환경이 갖춰진 숙박시설도 아니고, 땡볕이 내리쬐는 모래사장이나 계곡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는 것은 보기에는 멋있어도 모든것이 불편하다. 여름휴가 때 떠나는 해외여행 역시 호강하는 것이 아니라 더위와 싸우는 개고생이다.
이렇게 고생이든 말든 우리 모두는 휴가 때가 되면 또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열심히 일한 자신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지만, 가장으로서의 의무, 남들이 다 하는 것은 나도 해야 뒤쳐지지 않는다는 강박에 숙제처럼 휴가를 떠나는 것이다.
휴가는 좋다.
휴가가 쉴 휴(休), 틈 가(假)이듯이,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늦잠을 자도 되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있는 긴 쉴.틈.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휴가는 푹 쉬면서 에너지를 재 충전하는 시간이어야 하는데, 우리의 휴가는 더 바쁘고 더 힘들다.
나 역시 그랬다.
휴가니까 골프한번 치려고 더위를 피해 새벽에 티업시간을 잡다보니 05시 이전에 출발해야 했다. 아침 해가뜨면 벌써 땀이 흐르고 바지는 칭칭 감긴다. 더위에 지쳐 숨 마저 가빠지면 ‘이게 맞나?’ 하는 생각마저 드니, 골프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비싼 돈 들여서 하는 개고생이다.
다음 날은 서울 결혼식에 다녀왔고, 주일엔 교회예배 및 다문화사역, 이어지는 처가 가족모임, 유명 카페 및 맛집 탐방, 직원 상가 조문, 서점방문 책 구입, 친구들과 밀린 회포 풀기 등 나의 휴가는 쉬는 것이 아니라 밀린 숙제를 해 나가기에 바빴다.

마지막 날은 내일을 위해 진.짜. 쉬었다.
9시 반쯤에 알람을 맞춰두고 눈 뜨이는 대로 일어나서 커피한잔 하는 여유가 너무 좋았다.
쉬는 날 아침은 굳이 안 먹어도 된다.
에어컨을 27도쯤 맞춰놓고, 선풍기는 미풍으로 회전시켜두면 실내는 가을처럼 뽀송뽀송해진다. 쇼파에 기대어 다리뻗고 그저께 산 책을 읽으니 한 글자, 한 문장이 눈에 또렷이 들어오고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휴가기간 처음으로 느껴보는 편안함과 여유
이것이 제대로 된 휴가다..
나는 퇴직 후에 일을 할까 놀까를 고민한다
일한다면 돈을 벌기 위한 재취업을 할 것인지, 논다면 또 뭘하고 놀 것인지가 고민되는 것이다.
직장을 다니면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는다. 날고 싶지만 날 수가 없고, 날 시간도 없다.
일 때문에 늘 긴장상태에 있고, 퇴근을 하더라도 심리적으로 일에서 완전 떠나지는 못한다. 심하면 밥이 목구멍에 넘어가지 않는다.
휴가 참 좋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도 되는 게으름을 맘껏 부려도 되고, 행동과 생각 역시 목줄에서 풀린(unchained) 개처럼 자유롭다.
무엇보다 숙제가 없으니 마음이 편하다.
“어? 이거 할 만한데?”
은퇴를 하면 이런 휴가가 계속되는 것이고, 그렇다면 퇴직 후 노는 것도 괜찮은 것 아니야?
어제는 하루에 두 번 부고를 받았다.
70세 퇴직 동료와 65세 초등학교 동기의 별세 부고다.
며칠 전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인데,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 돈, 명예, 권력, 업적도 죽고 나면 아무런 의미도 없고, 모든 것은 무(無)로 돌아간다.
우리가 살아 움직이는 동안 열심히 일하고 활동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까지 돈 때문에 일을 계속하다 하고 싶은것도 하지 못하고 죽어버린다면, 그렇게 까지 일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일까?
사실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 그 이상의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은 노후대비도 있겠지만 더 풍족하게 쓰기 위한 욕심이다.
굳이 남들에게 잘 보일 필요도 없고, 있다고 폼 잡을 것도 없다. 누가 뭐라든 나는 나의 삶을 살면 되는 것이다.
사는게 뭔데... 그게 머시라꼬...그냥 마음편하게 사는것이 최고다.
그렇다면, 은퇴 후 스트레스 안 받고, 그냥 노는 것도 건강하게 인생 잘 사는 방법일 수 있다.
문제는 욕심이고 사치다.
직장에서 더 오래 일해서 돈을 더 벌려는 것도 필요가 아니라 사치를 위한 욕심이었고, 휴가 때 이곳저곳 많이 다니려 했던 것도 결국 하지 않으면 안되는 숙제처럼 휴가를 보내려 했던 것이다.
우리 삶에서 욕심과 사치를 빼면, 적은 돈으로도 부족함 없이 잘 살 수 있다.
우리 삶에서 숙제를 빼면, 한층 여유롭고, 건강하게, 웃으며,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다.
휴가도 인생도, 숙제처럼 살아서는 인된다
욕심을 줄이고, 사치를 버리고, 숙제가 없는 삶은 우리가 선택하기 나름이다.
나의 은퇴후의 나날이 숙제를 다한것 같은 쉼과 여유가 있다면, 은퇴는 두려운 것이 아니라 진짜 행복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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