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은 어떻게 보면 간단하다.
살아있을 땐 그냥 살아가는 것이고, 살다 죽으면 생은 끝이 난다.
이렇게 단순하고 한번 왔다 가는 것이 인생인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늘 고민한다.
그냥 건강하게, 재미나게 잘 살면 되는 것 아닌가?
사자도 토끼도 먹을 만큼 먹으면 놀고, 낮잠 자고, 더이상 먹이에 욕심을 내지 않는다.
250만 년 전의 인간 호모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도 그랬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동물을 사냥하고, 식물도 스스로 자란 것을 채집했을 뿐이다.
삶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산 것이 아니라 본능대로 살았다.
그런 방식으로도 잘 먹고 잘 사는데, 굳이 욕심을 내고 다른 것을 시도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렵과 채집활동은 위험하고, 먹이를 구하지 못할 때는 굶어야 했다.
그래서 1만 년 전 부터 인간종 사피엔스는 이런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옥수수, 콩, 쌀, 밀, 감자를 재배. 작물화하고, 양, 소, 돼지를 사육.가축화 했다.
이로서 식량의 총량을 확대하고, 여분은 보관함으로써 위험을 대비 할 수 있었고, 보다 안전하고 여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여유로움도 잠시, 인간은 식물을 재배하고 가축을 기르는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동틀 때부터 해질 때 까지 등골이 휠 때까지 노동을 했다. 인간은 물론 기르던 가축과 작물에게도 없었던 새로운 병이 생겼다. 식량을 지키기 위해 인간들은 목숨을 다해 싸웠고, 당시 단순 농경사회에서 남성 사망률의 15~30%, 많은 곳은 50%가 인간끼리의 폭력으로 죽었다.
인간의 생활방식이 이동.수렵.채집 활동에서 정착.생산.보관시스템으로 바뀌어 더 풍족해 졌지만, 지금 인간의 삶이 과거에 비해 더 여유롭고 행복하다고 할 수 는 없다. 이렇게 과학이 발달하고 먹을 것이 풍족한 세상에서도 실제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고, 많이 가진 사람은 그것도 부족함을 느껴 죽을 똥 살 똥 일한다.
욕심이 공평하지 못한 세상을 만들고 스스로 자기착취를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어느 종이 성공적으로 진화했느냐, 누가 성공했느냐는, 개인의 행복의 척도가 아니라, 오직 식량의 재고, 은행의 잔고로 평가된다.
원시시대 공존의 삶이 아니라, 인간끼리 지배하고 지배당하는 적자생존의 무서운 세상이다.
(좀 더 철학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인간이 살기 위해 식물을 재배한 것이 아니라, 그 식물이 지신의 종을 유지하고 번식시키기 위해 인간을 조종하여 ‘재배’라는 사기를 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듯이, 연가시가 생명을 이어가고 번식시키기 위해, 연가시 유충들은 물가에 사는 장구벌레 등의 곤충들에게 먹힌다. 이때 연가시는 곤충의 장세포 내에서 포낭 상태로 지내다가, 그 곤충이 다시 사마귀, 여치 같은 육식 곤충들에게 먹히면 이번엔 더 큰 곤충의 내장에 붙어서 성장한다. 마침내 연가시가 세상에 나올 때가 되면 그 곤충의 뇌를 조종해 물에 빠져 죽게 하고, 그 곤충의 몸속에서 연가시가 빠져나와 생명을 이어간다. 섬뜩하다.
사피엔스의 무한 재배와 보관심리, 연가시의 숙주를 활용한 생존전략은 보이지 않는 덫이다.
우선은 좋아 보이고, 더 많이 가지면 더 행복할 것 같다고 느끼게 하는 욕심.
그리고 결국은 그 욕심의 덫에 빠져 스스로 불행해 지는 삶.
인간에게 끝없는 욕심을 부추기는 것은 누구의 덫일까?
인간이 불행해지기를 원하는 사탄의 장난은 아닐까?
나는 욕심의 숙주, 사탄의 숙주가 되지 않기 위해 ....지금에 만족하며 살련다.
남에게 조종받는 삶이 아니라, 내 의지대로, 본능에 충실하며,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련다.

| 아내는 행복의 근원입니다 (10) | 2025.07.23 |
|---|---|
| 제발 후회 없이 사세요 (4) | 2025.07.18 |
| 비와 가뭄 (1) | 2025.07.14 |
| 7월엔 청포도 처럼 (0) | 2025.07.08 |
| 한 해의 절반, 새로운 다짐 (5) | 2025.06.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