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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하는 선비와 궁핍한 아내

유초잡감

by 유초선생 2025. 3. 18.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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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자신을 위해 사셨고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사셨다.

아버지는 술과 글을 즐기셨고
어머니의 삶은 노래마저 한(恨)이었다.

아버지가 사랑방에서 멍석을 매고, 책칼로 한지를 자르고, 먹을 갈고, 글을 쓰고, 책을 매실 때
어머니는 텃밭을 매고, 죽을 쑤고, 쌀겨 떡을 만드셨다.   

글 하는 선비와 궁핍한 아내
한 지붕 아래 두 팔자가 삶을 이어갔다.

사랑방엔 묵향과 시 읊는 소리
뒤안간엔 칠성님께 싹싹 빌던 정수와 기도소리
흑백의 시각, 청각, 미각, 후각속에 
나는 자랐고 .... 내가 되었다.

지금 
아버지는 손가락 끝 산자락 끝에  계시고
어머니는 갈 수 없는 큰 바다로 가셨다

두분 모두 원하신 곳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 굳이 그 산으로 가셨고
어머니는 자식에게 부담주지 않고, 훨훨 날기 위해 바다로 가신 것이다.    

생이 끝나자, 가난도, 한(恨)도, 팔자도 끝났다.
아버지는 봉황의 절을 받으며 글을 쓰고 계시고, 
어머니는 갈매기가 되어 하늘을 날고 계시다.

아버지는 죽어 자식을 위했고, 
어머니는 살아, 죽어 자식을 위했다. 

깊이도 모르고, 알려주지도 않은 부모님의 마음.
나는 닮았고, 
나도 그런 부모가 되었다.

사과나무에는 사과가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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