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올렸던 포스팅 '책 속의 책 '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를 구입하려 했는데 절판되어 부득이 원서인 《遠い太鼓》를 구입했다.
어떤 북소리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가슴을 울려 3년간 유럽여행을 떠나게 했을까 하는 마음에 그 책을 읽어보고 싶었고, 번역판의 재고가 없으니 (짧은 일본어지만) 원서라도 읽고 덕분에 일본어공부도 해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막상 도착한 책을 보니 포켓북 보다는 약간 크지만 세로쓰기로 되어있어 읽기가 영 불편했다. 가로쓰기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세로쓰기로 된 책은 단어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올 여름 혼자 시모노세키 초밥여행을 갔을 때, 배 안에서 만난 시모노세키 한국어학원 원장님이 부산에 오신다는 연락을 받았다.
내년 3~5월 일본인 수강생들과 경주여행을 오기위해 사전 답사차 오는 것이고, 혼자 경주 관광지를 답사하기에는 교통편도 없고 하루 안에 다 돌아 볼 수 도 없을 것 같아 내차로 안내해 주기로 했다.
경주는 내가 아주 아주 오래 전에 공무원으로 근무했던 곳이다.
그 원장님이 오시면서 《コーヒーが冷めないうちに》, ‘커피가 식기 전에’라는 소설책을 선물로 들고왔다.
감사하다. 블로그를 통해 내가 책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이렇게 책까지 선물로 사 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책 역시 세로쓰기로 되어있다.
그래도 어쩌랴. 선물인데 끝까지 읽어보고 독후감도 써보는 것이 책을 사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는가.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것 일본어 공부하는 셈 치고, 한 단어 한 단어 사전을 찾고, 한 줄 한 줄 읽고 번역까지 해보자”
그래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遠い太鼓. 먼 북소리 》대신, 카와구치 토시카즈의 《コーヒーが冷めないうちに, 커피가 식기 전에》를 먼저 번역을 해보기로 했다.
사실 서점에 있는 책의 상당수는 번역서다. 누군가 번역했기 때문에 한국어판 책이 나온 것이다.
물론 그 책들은 외국어 해석능력 뿐만 아니라 한국어 어휘력이 뛰어나고, 문학적 소질이 있는 사람이 번역했다. 그래서 내용이 잘 전달되고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실력도 없는) 내가 번역해본다고?
...... 그렇다고 안 될 건 또 뭐 있는가?
내가 번역해서 출간 할 것도 아니고, 어차피 사전까지 찾아가며 읽어야 할텐데 이왕 읽는 것 그 내용을 한글로 옮겨 적는것이 곧 번역아닌가?
사실 일본어 번역은 영어나 중국어에 비해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다. 중요한 것은 작가의 의도에 맞게 숨은 늬앙스까지 얼마나 완벽하게 해석해 내느냐, 얼마나 문학적으로 잘 표현해 내느냐가 관건이다.
그러려면 제철음식 같이 거기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를 찾아내고, 쉼표와 마침표를 더하고, 리듬을 잘 살려서 매끄러운 문장이 되게 해야한다. 무엇보다 살과 뼈가 함께 있는 살아있는 글이되어야 한다.
무른 살만 있고 뼈가 없거나, 뼈만 있고 살이 없는 글은 맛이없다
그러기에 내가 하는 걸 감히 번역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참에 일본어 공부도 하면서, 번역이란 영역에도 한번 도전해 보고 싶은 것이다 .
인터넷에 검색을 하니 《コーヒーが冷めないうちに, 커피가 식기 전에》 한국어 번역판이 이미 나와 있다.
그래도 난 이 번역서를 읽지 않을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 상태에서 단어를 찾고, 내가 가진 어휘력을 동원하여 번역해 볼 것이다.
책을 읽고, 사전을 찾고, 알맞은 단어로 문장을 완성하고, 그리고 책 한권을 다 키보드로 옮겨 써야 하니까 그냥 읽는 것 보다 10배 20배의 시간이 더 걸릴지도 모르겠다.
무한 도전이지만 또 다른 시작이기도 하다.
나의 이 (쓸데없는?) 도전이 중간에 포기되지 않기를 바라고, 번역이 끝나는 날 나의 감성도, 표현력도, 일본어 실력도 한단계 성장해 있으면 좋겠다.
그것도 아니면....나의 커피가 다 식기 전까지... 난 삶에 진심이었고, 또 늘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으로라도 남았으면 좋겠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遠い太鼓》는 꺼꾸로 일본 원장님께 선물했다.
심심하지 않게 돌아가는 배 안에서 읽고, 여행을 좋아하는 그분의 가슴에도 심장을 고동치게 하는 먼 북소리가 들리길 바라면서...
다음에 일본에 갈때 그 책을 다시 살 것이다.
나도 그 북소리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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