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부터 ~ 1965년 까지,
32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여류작가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를 읽는다.
1952년 서울대 법대에 들어갔지만 적성에 맞지않아 문학을 전공하기 위해 독일로 떠난 용기있는 사람.
작가의 60년도 더 지난... '오래된 새글'이다.
(처음 만나는 글은 모두 새글이다)
'당근'을 통해 나눔 받아 아직 절반도 못 읽었지만,
(법정스님의 50년 전의 글이 전혀 구태하거나 진부하지 않았듯이..)
전혜린 작가의 언어의 감성만은,
60년 전에 비해 더 많은 단어와 어휘들이 만들어진 지금보다, 오히려 더 깊고, 더 풍부하고, 예리하다.
책에 빠져들다 보면,
시각적인 면에서는 내가, 그 당시의 작가가 되어, 안개비속 어슴푸레 밝은 가스등이 켜진 그 골목을 걷고, 뭰헨의 시끄러운 대형 맥주바(bar)에서 1리터 짜리 맥주 족기를 들고 분위기에 취해 힘껏 건배를 외치는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책을 읽기 위해 일부러 지하철을 탔지만, 사무실에 들어와선 연필을 들고 읽었던 부분을 다시 읽는다.
잃어버리기 아까운 문장에 밑줄을 그어두기 위해서다.
책속엔 때묻지 않은 언어들,
내가 일찍이 알지 못했고, 다른 사람도 찾아내지 못한 가공되지 않는 언어들이 유물처럼 발견된다.
더러는 너무 철학적이라 어렵고, 더러는 석류처럼 내 가슴에 심겨져 보석이 된다.
그럼에도 자극적이지 않다.
그녀의 수필은 봄날에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같고, 철학을 논할때면 가을날 불어오는 기름기 없는 까슬한 바람같다.
거기 가짜가 없고, 생을 관조하는 철학이 녹아있다.
밑줄을 긋고, 사선으로 단락을 구분할때 마다 글에선 칡뿌리를 오래 씹으면 나오는 은근한 달큼함이 있다.
32년 짧은 생을 살다갔지만, 그녀는 '자기의 생을 불꽃처럼 완전하게 살다갔다'고 아는 사람은 말한다.
전혜린은 늘 의미를 말하려 했고, 아득하게 여운을 남겼다. 천재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글에는 변화와 새로움과 사랑을 꿈꾸면서도, 한편으로는 저항, 한계, 우울, 먼데에 대한 동경, 허무, 죽음같은 것에 사로잡힌 듯한 느낌들이 언뜻언뜻 보여진다)
그러나 (책 제목처럼) ....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어령 평론가는 전혜린을 '전설이나 신화속으로 사라져간 사람'이라고 표현했나 보다
그것이, 지금처럼 개방적이지 않는 시대에, 형식과 사회적 질서와 인습을 거부하려는 반항적 몸부림.
혹은 생이란 건 시간과 공간에 제약되고 후회로 귀결되는 슬픈 것이기에, 질서에 구애받지 않는 카오스적 사랑과 보헤미안적 자유로운 정신을 갈망하는 소리없는 외침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노스텔지어같은 절실한 고독?
책 읽는 재미.... 탈색한 책속의 검은 활자들에 내 눈이 커진다.
이 책을 만난 것은 행운이다.
나머지 글속에 또 어떤 보석들이 쏟아질까 기대하면서, 내일은 아예 연필을 들고 지하철을 타야겠다.
그녀는 독일로 떠나면서 시를 인용해 '출발하기 위해서 출발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나는 과연 출발하기 위해 출발할 수 있을까?
불꽃처럼은 살지 못하더라도 ...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화장기없이, 거슬림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로 담백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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