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에서 다시 《모모》를 꺼내들었다.
주요 줄거리는 사람들의 시간을 훔쳐간 도둑들로부터, 그 빼앗긴 시간들을 되찾아 다시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소녀 모모에 대한 이야기다
시간.... 우리는 '지금의 시간' 속에 머물고, '한정된 시간'을 살다 간다.
모모는 목표를 향해 너무도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시간’의 중요성과 인간관계, 소통, 우정 등의 의미를 말하려 했고, 나 역시 《모모》를 통해서 지금의 내 모습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었다.
모모는 오늘도 가만히 나를 바라보며 속삭인다.
"아저씨 왜 그리 숨이 막히도록 바쁘게 사세요?, 한번 뿐인 인생 제발 느긋하게 즐겁게 사세요" 라고 ...
다음은 《모모》의 전체 줄거리다.
굳이 해석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읽는 것 만으로도 스스로 느끼기 때문이다.
한때 크고 화려한 도시가 몰락하고, 폐허가 된 그곳에 새 건물이 들어서고, 자동차와 전철이 다니고, 전화와 전등이 들어오는 문명사회가 된다.
그때의 영광을 보여주는, 유적으로 남은 그 원형극장 터에, 어디서 왔는지 8살 쯤 되는 키 작고 말라깽이 같은 소녀 모모가 살고 있었다.
“너는 여기가 마음에 드니?”
“예”
“그러면 여기서 계속 살 작정이니?”
“예 그러고 싶어요.”
“네 이름이 모모라던데 맞니?”
“예”
“고아원에 가면 어떻겠니?, 거긴 먹을 것과 잠자리도 있고, 공부도 하고 ...”
“아뇨 그런데는 가지 않겠어요. 창문에는 창살이 있고 매일같이 얻어맞고...”
“하지만 넌 어린아이고, 돌봐줄 사람이 있어야해”
“제가 돌보죠, 전 필요한 게 많지 않아요."
"그러면 우리들 중 한사람 집에서 살면 좋을 것 같구나. 우리는 널찍한 집에서 살고 있지 않니 ..."
"정말 고맙습니다. 하지만 그냥 여기에서 살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잠자리도 먹을 것도 있고, 하고 싶은 공부도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구속당하고, 자유롭지 못하고, 행복하지 않으면 그곳이 보금자리는 아니다.
사람들은 의논한 후 모모를 지금 그대로 살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미장이는 돌로 조그만 난로를 놓아주고, 나이 든 목수는 널빤지를 모아 책상을 만들어주고, 부인들은 찢어진 매트리스와 담요를 갖다주면서, 극장터 무대 밑 바위구멍에 아늑하고 작은 방을 꾸며주었다.
이렇게 모모와 사람들의 친분이 시작된다.
모모가 이곳에서 친절한 사람들을 만난 것은 행운이지만, 사람들 역시 모모를 만난 것이 행운이고, 모모도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그것은 모모가 똑똑해서도, 마술을 부릴 줄 알아서도 아니다.
모모에게는 사람들에게 행복과 평화를 가져다주는 특별한 능력, 다른 사람의 말을 공감하면서 들어주는 재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모모와 말을 하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수 있게 하고, 소극적인 사람이 대담해지고, 불행한 사람이 희망을 갖게 된다.
사람들이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들어줌으로써 스스로 잘못을 깨닫게 되고, 또한 자신이 이 세상에서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많은 일들을 해결하려면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모모가 얼마든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재산, 그것은 바로 ‘시간’이었고, 귀를 기울여 듣는 것이었다.
이웃간의 갈등도 시간이란 것으로 화해하게 만들고, 노래를 부르지 않는 카나리아에게도 귀를 기울였더니 지저귀기 시작했다.
귀 기울여 들어주고, 공감한다는 것, 그것이 마음을 연 소통의 시작이다.
“우리 무슨 놀이든지 하자. 이 극장 터 전체를 커다란 배라고 하고, 우리는 미지의 바다를 항해하며 모험하는 거지,
내가 선장, 너는 일등항해사, 너는 자연과학자 ...”
비 오는 날, 모모와 아이들은 천둥 번개를 두려워하며 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신나게 놀 줄 안다.
(우리 인생역시 항해 중 태풍도 만나고 더러는 파괴되기도 하지만, 이런 동심, 호기심, 모험심을 가지고 살면 두려움도 없어지고 권태롭지 않은 재미난 삶을 살수 있을 것이다).
모모에게는 좋아하는 친구가 둘 있었는데, 나이 든 도로청소부 ‘베포’와 젊은 관광안내원 ‘기기’다.
“모모야! 때론 우리 앞에 아주 긴 도로가 있어. 너무 길어 도저히 해 낼 수 없을 것 같아 이런 생각이 들지,
그러면 서두르면 되지, 그리고 점점 더 빨리 서두르는 거야. ....그래선 안 되겠지?,
한꺼번에 도로 전체를 생각해서는 안 돼, 알겠니?
다음에 딛게 될 걸음, 다음에 쉬게 될 호흡, 다음에 하게 될 비질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그러면 일을 하는 게 즐겁지? 그게 중요한 거야,....
문득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여서 그 아득한 길이 닦였다는 것을 깨닫게 돼.”
베포는 우리가 살면서 어떤 것에 가치를 두어야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친구, 이웃 간에 서로 소통하고 격려하고 도움을 주는 푸근한 할아버지다.
젊은 친구 기기는 잘 생기고, 말솜씨 좋고, 어찌나 경쾌한지 모두를 즐겁게 하고 웃게 만든다.
기기는 늘 꿈을 꾼다. 언젠가는 유명해지고, 동화처럼 예쁜 집에 살고, 황금 접시에 식사를 하고, 비단베개를 베고 잠드는 꿈....
“해내고 말거예요! 그때가 되면 여러분도 제 말을 기억하게 될 걸요!”
그는 태양처럼 빛나는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보며, 늘 용기와 자신감에 넘쳐있다.
기기는 관광객들에게 때론 (허황된) 이야기를 전한다.
금붕어를 갖고 싶은 공주에게 적국에서 새끼고래를 금붕어라고 속이고 전해주자, 공주는 이 말을 믿고 고래를 키운다.
처음에는 작아 접시에서 키우다 자꾸 커지자 욕조, 수영장, 마침내 지금의 이 원형극장 수족관에 까지 옮기게 된다.
“크면 클수록 좋지, 그러면 더 많은 황금을 얻을 수 있겠지, 지금은 물고기이지만 다 크면 금으로 변하겠지....”
공주가 엄청난 양의 먹이를 먹이면서 금붕어가 금이 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라경영은 엉망이 되고, 결국 고래를 선물로 준 나라에 침략당하고 자신도 수족관에 몸을 던져 죽는다.
남의 말을 믿고, 허황된 꿈에 모든 걸 바친 결과다.
지금 우리가 투자하는 그 시간들에 혹시 (허황된, 과도한) 욕심, 욕망이 끼어있진 않을까?
이런 사람들이 평화롭게 사는 도시에, 어느 날, 눈에 띄지 않는 어둡고 차가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점점 대도시 전체로 번진다.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지만, 옷, 얼굴, 모자, 시가 ... 모두가 잿빛인 회색신사들이 멋진 차를 타고, 멋진 옷을 입고 나타나 멋진 식당에 자리 잡고 있다.
재간둥이 기기를 포함해 사람들 아무도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모모만은 알아보았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 회색신사는 뭔가를 이루고, 뭔가 중요한 인물이 되고, 뭔가를 손에 쥐려면, 거기에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투자하라고 유혹하고 부추긴다.
(평화로운 삶에 부, 명예 권력 같은 욕심, 욕망에 사로잡히게 하고는 시간을 빼앗아가는 그림자다)
그곳에 사는 이발사 ‘푸지’는 자기 인생을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 유명한 이발사는 아니었지만 그가 살고 있는 곳에서 존경받는 사람이었고, 부자는 아니지만 도시 한복판에 작은 이발소를 가질 정도로 가난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늘 그렇듯이 (남들과 비교하면) 괜히 자신이 작아 보이고, 하는 일이 하찮아 보이고, 힘껏 노력하면 더 나아질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회색신사는 다가와 속삭인다.
“푸치 씨 당신은 인생을 철컥거리는 가위질 소리와 쓸데없는 잡담과 비누 거품으로 허비하고 있어요. (그렇게 살면) 당신이라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아예 없었던 거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인생을 사는데 필요한 시간이 충분하다면 아주 다른 사람이 되실 수 있을 겁니다.
“막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시간을 어디서 얻을 수 있죠? 우리는 시간을 아껴야 합니다. .. 1분은 60초, 한 시간은 60분, .. 1년은 3,153만 6천초, 10년이면 3억1,536만초가 됩니다. ....”
그리고선, 잠자고, 일하고, 밥 먹고, 취미생활을 하는 시간이 너무 많으니 이런 시간을 줄여고, 일도 더 빨리해서 그 아낀 시간들을 ‘시간 저축은행’ 시간을 맡기라고 한다. 이자도 준다면서 ...
푸치는 다른 인생을 새로 시작하기 위해서 시간을 아끼기 시작했다.
손님 한 명당 이발시간을 30분에서 15분으로 줄이고, 시간을 낭비하는 잡담도 하지 않았다. 나이 드신 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내버리고, 매일 찾아가던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는 시간도 사무적인 편지로 대신하고, 기르던 앵무새도 팔아버렸다. 명상이고, 노래고, 책을 읽고 친구를 만나는 행위까지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신경은 점점 날카로워지고 안정을 잃어갔다. 시간을 아끼겠다는 마음에 시간을 알뜰하게 쪼개 썼지만, 그는 시간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손톱만큼의 자투리 시간도 없어지고 하루는 점점 짧아졌다.
(회색분자의 유혹으로) 이런 분위기는 확산되어 ‘시간절약’을 시작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점점 많은 사람들이 앞사람의 행동을 따라했다.
‘시간을 아끼면 미래가 보인다!’
‘더욱 보람찬 인생을 사는 법 : 시간을 아껴라’
‘시간은 돈과 같다, 그러니 절약하라’ ......
이런 팻말들이 도시 온 곳에 걸리고, 옛 구역은 철거되고 아파트 같은 똑같은 집들이 건설된다.
성냥갑 같은 고층건물, 단조로운 거리, 삭막한 질서 ... 결국 대도시의 모습도 변해가고, 아무도 자신의 삶이 점점 빈곤해지고, 획일화되고, 차가워지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람들은 시간을 아끼면 아낄수록 가진것이 점점 줄어들었다.
모두 다 돈을 좋아하게 되고, 좋고 큰 물건에 대한 욕심이 생기고, 부모는 아이와 놀아 줄 시간이 없어지고, 아이들에게서 동심이 사라지고, 모두가 바빠서 시간이 없다고 한다.
상냥하고, 노래도 잘 부르고, 독특한 생각을 가졌던 사람도 갑자기 신경질적이고 퉁명한 사람이 되고, 이런 증상은 전염성이 강한 정신병처럼 돌고 있다.
모모는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듣는다.
사람들 모두가 그런 일을 할 시간이 없다. 너희들을 위해 쓸 시간이 없다 말하는데 ...
“뭔가가 있는 것 같지 않니? 도대체 무엇 때문에 시간이 없는지 정말 이상해”
“하지만 내가 뭘 어쩔 수 있겠니? 시대가 변하는 걸, 요즘에는 모두 그렇게 살고 있어. 왜 나만 혼자 다르게 살아야 하지?”
모모는 폐허의 돌계단 에서 인형하나를 주웠다.
그 인형은 말한다.
"난 비비 걸이야. 난 네거야. 모두들 날 갖고 있는 널 부러워 할거야, 난 더 많은 걸 갖고 싶어"
인형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기를 가지라 하고, 회색신사 역시 모모에게 비싸고, 예쁜 인형을 가졌으니 넌 운이 좋다. 남들이 부러워하겠다. 인형과 놀면 이제 친구가 없어도 되겠다고 자극한다.
"몰라요. 그냥 주운거예요."
모모는 기쁘지도 않았고, 기쁨이란 것이 한갓 상상에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동시에 무언가 경고해주는 느낌을 받는다.
회색신사는 모모에게 계속 더 좋은 것을, 더 자극적인 것을 많이 가지라고 부추긴다.
“인생에서 중요한 건 딱 한 가지야. 뭔가를 이루고, 뭔가 중요한 인물이 되고, 뭔가를 손에 쥐는 거지.
실제로 그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 기회만 주어지면, 금세 생겨나는 게야.
그런데 이제 사람들은 그들에게 자기들을 좌지우지할 기회까지 주고 있어....”
모모는 이런 전염병이 회색신사와 무슨 상관이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용감하게 회색신사가 몸을 숨기고 있는 깜깜한 어둠과 텅 빈 허공 속으로 뛰어들었다.
"아무도 아저씨를 사랑하지 않죠?"
회색신사는 갑자기 약간 기가 꺾인 듯 보였다.
“그 누구도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 우리가 하는 일을 알아서는 안 돼 ..
우리는 사람들에게서 몇 시간, 몇 분, 몇 초라도 조금씩 빼내야 하는 거야. 사람들이 아낀 시간은 그냥 사라져 버려,...
어, 어떻게 된 거지? 네가 내 마음을 읽었구나....”
회색신사는 쫓기듯 달아났다.
모모는 회색신사의 정체를 깨닫고, 친구 베포와 기기 셋이서 회색신사를 물리치고, 옛 친구들과 도시전체를 구출하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어떻게 하지?”
창의력이 넘치는 기기가 말한다.
“그들은 욕심이 사나운 자들이니까 그 점을 이용하는 거야. 쥐를 잡으려면 고깃덩어리를 미끼로 쓰잖아.
마찬가지로 시간도둑은 시간으로 잡아야 해, 게다가 우리는 시간이 많잖니!....”
셋은 우선 옛 친구들을 끌어 모으고, 친구들은 다시 친구들을 불러 모아 옛 원형극장에서 기기가 우렁찬 목소리로 이야기 한다.
“지금까지 온갖 수단을 동원해 시간을 아끼고 있는데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없다고 아우성입니다. ... 말 그대로 ‘시간 도적단이 시간을 훔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모두가 함께 일할 마음만 있다면, 우리 모두를 덮친 이 무서운 허깨비들이 벌인 소등을 단번에 끝낼 수 있습니다.... 누구나 원하는 만큼의 시간을 갖게 될 거구요...”
이후 어른들까지 모아 이 이야기를 전달하려 했지만 초대받은 사람은 한명도 오지 않아 이 계획은 소용없게 되었다.
모모는 무엇을 기다리는지 밤12시가 넘도록 폐허의 돌계단에 앉아있다.
그때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거북한마리가 나타난다. 거북의 등에는 빛나는 글자가 써져있다
“같이 가자”
거북은 등에 글자 써서 모모와 이야기했다.
느릿느릿 거북은 모모를 데리고 대도시 쪽으로 가고, 모모는 뒤 따른다.
모모와 거북은 한 번도 서두르지 않았고, 기다리느라 걸음을 멈추지도 않았다.
모모는 그렇게 천천히 걸으면서도 그렇게 빨리 나갈 수 있다는 것에 갈수록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모모와 거북은 대도시 거리에 접어들었다.
거리는 텅 비어 있었고 사람은 물론 강아지, 새, 자동차도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정지해 있는 듯 했다.
거북이 오히려 전보다 더 느리게 가는 듯 한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놀랍다.
회색신사들이 자기들의 정체를 안 모모를 잡으려고 추적했지만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자동차 엑셀레이터를 밟아도 나아가지 않고 제자리에서 헛바퀴만 돌고,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던 것이다.
'언제나 없는 거리'에 이르러 모모가 표지판을 해독하느라 잠깐 지체했는데 거북이 한참 앞서 나가 있다.
모모가 거북을 따라가려 했으나 마치 세찬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 한 느낌이었고,
압력에 맞서 간신히 버티고 서고, 엉금엉금 기어보기도 했으나 따라잡을 수 없었다.
거북이 말한다.
“뒷걸음질 쳐봐”
몸을 돌려 뒷걸음질 치니 갑자기 전혀 힘들이지 않고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모모가 뒷걸음질 치는 동안, 생각도 뒷걸음질 치고, 숨도, 느낌도, 모모의 삶도 뒷걸음질 쳤다.
'이길 수 없는 상대는 친구로 만들어라'라는 속담처럼. 거친 물살을 내편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회색분자들은 모모를 잡기 위해 궁리한다.
“그 아이는 자기 시간을 다른 사람에게 선사하기를 좋아하지요”
차라리 친구인 베포와 기기를 모모로부터 격리해서 못 만나게 하면, 그 애가 아무리 시간이 많다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차라리 저주인 셈이지요. 그 아이는 머지않아 못 견딜 겁니다. ”
모모는 거북을 따라가 ‘아무데도 없는 집’에서 '시간의 수호자' 호라 박사를 만난다.
호라 박사가 내민 시계에는 글자판에 시계침도 없고 숫자도 없다. 다만 반대방향으로 천천히 돌아가는 두 개의 섬세한 곡선이 있을 뿐이었다.
“이건 운명의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란다, 드물게 찾아오는 운명의 시간을 정확하게 알려주지,
이제 그 운명의 시간이 시작되었어.”
“운명의 시간이 뭔데요?”
“이 세상의 운행에는 아주 특별한 순간이 있단다. ...그래서 운명의 시간은 아무도 깨닫지 못하고 지나가 버릴 때가 많단다. 허나 그 시간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아주 위대한 일이 벌어지지”
“그걸 알려면 시계가 필요 하겠네요”
“시계만 갖고는 소용없어, 시계를 볼 줄 알아야지”
호라 박사는 모모를 ’시계의 숲‘속으로 데리고 갔다.
거기에는 작은 방과 소파와 안락의자, 순금으로 만들어진 가제도구들, 황금빛 촛불, 빵, 초콜릿, 꿀 등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했다. 이 음식들을 먹으니 이상하게도 피곤함이 씻은 듯 사라지고, 밤새 한숨도 못 잤는데도 힘이 넘쳤다.
호라 박사가 거북을 시켜 모모를 여기에 데려온 것은 회색신사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회색신사들은) 왜 얼굴이 잿빛이에요?”
“죽은 것으로 목숨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 진짜 주인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시간은 말 그대로 죽은 시간이 되는 거야.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시간을 갖고 있거든, 시간은 진짜 주인의 시간일 때만 살아있지”
“저는 제 시간을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겠어요!”
“한집에 세형제가 살고 있어 그들은 정말 다르게 생겼어, 그런데도 구별해 보려고 하면 다른 둘과 똑같아 보이는 거야.
첫째는 없어 이제 돌아오는 참이야(미래), 둘째도 없어. 벌써 집을 나갔지(과거), 셋째만 있어(현재)..
하지만 셋째 역시 첫째(미래)가 둘째(과거)로 변해야만 있을 수 있어. 이 세 형제는 하나일까? 둘일까? 아무도 없는 것일까? ”
이 셋은 꽃과 열매와 씨앗 같은 건 아닐까? 씨앗은 가장 작고 잘 보이지도 않지만 씨앗(과거)이 없으면 꽃(현재)과 열매(미래)가 없고, 열매(미래)가 씨앗(과거)이 되어야 꽃(현재)이 필 수 있다.
지금 있는 건 ’현재‘, 바로 ’이 순간‘뿐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순간‘이고, 미래는 ’앞으로 올 순간‘이다.
이 셋이 함께 사는 집이 바로 ‘세상’이다.
시간이란 것은 만져볼 수도, 붙잡아 둘 수도 없다.
계속 지나가는 것이 시간이지만, 또 언제나 거기 있는 것이다.
호라 박사는 모든 사람들의 시간은 '언제나 없는 거리'에 있는 '아무데도 없는 집'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비밀을 알려준다. .
(바쁘지 않을 때, 혼자 있을 때 생기는 것이 시간이다.)
“도둑들이 사람들한테서 더 이상 시간을 훔쳐가지 못하도록 조정할 수는 없나요?”
“그럴 수 없어, 자신의 시간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는 문제는 전적으로 스스로 결정할 문제니까. 또 자기 시간을 지키는 것도 사람들 몫이지, 빛을 보기 위해 눈이 있고, 소리를 듣기 위해 귀가 있듯이, 시간을 느끼기 위해 가슴을 갖고 있단다. 가슴으로 느끼지 않는 시간은 모두 없어져 버리지”
“제 가슴이 언젠가 뛰기를 멈추면 어떻게 되요?”
“그러면 네게 지정된 시간도 멈추게 되지, 지나온 너의 낮과 밤들, 달과 해들을 지나 되돌아 간다고 말할 수 있을게다.
언젠가 네가 그 문을 통해 들어왔던 ...그 문을 다시 나가게 되지”
“그 문 바깥쪽에는 뭐가 있는데요?”
“네가 가끔 들었던 나지막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 거기서 너는 그 음악의 일부가 되어 스스로 하나의 음이 된단다.”
“죽음이 뭐라는 걸 알게 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게다.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아무도 사람들의 인생을 훔칠 수 없지”
"시간이 어디서 오는지 보고 싶니?"
"예"
호라 박사는 모모를 찬란한 꽃들이 핀 그곳으로 데리고 간다.
연못 표면위에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거대한 별의 추(시간)가 왔다갔다 한다.
별의 추가 다가오는 곳에서는 커다란 꽃봉오리가 피고, 추가 멀어지면 꽃은 시들었다.
해와 달, 유성과 별들이 함께 영향을 미쳐 ‘시간의 꽃’ 한 송이 한 송이 아름답게 탄생시키고 다시 소멸시키듯,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 가에 따라. 지난번 보다 더 새롭고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다.
“호라 박사님 제가 간곳은 어디에요?”
“네 마음속 이란다”
“별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하는 건 괜찮나요?”
“괜찮지, 허나 그러려면 우선 네 안에서 표현할 말이 자라나야 한단다, 정말 그러려면 기다릴 수 있어야 해,
기다린다는 것은 태양이 한 바퀴 돌 동안 땅 속에서 내내 잠을 자다가 드디어 싹을 틔우는 씨앗과 같은 거란다”
모모의 마음속에서 낱말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꽃들의 향기와 일찍이 본 적 없는 색깔을 표현하는 낱말. 새로운 꽃마다 새로운 낱말이 울려 나왔다.
모모는 행복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모모가 호라 박사를 만나고 다시 원형극장으로 돌아오는 동안, 기기는 그가 늘 꿈꾸는 부와 명성을 거머쥐고 다른 구역으로 이사를 갔다.
잘 손질된 공원 한가운데 커다란 현대식 주택을 세 내어 살고, 이름도 더 이상 기기라 부르지 않고 기롤라모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는 항상 모모와 베포 할아버지, 그리고 옛날의 생활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어느 날 기기는 얼마남지 않은 자신의 옛 모습을 끌어 모으고는 정신을 차리기로 결심했다.
"내가 아니면 누가 진실을 말하겠는가! 사람들에게 회색신사의 이야기를 들려주리라."
그때 회색신사가 기기에게 말한다.
“충고 한마디 하지, 스스로에 대해서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진 말게나.
그건 자네가 상관할 문제가 아니야.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지금보다 훨씬 잘 지낼 수 있을 걸세.”
이 말에 기기는 스스로의 긍지를 잃고 세웠던 계획도 포기하고 지금까지 지내온 것처럼 살았다. (자기가 가진 것을 놓치고 싶지 않았고,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자가 된 기기의 새로운 스타일은 모두가 따르려하는 대유행이 되었고, 이후에도 기기는 많은 약속들을 지키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늘 바쁘게 돌아다녔다.
하지만 기기는 아무런 기쁨도 느끼지 못했다.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히려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몽상가 기기는 사기꾼 기롤라모로 변해갔다. 회색신사의 포로가 되고 만 것이다.
회색분자들이 베포를 손아귀에 넣은 데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베포 역시 회색분자의 계략에 넘어갔다. (모모를 구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베포가 모모를 찾으러 경찰서에 갔다가 정신병자로 구속되어 있는데 회색신사가 찾아왔다.
“모모는 우리가 붙잡아 두고 있으니 찾으려고 하지 말고, 베포 당신도 우리들의 존재와 활동에 대해 다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그 아이를 돌려주겠소, 그리고 (모모의) 몸값으로 10만 시간을 저축할 것을 요구하는 바요”
“동의 합니다”
그날 이후 베포도 더 이상 회색신사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모모를 풀어주기 위한 시간을 저축하기 위해 더 빨리 비질을 하고, 사랑도 없이 오직 시간을 벌기위해 성급하게 휩쓸었다.
하지만 베포는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혐오감으로 몹시 괴로웠고, 혼자 같으면 차라리 굶어죽었을 것인데, 빨리 몸값을 치르고 모모를 풀어주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수주, 수개월, 계절이 바뀌는 것도 모르고 베포는 집에도 가지 않고 낮이나 밤이나 헉헉대며 계속 쓸고 또 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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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노가 운영하는 '빠른 레스토랑'에서는 항상 손님이 북적거린다. 음식점 앞에는 수많은 차들이 줄을 서고, 손님들은 자리를 잡으려고 애를 쓴다.
음식이 나오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해 신경질 적이고, 음식이 나오면 맛도 느낄새도 없이 허겁지겁 먹는데도 다른 사람이 또 기다린다.
주인도 계산대에 앉아 쉴새없이 계산기를 두드리고, 돈을 받고, 거스름돈을 건네준다. 니노는 오랜만에 만난 모모와 대화를 나눌 시간도 없이 바쁘다. 그의 얼굴에는 옛날의 그 미소가 사라져버렸다.
시간이 지난 후 모모는 다시 기기를 만났지만, 기기는 옛날의 기기로 남아있지 못했다.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건 꿈이 이루어지는 거야,.. 나는 더 이상 꿈 꿀게 없거든 ..
내가 아직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더 이상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고 묵묵히 사는 것 뿐 일거야. 아마 남은 여생동안 그래야겠지,... 꿈도 없이 가난하다는 것, 그건 지옥이야. 이것 역시 지옥이지만 적어도 편안한 지옥이거든 ..”
모모는 이렇게 말하는 기기가 죽도록 아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보물이 있는 동굴에 갇힌 느낌. 보물이 점점 불어나서 숨이 막힐 것 같지만 출구가 없는 곳.
세상에는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없으면, 그것을 소유함으로써 파멸에 이르는 그런 보물이 있다.
재벌들의 경영다툼이 그렇고, 요즘 정치권력을 보면 특히 더 그렇다.
바쁘다. 모두가 바빠도 너무 바쁘다.
베포도, 기기도, 친구도, 이웃들도 다 회색신사에게 사로잡힌 것을 안 모모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곤경에 빠진 친구들을 도우고자 결심한다.
모모는 잠시 잃어버렸던 거북을 다시 찾고, 거북은 모모를 호라 박사가 있는 곳으로 데려간다.
“거북아 좀 더 빨리 가게 널 안고 가면 안 될까?”
“미안하지만 안 돼”
“왜 꼭 네가 직접 기어가려고 하니?”
“길은 내 안에 있어”
“부탁이야 좀 더 빨리 가면 안 될까?”
“느리게 갈수록 더 빠른 거야”
느릿느릿 갈수록 더울 빨리 갈수 있고,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더욱 천천히 갈 뿐이라는 것이 하얀색 구역의 비밀이었다.
모모와 거북은 '아무도 없는 거리'를 지나 '아무데도 없는 집'에 이르러 호라 박사를 다시 만난다.
호라 박사는 이야기 한다.
“시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 몸에서 금방 시간이 빠져나간다, 터진 고무풍선에서 공기가 빠져나가는 것처럼, 풍선은 터진 조각이라도 남지만 시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단다.
시간은 언젠가 시작되었다가 언젠가는 끝나지. 물론 사람들이 시간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을 때 끝난단다.
사람은 저마다 가슴을 갖고 있기에 그런 황금빛 시간의 사원을 하나씩 갖고 있다.
사람들이 그 사원에 회색신사들을 들이게 되면 회색인들은 시간의 꽃을 야금야금 빼앗을 수 있게 된단다.....
내가 보내는 시간에 회색신사들의 유령 같은 시간이 섞이게 되면 사람들은 병이 들게 돼. ”
“그 병이 어떤 병인데요?”
“처음에는 거의 눈치를 채지 못해, 하나 어느 날 갑자기 아무것도 하고 싶은 의욕이 없어지고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낄 수 없지. 이 증상은 점점 커지고 악화되는 거지,
그러면 기분이 언짢아지고, 가슴속이 텅 빈 것 같고, 스스로와 이 세상에 불만을 느끼게 된단다. 아무런 감정도 못 느끼고, 무관심해지고, 잿빛이 되는 거지, ....
그 사람은 공허한 잿빛 얼굴을 하고 바빠 돌아다니게 되지 회색신사처럼 ...그 병은 "견딜 수 없는 지루함"이란다.
.... 넌 별의 음성을 들었잖니, 두려워할 것 없다.
거북(카시오페아)는 시간의 바깥에 있지, 자기 안에 자기의 자그만 시간을 갖고 다니거든...
호라 박사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괴롭히는 이 유령을 스스로 떨쳐버리기를 기다려 왔다.
하지만 회색인간들이 존재하는건, 사람들 스스로 (회색신사를) 도왔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모모에게 요청한다.
"네가 도와주겠니?"
"예"
"그러면 넌 이루 말할 수 없는 엄청난 위험에 빠지게 돼. 이 세상이 영원히 멈추든가 아니면 새로 시작하든가, 그건 전적으로 네게 달려있다. 이런 위험한 모험을 정말 감당할 수 있겠니?"
"예"
"내가 절대 잠을 자지 않는 다는 걸 알아야 한다. 내가 잠이 들면 그 순간 모든 시간은 멈춰버리지, 이 세상이 멈춰 서는거지, 허나 시간이 존재하지 않으면 회색신사들 역시 누구한테도 시간을 훔칠 수 없지...
...헌데 내게는 딱 너 한 사람에게만 '시간의 꽃'을 줄 힘이 있단다. 물론 한송이 밖에 줄 수 없지. 언제나 한송이만 피어나니까. 그러니까 이세상에서 시간이 전부 멈추어도 넌 1시간을 갖게 되는 거야
시간이 멈추고 시가의 보급이 중단되면 회색신사도 알아차리고 시간을 쌓아둔 창고로 갈 것이다.
넌 그들을 끝까지 따라가 창고에 못가도록 막고, 최후의 시간도둑이 사라지면....그들이 훔친 시간을 그 시간의 진짜 주인인 사람들에게 돌아가야만 정지된 세상이 풀려나고 나 역시 잠에서 깨어날 수 있거든 ...
넌 별의 음성을 들었잖니. 두려워할 것 없다"
'카시오페아(거북)도 가겠다고?
"카시오페아는 시간의 바깥에 있지, 자기안에 자기의 자그만 시간을 갖고 다니거든, 그래서 모든 것이 영원히 정지해 버려도 카시오페아는 이 세상을 기어다닐 수 있단다."
(나도 아무리 바빠도 나만의 작은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호라 박사가 떠나고 이제 모모는 돌이킬 수 없는 최대 모험이 시작된다.
호라 박사의 문패가 달린 문과 바깥쪽의 커다란 문을 열자 강한 진동이 일어났다.
시간을 뒤흔드는 진동, 시간의 지진이었다. 그러고 나서 모든 것이 멈추고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시계도, 시계추도, 모래시계도, 거리의 자동차도 ... (시간이 정지된 것이다)
모모는 자기 손에 신비롭고 아주 커다란 ’시간의 꽃‘ 한 송이가 쥐여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이 멈추고 사람들로부터 뺏은 시간으로 만들었던 시가의 공급이 끊기자. 회색분자들 끼리 서로 살기위해 남의 시가를 빼앗았다. 시가를 빼앗긴 자는 순식간에 기운이 모두 빠져나가고 급격히 투명해지더니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나머지 회색신사들은 달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리에는 차도, 보도위의 사람도, 고양이도, 교통순경도, 광장을 날던 비둘기도, 배기연기 마저도 공중에 그대로 멈춰서 있다.
시가가 떨어트린 회색분자는 그것을 찾기도 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시가가 다 타버린 자들은 절망한 나머지 서로의 입에서 시가를 낚아챘다, 그렇게 해서 그들의 수는 꾸준히 줄었다.
모모가 회색분자를 쫓는 도중 베포 할아버지를 만났다. 몸은 구부정하고 선량한 얼굴은 해쓱했다. 베포 역시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굳어 있었다.
모모가 계속 달리고 달리며 회색분자를 쫓던 중, 대도시 변두리에서 건물들과 도로들이 어찌나 똑같은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규칙과 획일의 미궁'이었다.
회색분자는 “주의! 생명을 잃을 수 있음, 관계자 외 절대 출입금지”라고 표지판이 붙은 건물로 뛰어 들어갔고, 창고 한곳에 모여 (시가도 부족하니) 조금이라도 오래 더 견디려면 우리의 수를 줄여야 한다면서 동전을 던져 사라질 사람을 정하기로 했다.
동전을 던져 짝수번호는 남고 홀수 번호는 시가를 빼앗기고 사라졌다.
“자 한 번 더!”
이렇게 해서 회색분자들은 6명만 남게 되었다.
모모는 생각했다. 차가운 회색신사들이 한명도 없다면, 얼었던 시간의 꽃들은 저절로 녹을 것이다.
그래서 회색분자들이 시가공급을 받지 못하도록 시간의 꽃잎 하나로 창고 문을 닫았다.
이에 회색신사들은 모모를 잡으려고 달려가다 4명은 거북이에 걸려 넘어져 시가를 떨어트려 사라지고, 나머지 회색분자 둘도 시간의 꽃을 뺏으려 하다가 시가 꽁초를 떨어트려 최후의 회색분자도 사라져 버렸다.
모모는 단 한 장 남은 꽃잎으로 다시 창고 문을 살짝 건드려 열었다.
최후의 시간 도둑도 사라지고, 냉기도 사라져 있었다.
어마어마한 큰 창고 안에는 수많은 시간의 꽃들이 끝이 안 보이는 긴 선반에 가지런히 세워져있다.
어떤 꽃은 다른 꽃보다 더 찬란했고 하지만 똑같은 꽃은 하나도 없었다.
(사람마다 각자의 시간의 꽃은 모양도 다 다르고, 각각 자신만의 아름다움이 있다)
살아있는 생명의 꽃이 수백만 송이나 되었다. 그 안은 온실처럼 따뜻했고 점점 더 따뜻해졌다.
그때 꽃들의 폭풍이 강하게 일어나고 모모도 날아다녔다.
꽃들은 눈송이처럼 얼어붙은 세상위에 떨어지고, 눈송이처럼 녹아 사라졌다.
그 꽃들은 원래 있었던 곳인 사람의 가슴속으로 흘러들어간 것이다.
그 순간 시간은 다시 흐르고, 모든 것이 활기를 띠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전처럼, 자동차가 달리고, 비둘기가 날아다니고, 강아지는 전신주에 오줌을 쌌다.
(정지된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 있었다.
별안간 모든 사람들이 한없이 시간이 많아진 것이다. 모두들 기뻐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들이 아낀 시간이라는 것, 그것이 되돌아 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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