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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법정 스님의 《무소유》로 ....

BOOK 적(積) 글적(積) (독후감)

by 유초선생 2024. 10. 1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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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무소유》와 《산에는 꽃이 피네》를 읽는다. 

책 전체가 ‘무소유’와 ‘비움’의 아름다움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읽는 내내 옹달샘처럼 맑음이 샘솟고, 기름기 없는 산들바람이 불어와 
마음은 이미 천연염색 옷을 입고 밑줄 그을 연필을 들게 된다. 

단순하고 절제된 삶, 
자연을 거슬리지 않는, 자연과 어우러진, 자연의 삶이다. 
법정스님의 삶속에 문명의 이기(利器)는 없어도, 거기에는 자연이 있고, 여유가 있고, 충만함이  있다.

법정스님은 서울에 갈 때, 큰 서점에 들러 전공(불교)과 관련 없는 책들을 산다고 한다. 
'어느 책이든 내가 배울 것이 많다'고 하셨는데, 나 역시 책의 양부를 가리지 않는다. 
오래된 책이든 신간이든, 철학책이든 소설이든, 유명작가가 쓴 책이든 작가 지망생이 쓴 책이든, 두껍든 얇든 ....
모든 책에는 분명 가슴에 와 닿는 부분이 있고, 밑줄 그을 부분이 있다. 

특히, 스님은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를 좋아해서 30여권을 다른 사람에게 선물했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아 스님도 이렇게 하시는 구나’..
나 역시 포켓용 어린왕자를 사서 쟁여두었다가 친한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너희들도 읽어 보라며 며느리와 사위에게도 선물했기 때문이다,  

스님은 왜 ‘어린왕자’를 좋아하셨을까? 
단순한 동화를 넘어, 여기엔 가장 좋은 것이 가장 단순한 것이고, 진정한 사랑과 재산은 남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라는 삶의 철학과 인생의 본질이 녹아 있기 때문은 아닐까?
혹은 스님은 아직도 꿈꾸는 소년이고, 별에서 온 어린왕자와 닮아서이지는 않을까? 
‘무소유’가 맑은 바람이라면, ‘어린왕자’는 달콤한 향기를 담은 장미, 혹은 코스모스 같다.
파란하늘 맑은 바람에 하늘거리며 흔들리는 가을 코스모스. 
법정스님의 ‘무소유’는 언론을 통해, 입을 통해 진즉 알았지만, 그럼에도 정작 스님의 책은 읽어보지는 못했다. 
지금 이 책도 사실은 '당근'에서 공짜로 나눔받은 책이다.
 

《무소유》는 1976년 출간된 법정스님의 수필집이고, 《산에는 꽃이 피네》 는 스님의 말씀을 류시화 작가가 1998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두 권 모두 오래된 책이다.  

《무소유》에 쓰인 수필들은 대부분 1969년, 70년, 71년에 쓴 글들이니까 50년도 넘은 글들이다. 그럼에도 세상이 바뀐 오늘에 다시 읽어도, 거기에는 구태하다거나, 사고의 진부함이라든지 하는 것이 조금도 없다. 
디지털 문명과 SNS가 최고로 발달한 지금 시대에, 오히려 더 가슴에 와 닿고 우리가 더 배우고 닮아야 할 주옥같은 글이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그럼에도 나는 종교적 관념에 빠져 내 것만 옳다하는 외눈박이가 되기는 싫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신이 버쩍든다. 만일 ‘당근’을 통해 이 책을 얻지 않았다면, 영원히 이 책을 못 읽었을 수도 있을 것이고, 스님의 무소유의 삶이, 진정한 비움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고 살아갔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무소유, 비움.
방안의 쓰레기통 하나를 비워도 마음이 깨끗해지고, 다시 담을 수 있는 공간이 생겨 여유롭다. 
하물며 인생에서도 무소유와 비움의 철학을 실천한다면, 우리 삶이 얼마나 걱정없고, 가볍고, 여유로울까? 

인간의 소유욕은 끝이 없다. 
나는 시골출신이라 우리 집엔 중학교 2학년 때쯤인 1974년에 전깃불이 들어왔다. 
호롱불 밑에서 공부했고, 어느 순간 ‘지지직~~’하면 호롱불에 머리카락이 타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공부를 잘했으니, 난 아무래도 타고난 머리가 좋았던 것 같다. ㅎㅎ

일단 전기가 들어오니까 동네 큰 과수원을 가진 부잣집에서 텔레비전을 넣었다.
당시 인기 있던 드라마 ‘여로’나 김일 선수의 레슬링 중계를 할 때면 동네 어른아이들 30명  쯤이 모여 마당에 멍석을 깔고 TV를 보곤 했다. 
어떤 날은 주인이 ‘오늘은 안 된다’하면 대문 밖에서 불평을 하고 욕을 하며 돌아서곤 했다. 
전기가 없었으면, 텔레비전이 없었다면 불평할 일도, 욕 할일도 없을 좋은 이웃어른이신데 말이다. 

법정스님은 1975년 10월부터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홀로 지내시며 산문집 '무소유'를 냈다. 
이후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지자, 1992년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쯔데기골 외딴집에 거처를 마련하고, 2010년 법랍 78세로 입적하실 때 까지 홀로 기거하셨다.
복잡함으로 부터 스스로 떠나신 것이다. 
거기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전기가 들어오면 냉장고다 텔레비전이다 필요한 가전제품을 또 넣을 것이고, 그러면 산중에 사는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시란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 는 뜻이다. 
내 주위를 돌아보라. 사무실, 방안, 창고를 가득채운 것들이 얼마나 많고, 그것들이 과연 내게 꼭 필요한 것들인가? 
혹시를 대비해서?, 돈 주고 산 것이니까, 남 주기도 아깝고 버리기도 아까워서? 그 불필요한 짐 덩어리들을 안고, 좁게, 갑갑하게 사는 것이다. 

스님의 말씀이 폐부를 찌른다.
‘무소유’란 이런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하나만 가지면 소중함을 아는데, 둘을 가지면 둘 다 소중함을 잃게 된다. 

나는 요즘 당근(당신 근처에, 중고품 매매 사이트)하는 재미에 빠져있다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호기심이 많은 내가 당근을 하다보면 빠지기에 딱 좋다.   
‘세상에 이런 것도 있었네....’ 내가 처음 보는것도 있어 신기하고, 정말 내게 꼭 필요했던 것도 있다.
무엇보다 집에 이미 있는데도 가격도 싸니까  일단 잡아두자며 충동구매를 한적이 몇번이나 있었다.   
  
골프 캐디백이 하나 더 늘었고, 캠핑용 접이식 의자도 방구석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다.
'중독이다.'
명품과 물건에 전혀 욕심이 없던 내가, 당근이후에 나의 소비행태가 변한 것이다. 
무소유, 비움을 읽고 깨닫는다.
이제는 버린다. 
돈주고 샀다가, 되려 돈주고도 버린다. 
새로 바꾸면서 보관했던 멀쩡한 TV, 피아노, 냉장고, 의자, 방안을 차지했던 운동기구, 옷, 신발들...
그리고 억지로 엮어 두려했던 인간관계, 전화번호, 채권, 미련, 애증마저도 ...
다시는 매지 않고, 매이지 않을 것을 다짐하면서 ...
잘 했다
갑갑했던 방이 넓어지고, 속이 시원하다.
어깨가 가볍고, 발걸음이 가볍고....무엇보다 마음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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