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세계는 하나의 지구촌, 글로벌시대, 다문화사회가 되었다.
통상 외국인 주민의 비율이 5%가 넘으면 다문화사회라고 할 수 있다.
외국인 출입국정책본부의 통계에 따르면 2024년 9월말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은 약290만 명으로 우리나라 인구 5,175만 명의 약 5.6%에 달한다.
아파트, 공원, 상가, 학교 이제 어디를 가도 외국인을 만나게 되고, 내 이웃주민으로 같이 조깅을 하고, 반려견과 산책하는 공동체 일원이 되어 있다.
물론 외국인 거주자의 비율은 이것보다 좀 낮겠지만, 한국의 급속한 고령화 사회로의 전환, 출산율 저하, 생산을 위한 노동력 부족 등을 감안할 때, 이제 한국도 급격한 다문화사회로의 전환은 불가피해 보인다.
요즘 TV프로그램을 보면 외국인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도 많고, 출신국가도, 인종도, 피부색도 다양하다. 이런 다문화가 오히려 이 사회를, 문화를 풍성하게 만든다. 다양성은 이 사회의 양념이다.
이제 인종이나 피부색을 따지면 시대에 뒤진 사람으로 오히려 낙인이 찍히고 지탄을 받는 사회가 된 것이다.
나 역시 교회 다문화사역을 하면서 외국인근로자, 결혼이주여성,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문화와 한글교육을 하면서 그들을 섬기듯 대한다.
아직 일부국가에서 인종차별적 발언이나 행동이 있긴 하지만, 과거 흑백분리정책 같은 극단적인 인종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사회가 오기까지 거기에는 많은 희생과 도전과 노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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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이후 유럽 국가들은 경쟁적으로 식민지 개척에 뛰어들었다.
이들이 진출한 중남미 카리브해 섬들과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농장을 경영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고, 1629년 아프리카 흑인노예 20여명을 태운 선박이 버지니아 제임스타운에 들어온 것이 흑인 노예의 시초다.
여러분은 흑인노예의 처절한 삶을 다룬 영화 “만딩고”와 “뿌리(ROOTS)”를 기억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는 대화가 가능한 짐승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영혼이 있고, 우리도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고 외치고 있다.
이런 노예제도는 1865년 남북전쟁이 끝날 때까지 인 200년간 존속되었고, 그해 12월 헌법 개정을 통해 노예제도가 폐지되었다.
이후 1870년 수정헌법이 비준 통과되면서 흑인들에게도 참정권이 부여되었다.
흑인들도 백인들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개인과 국민의 기본적 인권이 보장된 것이다.
수정헌법 13조 : 노예제도 폐지 공식화
수정헌법 14조 :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귀화한 자는 모두가 미국시민이며 사는 주 시민이다. 미국 시민의 특권 또는 면책권한을 제한하는 법을 만들거나 강제해서는 안 되며 ...
하지만 법과 현실은 멀었다.
'노예제도'는 폐지되었지만 '흑인 차별정책'이 만들어진 것이다.
특히 남부 주들을 중심으로 미국 수정헌법 14조는 '정부의 활동에만 적용된다'는 맹점을 이용하여 '흑인격리정책'을 시행하였다.
그 이유는 ‘전체사회 안정에 기여한다.’는 것이고,
원칙은 ‘분리하되 동일하게(Separate But Equal)였다.
루지애나주의 차량분리 법령(separate car Act, 1890)을 보면 기차여행 때 백인 칸과 흑인 칸을 분리를 의무화 했다.
이후 호머 플래시(흑인 핏줄 20%, 거의 백인)라는 시민운동가가 백인 칸에 탑승했다가 체포되어 수감되었고, 플래시가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루지애나 법원 – 루지애나 최고법원 – 연방대법원까지도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결하였다.
그 판결의 배경에는, 백인과 흑인은 정치적으로 동등할 뿐, 현실적으로 흑인들은 백인에 비하여 사회적으로 열등하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후 이런 인종간이 격리정책은 열차, 학교, 식당, 극장, 공중화장실, 식수대 거의 모든 일상생활에서 공공연하게 시행되었고, 60년 정도 후인 1950년대에 이르러서야 바뀌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55년 흑인여성 로자파커스가 퇴근시 버스 백인좌석에 앉았다.
(버스 앞줄 4줄은 백인석으로 통용되어 좌석이 비면 앉아도 되나 백인이 요구하면 양보해야 함)
이때 백인들이 흑인 4명에게 자리를 옮길 것을 요구하자 흑인 3명은 자리를 옮겼고 로자파커스는 거부했다.
로자파커스는 흑인분리에 대한 몽고메리시 조례위반혐의로 체포되자 '버스보이콧 운동'이 전개되었고, 유명한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루터 킹 목사를 중심으로 ’몽고메리 진보협회‘를 구성한다.
미국최대 흑인민권단체(NAACP)와 민권운동가들은 연방법원에 '버스에서의 흑인분리정책'에 대한 위헌심판을 청구하고, 1956년 연방대법원으로부터 '위헌 판결'을 받아낸다.
그녀의 행동으로 이 땅의 지형과 법칙이 바뀐 것이다
“그날 당신은 왜 버스 앞자리에 앉았나요?”
“피곤했거든요”
하지만 피곤한건 그녀의 몸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영혼이, 그녀의 마음이,
그녀의 존재전체가 인종차별주의자의 규칙에 놀아나는것에 피곤해졌다는 이야기다.
그녀가 행동으로 그것을 실천하는 순간,
그것은 진정한 자아를 주장하는 시간,
타고난 선물을 되찾는 시간,
세상을 바꾸는 '진실의 순간'이었다.
(지금도 진실의 순간들은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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