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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생(餘生)이 아니라 여생(麗生)을....

유초잡감

by 유초선생 2024. 10. 25.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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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맘 먹고 기타학원에 등록했다.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미루었고, 기타까지 사 놓고도 또 몇 년을 미루었다. 

학창시절 소풍갈 때, 여름방학 친구들과 캠핑갈 때 통기타는 꼭 매고 다녔다.
당시 기타는 청춘을 상징하고 젊음을 표출하는 도구였다. 

새로운 노래는 포켓가요집을 사서 멜로디를 뜯어가며 익혔고, 팝송은 친구들끼리 모여서 먼저배운 친구가 가르쳐주고 또 배웠다. 
그때 손가락으로 하늘을 찌르고 다이아몬드 스텝을 밟던, 고고춤 추기 좋은 노래들이 beautiful Sunday, who will stop the rain ...등 이었고, 사회에 나와서는 MY WAY도 많이 흥얼거렸었다. 

MY WAY...
인생 2막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음미해보니 어쩌면 내 인생과도 닮아있다.
'우리 참 열심히 살았었지 ....'

어린 나이에 세상 이겨내느라 고생도 많았고, 인생의 구비마다 실패도 하고 후회도 했었다.
한편 열심히 해서 능력을 발휘하고, 인정도 받고, 중추적 위치에도 올랐다.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시골촌놈이라 의지할 곳은 열심히, 성실하게, 우직하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고, 지금은 결과이자 보상이었다.   

이렇다 특별히 내 세울 것도 없지만, 가족 모두 건강하고, 살아온 세월이 그렇게 아쉽지 않은걸 보니 이만하면 괜찮은 인생을 산 것이 아닌가도 싶다.

특히 아들 딸 결혼할 때 남들처럼 해 주지도 못했지만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걱정은 마시고 엄마 아버지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건강만 잘 챙기시라”고 말을 하는 걸 보니 정신도 바로 든 것 같아 자식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입에 발린 소리일지라도 마음에 걱정을 덜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지금의 최대 관심사는 내 인생, 우리 부부의 인생을 어떻게 건강하게 즐겁게 사느냐는 것이다.    

나이를 잊고 산다 했지만, 세월은 지름길로 와서 지금이 가을임을, 곧 겨울도 올 것임을 알려준다. 
하얗게 머리가 세 가고, 밥을 먹다가 가끔 혀가 깨물릴대는 이제 뇌의 명령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유튜브에서 은퇴 후의 생활이나 노후문제 등에 대한 콘텐츠를 많이 보게 된다. 

나는 스스로 ‘꿈꾸는 소년’이라고 늘 말해왔다. 
무지개를 좆는 소년이고, 지금도 가슴속에 별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어느 날 누가 내게 물어왔다. 
“너는 퇴직 후에, 은퇴 후에 뭐 하면서 지낼 것이냐?”고
그런데 순간 나는 금방 답을 하지 못했다. 
“열심히 일했으니 좀 쉬어야지 뭐 ....좀 쉰 후에 뭐라도 하겠지 뭐.... 맨날 할 일없이 놀기야 하겠어?”

생각은 낮은 단계로의 재취업, 귀촌, 강사, 여행 작가.. 혹은 일본에 유학해서 공부를 더 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사실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 
아이들도 내 기질을 알고, 아내도 그런 부분에 대해선 쿨 해서 "하고 싶은것 있으면 뭐든지 하라"고 했지만,
막상 “퇴직 후 뭐하고 살 것이냐?”는 단도직입적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얼버무리는 나를 보고 스스로 깜짝 놀란 것이다.   

그런데 ... 과연 나는 퇴직 후엔 뭐하고 살지?
지금까지 열심히 일했으니 이제부턴 스트레스 안받고, 그냥 놀며 여생(余生, 남은 인생)을 보낼 것인가?  
아니면 죽을 때 까지 소년처럼 꿈을 꾸고, 배우고, 사랑하며 여생(麗生,아름다운 인생)을 보낼 것인가?   
색소폰을 배워서 퇴근 후나 주말에 동호인들과 연습하고 연주회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친구가 “너는 기타 배우고, 너는 드럼 배워서 우리 그룹사운드를 만들자. 그러면 노후에 심심하지 않고 젊게 살 수 있다”는 말에 .... 몰래 기타학원에 등록을 했던 것이다.  

난 아직 하고 싶은 게 많다.
회사 일도 열심히 해야 하고, 책도 많이 읽고, 글을 써서 블로그도 운영하고, 외국어 공부도 더 하고 싶다. 
하루하루를 재미나게 바쁘게 사는 것도 좋지만, 진짜 중요한건 건강하게 사는 것이고, 온전한 나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리 많이 남지 않은 시간인데 ...
(그게 무엇이든) 후회가 남지 않도록, 하고 싶은걸 하면서 즐겁게 사는 것이다. 

그 뻣뻣한 말총머리도 나이가 드니 힘이 빠진다. 
힘이 빠지니 욕심(?)도 줄어든다.  
‘그게 뭣이라고 ....물질, 명예, 권력, 지식에 욕심을 낼 필요도 없다. 

지금 내가 가진 것, 지금 내 모습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자. 
지금까지 참 열심히 ...충.분.히. 열심히 살았다. 
지금부터의 내 남은 인생은,  
여생(餘生)이 아니라 여생(麗生)이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만의 속도로, 나답게 ... 

I've lived a life that's full
I've traveled each and every highway
And more, much more than this,
I did it my way
https://www.youtube.com/watch?v=VbPfTnjkL18&pp=ygUNbXkgd2F5IOuFuOuemA%3D%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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