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혼자 떠나는 여행, 역마살인가? 호기심인가?

뚜벅뚜벅 인생여행 (자유 여행기)

by 유초선생 2024. 10. 8. 10:31

본문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그것도 거침없이, 혼자 떠나는 여행. 

멋진 경치와 맛 집으로 소문난 곳,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명승고적이 아니어도 좋다. 
그냥 낯선 곳으로 떠나보는 것.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고, 단장하고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그냥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곧 여행이다.  

산골도 좋고, 강이나 바닷가면 더 좋다. 
오지의 커브 길을 돌때가 스릴 있고, 오르막을 오르면 내리막에 펼쳐질 풍경이 막연히 기대된다. 
거리풍경, 골목길, 양지쪽에 졸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도 나에겐 풍경이고, 
들녘의 농부, 방파제에서 세월을 낚는 사람들, 활기찬 재래시장의 군상들에서, 나와 다른 삶의 모습들을 볼 수 있어 좋다. 
거기다, 길거리와 시장에서 파는 붕어빵, 떡볶이, 손 짜장, 열무국수 한 그릇 모두, 걸음을 멈추게 하는 맛 집들이 아닌가.   

나는 참 궁금한 것도 많고 호기심도 많다. 
집 밖으로 나가면 괜히 생기가 돌고, 눈이 초롱초롱해지고, 정신이 맑아진다. 
그래서 목적도, 목적지가 없더라도 일단 집밖으로 나가보는 것이다.

왜 그럴까?
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늘 이리저리 떠돌아 다녀야만 하는 '역마살( 驛馬煞)'이 낀 것일까?
하지만 지극히 평범하고 때론 차분한 내 성격을, 굳이 모진 고난을 겪어야 할 액운인 '역마살'로 몰아붙이는 건 무리다. 
그러면 운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기질인 방랑기(放浪氣)가 있는 걸까?
그렇다고 그걸 타고는 기질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좀 그렇다. 

그래, 어쩌면 내게 한방울 집시( Gypsy )의 피가 흐르거나, 
혹은 우리가 태어나 살아가는 것 자체가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가진 구속의 삶이기에
모든 사람에게 심장이 뛰는 한 존재하는 생의 근원에 대한 동경, 먼데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은 아닐까? 

그런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은 '호기심이 많다'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난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모르는 것은 어떻게든 알고 싶어 한다. 
새로운 곳, 새로운 것은 가보고 싶고, 만져보고 싶고, 타보고 싶고, 먹어보고 싶다.
왕성한 호기심이다.

모르는 외국어를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가 있고, 
책을 읽으면서 깨달아가는 즐거움도 내겐 행복이다.  
그래서 내가 읽은 책엔 온통 밑줄 투성이다. 
한 단어, 한 문장 모두 놓칠 수 없는 소중한 발견이고, 보물들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타고난 천성이란 게 있다. 
누구는 활동적이고, 누구는 내성적이다.  
누구는 운동을 좋아하고, 누구는 책을 좋아한다. 
하릴없이 쇼파에서 뒹굴면서 TV를 보는것이 즐거운 사람이 있고, 시간만 나면 집밖으로 나가려는 사람이 있다.

난 '팔자'대로 사는 것도 좋다고 본다. 
물론 나는 타고 난  '팔자'나 '운명'같은 건 믿지 않는다. 
운명이란 것 없다. 
그래서 허브코헨은  '사람은 스스로 운명을 만들고 그 만들어진 것을 운명이라 한다'고 했다. 

자신의 본성에 충실하며 사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
난 그걸 '팔자' 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그것이 내가 만든 '운명이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한번 뿐인 인생, 내 인생은 온전히 나의 삶을 살아야 하고, 나답게 살아야 한다.  
자신의 본성을 숨기고,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가면적 인격인 '페르소나(persona)'를 쓰고 불편하게, 갑갑하게 살 필요는  없다.
페르소나적 삶은 가짜의 삶이고, 자유가 없는 삶이다.  

이제사 깨닫는다. 
내겐 거룩함 보다 자유함이, 통속함이 더 어울린다는 것을 ... 
그래서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내 감정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그런데 ...
혼자 떠나는 여행, 그 방랑기와 호기심은 어디에서 올까?  
낙엽지는 가을에 느끼는... 옆구리가 허전한 시장기 같은 외로움은 아닐까?... ㅎㅎ

 

728x90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