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본여행 마지막 날
고쿠라에서 후쿠오카로 간 후, 하카타항 완간시장에서 초밥을 먹고, 비틀호로 귀국할 예정이다.
(여행기를 쓰면서 구구절절 잡다한 이야기를 많이 썼다. 이 여행기는 그냥 나의 글쓰기 연습장이다. 혹 읽으시는 분이 계시다면, 글의 양부를 따지지 말고, 아 이런 사람은 이런 생각으로, 이런 모습으로 여행을 즐기는구나 해주면 좋겠다)
하루 밤이야 이래도 가고 저래도 간다. 고급호텔에서 잔다고 인생이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고, 게스트하우스에서 잔다고 서글픈 것도 아니다.
여행은 경험을 사는 것이다.
게스트하우스를 나와 고쿠라역에 도착했다.
우선 아침부터 해결해야겠다.
주변에 둘러보니 특별히 아침 식사로 먹을만한 것이 없어 간단하게 샌드위치와 모닝커피로 아침을 대신하기로 한다.
‘시애틀스 베스트커피’
매장이 깔끔해서 좋고, 나처럼 샌드위치와 모닝커피로 아침을 때우는 사람들이 많다.
전광판의 노선도와 요금표를 보니 하카타까지는 1,310엔이다. 자동발매기에서 승차권을 발매한다.
일본의 열차는 신칸센, 특급, 쾌속, 일반으로 구분된다.
신칸센이 제일 빠르고 요금도 비싸고, 일반이 제일 느리고 요금도 싸다.
고쿠라에서 하카타까지 신칸센은 15-17분(지정석 3,460~3,780엔, 자유석 2,160엔), 특급 40-45분(소닉 : 지정석 2,440엔, 자유석 1,910엔). 일반 95-100분(1,310엔)이다.
승차홈으로 하얀색 소닉이 들어온다.
이전에 '혼자 떠나는 북큐슈 기차여행' 때 탔던 그 멋진 소닉 특급열차다.
그때는 큐슈레일패스를 이용했기 때문에 자유석 아무데나 앉아가면 됐다. 오늘 역시 지정석이 없는 승차권이라 자유석으로 가서 앉는다.
사요나라 고쿠라 ...!!
걸으면 발과 손이 놀지 못해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는데, 기차를 타면 몸도 마음도 자유로워 많은 것을 생각할 수가 있다.
차창밖으로 낯선 풍경들이 휙 다가왔다 저만치 멀어져간다.
도시의 건물들, 달리는 차들, 산과 들판, 점점이 떠가는 흰구름 ....
(더워서) 힘들었지만, 그래도 평생 잊지 못할 좋은 추억이다.
열차가 중간 중간에 정차하고 승무원이 검표를 한다.
자동발매기로 발권한 1,310원 승차권을 내보이니까 ‘이 승차권은 보통승차권이고 이 열차는 특급이라 추가요금을 내야한단다.
’여긴 자유석이 아니냐‘고 물으니 열차자체가 다르다고 한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그래..., 가만히 생각해보니, 역에서 하카타행 '특급 승차권'을 끊은 것이 아니라 자동판매기에서 '보통 승차권'을 끊었던 것이다.
그리고 하카다행 열차라고 해서 그냥 탈게 아니고, 내가 탈 열차가 신칸센인지, 소닉인지, 일반열차인지 확인하고 타야하는데, 이전에 탔던 소닉이 들어오자 아무 생각없이 자연스럽게 자유석으로 가서 앉았던 것이다.
진짜 아무생각이 없었다.
할수없이 추가요금 800엔을 내니 ’(차내)특정특급권‘을 그 자리에서 발급해준다.
당연히 맞는일인데도 ... 어쩐지 바가지를 쓴 기분이다. ㅎㅎ
이것도 경험이다.
물론 11월쯤 떠날 두번째 '혼자 떠나는 북큐슈 기차여행'때는 당연히 레일패스로 이동할 것이다.
하카타역에 내린다.
후쿠오카는 많이 와봐서 지리를 잘 안다. 하카타역에서 하카타항까지 걸어서 가기도 했다.
하카타역 지하 쇼핑센터에서 다문화친구들과 나눠먹을 과자를 사기위해 둘러보던 중 익숙한 식품이 눈에 보인다.
계탄(鷄炭, 케이스미? 닭숯불구이?)? ... 모양이 어제 고쿠라 이자카야 '홈런식당'에서 먹었던 그 닭고기와 같다. 어제는 이름도 잘 모르고 그림만 보고 시켰는데 오늘 상표에 써진 걸 보니 닭숯불구이였는가 보다.
하카타역을 배경으로 배낭을 매고 여행하는 나의 모습을 찍어두곤, 버스를 타고 완간시장으로 간다.
완간(灣岸)시장은 하카타 극제터미널 맞은 편인 하카타포트타워 쪽에 있고, 거기 유명한 110엔 초밥집 '하카타 토요이치(博多豊一)'가 있다.
후쿠오카 국제센터앞에 내려 걸어가는데 중학생 쯤 되는 학생들이 견학을 왔는지 교복을 입고 줄서서 이동하고 있다.
규격화된 일본, 변화를 싫어하고 아직 과거에 갇혀있는 일본의 한 단면이다.
(여기서 잠깐)
이 블로그의 ‘일본의 정신문화가 일본의 건축문화에 미친 영향’이란 포스팅에서 일본의 획일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 바 있다.
흔히들 일본의 정신을 사쿠라(벚꽃)에 비유한다. 사쿠라는 필 때도 한꺼번에 피고 질 때도 한꺼번에 진다. 남들 필 때 나도 따라 피고, 남들 질 때 나도 같이 지는 것이다.
이것을 일사불란한 단결된 힘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지만, 그 기저에는 튀지 않고, 두드러지지 않고, 다수에 묻어서 가기 위함도 있다. 모난 돌이 정 맞게 되어 있다. 너무 앞서거나 너무 뒤처지면 남의 눈에 띄게 되고, 그러면 눈총을 받는다.
이런 이유들로, 일본사람들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아파트보다는 단독주택을 선호하고, 단독주택을 짓더라도 이웃에서 박공지붕을 한 2층집에 외벽을 회색으로 칠하면 나도 똑같이 따라 한다. 결국 천편일률적인 개성없는 주택이 되고 마는 것이다.
요즘 K문화가 대세다. K팝, K드라마, K스타일..., 이런 세계적 한류문화의 힘은 '끼' 곧 '개성'에서 나온다.
남들과 똑같이 해서는 이길 수 없다, 지금은 남들과 뭐라도 '차별화'하고,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앞서야' 존재감이 나타나고 성공할 수 있는 시대다. 그래서 한국은 집 하나를 짓더라도 남들과 다르게 독특하게 짓는다. 이런 강한 개성들이 한류를 만들고, 대한민국을 지속적으로 발전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일본은 지금 '잃어버린 30년'이라는 경제침체의 늪에 빠져있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의 타이틀도 중국에 내어줬다. 그 이유가 당연히 일본의 경제정책의 실패에 있겠지만,... 연구자적 입장에서 본다면 변화를 싫어하고 경계를 벗어나지 않으려는 일본인들의 정신문화도 한 요인이 되었다고 본다.
근대(1,600년~1,900년대) 초.중기에는 한국과 일본 모두 쇄국정책을 폈다. 근대 말기에 들어서 일본은 1854년 미일화친조약으로 미국에 의해 강제 개항을 당하고, 개항 후 일본은 서양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자기화 한 결과 경제.군사대국으로 발전했다.
개항한지 불과 60-70년 만에 항공기와 항공모함까지 만들었다니 기적이다. 이 모든게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변화를 받아들인 결과다.
그런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모든것이 무너졌다. 하지만 일본은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고 개미처럼 죽기 살기로 일한 결과 또 한번 국가경제를 부흥시켰다.
국민 모두가 국가의 통제에 순종하고, 개인의 사생활이 없더라도 회사를 우선으로 하는 '회사인간'이 되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결과이다. 그것이 바로 사쿠라 정신은 아닐까?
제복은 제복에 맞는 정신과 행동을 요구한다. 제복이 요구하고 나타내는 건 통일되고 획일적인 이미지다. 제복이라는 틀 안에 갇히면 개개인의 창의성과, 개성이 넘치는 자유로운 사고가 불가능하다. 사고나 행동이 자동판매기에서 판매하는 제품처럼 똑같아지고 경직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일본의 종신 고용제도와 30년간 동결에 가까운(겨우 4.4% 인상) 낮은 임금인상도 경쟁심과 동기를 유발시키지 못한다.
지금은 개성의 시대다. 상품도개성이 있어야 잘 팔리고, TV, 영화, 오락프로그램도 다양성과 개성이 있어야 인기가 있다.
K한류가 세계를 지배하는 이유가 바로 개성과 차별화에 있다.
그런데 일본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다. 도시, 건축, 패션, TV프로그램, 정신, 모두가 박제된 느낌이다.
한국에는 '강남스타일'이 있는데 일본에는 '신주쿠스타일'이 없다.
이상 순전한 내 생각이다
완간시장 토요이치에 들어간다. 아직 12시도 안되었는데 사람들이 가득하다.
시모노세키 카라코시장처럼 개별 점포들이 아니라서 호객하고 구매하는 시끌벅적함은 없지만, 진열된 초밥의 비주얼만 봐도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하다.
진열대 앞으로 가서 초밥을 고르려니까 종업원이 ‘대기자 명단’을 적고 기다리란다.
‘아차 .... ’ 대기하는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 같아 좀 미안하다.
대기자 명단은 한페이지가 넘어가고 나는 뒷장세번째 줄어 적었다.
한 팀에 2명, 4명, 6명 .... 아마 1시간은 기다려야 내 순서가 돌아올 것 같다.
그렇더라도 ... 이번 여행의 테마가 ‘초밥’인데 먹고 가야지.
후쿠오카에 십 수 차례 와 봤지만 완간시장에 이런 초밥집이 있는 줄 몰랐다.
그냥 매번 가던 곳을 가고 또 갔기 때문이다.
오래 기다려야하기 때문에 식당에서 나와 하카타 베이사이드 주변을 구경한다.
바다와 어우러진 주변 풍경에 눈이 시원하다.
배를 타고 하카타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손님을 맞이하는 것이 빨간색 하카타 포트타워다.
이 포트타워는 오사카에도, 고베에도 똑같은 것이 서 있다.
하카타 베이사이드(제1,2터미널) 맞은편으로 하카타 국제터미널이 보이고, 내가 타고 갈 코비도, 오후에 부산으로 출발할 카멜리아호도 정박해 있다.
베이사이드 쇼핑몰을 한 바퀴 둘러보고 다시 토요이치로 간다. 아직 대기가 많이 남아있다.
이 대기명단에는 식당 안에서 먹을 사람도 있고, 건물 밖이나 배 안에서 먹기 위해 테이크아웃 해가는 사람도 많다.
드디어 내 이름이 호명되고 당당하게 입장?한다.
배정받은 자리를 잡고, 이제 접시를 들고 초밥을 고르러 간다.
초밥 모두 잘 생겼다. 초밥이 이렇게 멋있을 줄이야 ㅎㅎ. 하나하나 비주얼이 침을 삼키게 한다.
이런 초밥들이 하나에 110엔(1,000원)이라니 ... 여기가 초밥천국이고, 오늘도 입이 호강하겠다.
크기는 시모노세키 카라토시장의 초밥보다도 좀 작아 보이지만, 가격으로 치면 1/2. 1/3 정도밖에 안되니까 싸고, 아무리 먹어도 금전적 부담이 없어 편하다.
초밥을 담아와 자리에 앉으면 종업원이 와서 초밥 개수를 카운트를 해 가고, 와사비와 간장등은 본인이 필요한 만큼 직접 가져오면 된다.
음료나 맥주, 기타 해산물이나, 해산물 요리등은 키오스크로 별도로 주문할 수 있다.
오늘도 빠질 수 없는 건 역시 생맥주, 일본이니까 '나마비루'라고 하자.
우와~~ 초밥이 달다. 입에 녹는다. 행복하다.
이게 바로 여행의 맛이다.
'맛집 발견'.... 완간시장 초밥은 앞으로 후쿠오카 여행시 꼭 들려야 할 단골집이 될 것이다.
이제 초밥여행을 마치고 부산으로 오는 배를 타러 하카타 하카타 국제터미널로 간다.
터미널이 바로 앞에 눈에 보여 부둣길을 따라 걸으면 금방이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비틀호에 자리를 잡았다. 하계휴가기간이라 매진일줄 알았는데 이외로 절반 이상이 비어있어 창가좌석에 앉아간다.
비틀호의 시설이 화려하다. 코로나 이전에는 한국에서는 코비, 일본에서는 비틀이 운행했는데 지금은 일본의 비틀만이 운행한다. 그때의 코비나 비틀은 배도 작고 좌석도 좁아 불편했는데 지금은 배도 크고, 좌석도 넓어 거의 비지니스석이다.
카페같은 테이블도 있고, 2층에는 특등실이 마련되어 있다.
이것으로 혼자떠나는 시모노세키의 초밥여행을 마친다.
비틀호는 하카다 항을 밀어내고, 두 자매가 찻집을 운영하던 후쿠오카 앞바다 노코시마(섬)도 밀어내고 부산으로 달린다.
지금 ... 하늘도 푸르고 내 마음도 푸르다.
바다위에는 비틀호가 물살을 가르고,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동화속 신천지를 찾듯 먼 파란 하늘위에 점점이 떠간다.
저 멀리 바다 한가운데 나즈막히 보이는 큰 섬이 보인다. 대마도(쯔시마)인 것 같다.
이번 여행의 테마는 '초밥'이었다.
초밥에서 시작해서 초밥으로 끝냈으니 이번 여행의 목적도 잘 달성했다
그럼에도 추억은 온통 더위다.
이 더위 때문에 정말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고, 여행기도 제대로 적을 수도 없었다.
계획했지만 방문하지 못한곳, 먹어보지 못한 것도 있다.
물론 잘 짜여진 일정에 따라 움직이는 것도 좋지만,
때론 계획이 어긋나고, 좌충우돌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여행이 추억이 남는다.
오히려 이런 것이 여행의 묘미고 맛이 아닐까?
무엇보다. 60중반의 나이에 배낭하나 매고, 내가 하고 싶은 여행을 한,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앞으로도 나는 이런 여행을 계속할 것이고,
내 삶 역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만의 속도로, 나답게 살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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