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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멀었다.

유초잡감

by 유초선생 2024. 7. 1.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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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사소한 일로, 진짜 아주 사소한 일로 언쟁을 벌일 때가 있다
“나는 아내가 해주는 대로 먹는다.”
“주는 대로 먹으면 그건 돼지지, 사람이면 뭘 먹고 싶다고 해야지”

나는 진짜 35년간 단 한 번도 아내에게 뭘 해먹자고 해본 적이 없다. 
가끔 아내가 집에서 오늘은 뭘 먹을까 물으면 난 항상 “아무거나”다. 
물론 밖에 나가면 “뭘 먹을까?” 내가 먼저 묻는다. 

나는 음식에 목숨 걸지 않는다. 
괜히 아내를 수고롭게 하지 않으려 차려 주는 대로 먹고, 짜니 싱겁니 따지지도 않는다. (물론 투정을 안해도 될 정도로 음식을 잘 한다)
그래서 인지 결혼 후 35년간 단 한 번도 부부싸움을 하지 않았다. 

소규모 친목 모임에서는 각자의 의견을 묻거나 투표로 올려 결정할 때가 있다.  
모임은 할까 말까? 언제 만날까? 뭘 먹을까? 
사소한 것 부터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것까지 인생은 늘 선택의 연속이고 선택을 강요받는다. 

난 안되는 것은 세상없어도 '안 된다'고 한다. 이런 부분에서는 분명하다. 
그놈의 인간관계 때문에 여건이 안 되는데도 마지못해 끌려가는 건 내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목.금 양일 중 다 시간이 되면 “목요일도 좋고, 금요일도 좋다” 하고  
메뉴는 나는 뭐든 잘 먹으니까 “알아서 정해라 난 다 좋다”고 한다. 

반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도 분명 있다. 
물론 가.부를 묻지만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니기에 내 의견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딱 반반이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따르면 되고,
자기의견이 분명한 사람은 분명한대로 결정하면 다수결이 되는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나 대통령 선거에서는 단 1표 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딱 1표이기 때문에 보다 나은 하나를 선택해 분명하게 의사표시를 해야 한다. 

그러나 친구 모임에서 의사결정을 무 자르듯이 1표로 결정할 필요까지 있을까?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한가?
산에 가는것도 좋고 바다가는 것도 좋은데, 왜 둘중 하나인 산에만 가야한다 해야 하는가?

A.B 두개 안에 둘다 찬성하면 A.B에, A.B.C 안 중에서 B.C 안에 찬성하면 B.C에 찬성의  'O'표를 표시하고,  
나머지 사람들도 똑같은 방식으로 투표해 의견이 많은 쪽으로 결정하면 되는 것 아닌가?. 

어쨌든 그건 내 생각이었고, 상대는 뭐든지 ‘의사를 분명하게 하라’고 하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건 '회색분자'라고 한다. 
(물론 회색분자는 웃으며 농담으로 한 이야기다)

사람마다 다 생각이 다르다 
나는 상대가 복수 안으로 찬성을 해주면 더 많은 의견의 수렴이 가능하고, 최종 결정하기도 편할 것 같다. 
그런데  "넌 항.상. 그렇더라”고, 낙인을 찍어버리면 마음이 불편하다. 

거기다 주위에서  “맞다 너는 그런 성향이 있다" 해 버리면 그게 맞는 것이 되어 버린다. 
삼인성호(三人成虎)다. 

그래 그게 맞을 것이다.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눈은 다르다.  
나는 자기관념에 빠져 객관적인 판단을 못할 수 도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비쳐지는 내 모습이 진정한 나의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보려면 나에 대한 다른 사람의 평가를 보라고 하지 않았는가. 

1920년 생 김형석 교수는 ‘100년을 살아보니’라는 책에서 100년을 살아보니 이제  '인생을 알것 같다'고 했는데,
난 60여년을 살아보니 나도 '인생이 무엇인지 알겠더라'고 말했다.  진짜 알것 같았다. 

젊은 날 세상유혹에 휩쓸려 허송세월을 보내기도 했고,(후회스럽다)
의심의 여지없이 사람 잘 믿다가 돈도 많이 떼였다. (적은 돈이 아니다. 이것도 두고두고 후회스럽다)
한편 책도 많이 읽고 열심히 노력해서 인정도 받고 결과도 이루었다. 

정말 수많은 과오와 성찰 그리고 배움을 통해 이젠 인생이 무엇인지, 무엇이 중요한지 조금은 알 것 같다.
포기할 줄도 알고 관철할 줄도 안다.   
스스로 이젠 굴레와 억매임에서 벗어난 해탈의 경지에 이른 것도 같고,
60(耳順)을 넘어 70(從心)으로 가는 나이에서, 귀가 부드러워지고, 이제 내 마음이 가는데도 행해도 도리에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 같은 내공도 생긴것 같았다.   

하지만, 오늘 이 작고 작은 것, 이 하찮은 것에 얼굴을 붉히고, 마음이 상하는 걸 보니 “난 아직 멀었다‘라는 생각이 든다. 
상대가 나를 지적해 줄때 감사함으로 받고 성찰의 기회로 삼았으면 좋았을텐데
안 지려 했고, 교만했고, 자신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내공도 없었고 그동안 내가 주장했던 삶의 철학은 다 말장난이고 개똥철학 이었다. 

이젠, 말도 줄이고 글도 줄여야 겠다. (이 글마저도 진실이 아닐수도 있다)
입에서 나오는 말도 절제되고 맑은 긍정의 언어를 바꾸어야 겠다.   
다시 책을 읽고,
묵언을 통한 성찰의 시간을 좀 더 가져야 겠다
"나는 아직 한참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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