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첫 장맛비가 내린다.
열어둔 창문으로 쏴아~~ 투두두둑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빗줄기가 강한 모양이다.
홀린 듯 창가로 나간다.
2층 창문턱까지 자란 잎 넓은 나무위로 비가 쏟아지고,
상록수 두꺼운 잎에 부딪혀 튕기거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빗물을 아래로 흘려보내는 나뭇잎은 춤추듯 흔들린다.
좋다.
도시의 먼지가 씻겨나간 상록수 푸른 잎에 맺힌 동그란 빗방울이 맑다.
손을 뻗어 맞아도 보고, 얼굴에 부딪히는 비의 포말이 촉촉하다.
얼룩진 비의 풍경처럼, 멍하게 바라보는 내 눈의 초점이 흐려지고 이내 아련함에 빠져든다.
세월에 퇴적된 어릴 적 추억들이 비에 씻겨 드러나고, 뭔지 모를 그리움에 먹먹해진다.
지금처럼, 난 어릴 적에도 비를 좋아했던 것 같다.
비오는 날엔 늘 쪽마루에 걸터앉아 비를 바라보았다.
추녀 끝에서 허공을 날아 죽담아래 떨어지는 빗물은 땅바닥에 옴팍한 구멍을 만들었고,
구멍에 떨어져 왕관모양으로 튀어 오르는 물방울을 한없이 바라보던 소년은, 지금 또 어떤 그리움에 빠져 있다.
나는 비 폐인이다. ㅎㅎ.
청마 유치환 시인은 바람부는 날은 견디지 못한다더니... 난 비오는 날은 견디기 어렵다
오늘도 빗소리를 들으려 우산을 들고 지하철로 출근했다.
크고 팽팽한 우산은 빗소리를 튕겨내므로 빗소리가 더 잘 들린다.
통통, 투두둑 투두둑 ...
팽팽한 우산을 두드리는 비의 공명( 共鳴)은 참 듣기 좋다.
우산을 두드린 빗소리는 움푹한 우산 안에 모이고, 다시 달팽이관을 돌아 뼈까지 울릴 때면 온몸이 자그럽다.
공명.. 두 개의 소리굽쇠를 놓고 한 소리굽쇠를 치면, 그 소리의 진동(파장)이 같은 진동수를 가진 다른 소리굽쇠를 진동시켜 같은 음를 내게 하고, 계속 치게 되면 진폭은 커져 더 큰 공명을 만들어 낸다.
나와 비, 나와 우산은 같은 진동수를 가진 소리굽쇠가 아닐까?
빗소리의 진동에 나도 같이 진동하고, 계속되는 비의 진동은 나는 더 큰 진폭으로 진동시켜 온몸이 저려오는 건 아닐까?
1940년 11월 미국 워싱턴 주 타코마 해협(Tacoma Narrows)에 놓인 현수교가 바람에 무너진 적이 있는데 사실은 공명(공진.共振) 때문에 무너졌다고 한다. 바람에 의한 다리의 진동이 공교롭게도 다리 자체의 고유 진동수와 일치하면서 공명에 의해 진폭이 점점 더 커졌고, 결국은 다리가 버티지 못하고 붕괴했다는 것이다.
장마가 길어진다는데, 비가 많아진다는데 ...
그 공명(共鳴)에 나도 무너지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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