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엄쉬엄 살기로 다짐 한 탓인지 다행히 마음의 여유가 많이 생긴 것 같다.
말로 하고, 글로 써 둔다고 실천되는 것이 아니고
글이 아니더라도, 말이 아니더라도 행동에서 생활에서 묻어나야 진정한 다짐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 저런 관계에 얽매이다 보면, 세상의 부름을 거절하지 못할 때가 있다.
조직의 일로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겠지만, 친구들과의 만남은 대부분 은근히 기다렸다는 듯 내가 좋아서 가는 경우가 많다. .
그렇지만, 가고 싶지 않거나 사정이 생기면 "Say No". 즉 No! 라고 분명히 말한다.
몸도 마음도 따라주지 않는데 그 놈의 정 때문에 거절 못하는 것은 우정도 아니고 자신의 철학도 없는 것이다.
나는 약간의 술이 좋다.
고은 시인은 “술 없이 시(詩) 없다”했는데, 나는 “무주무정(無酒無情) “술 없이 정 없다”다.
물에 타서 마셔도 알콜기가 좀 있으면 좋고, 술 먹는 분위기가 좋고, 술 한잔하며 나누는 진솔한 대화가 좋다.
그러다 보니 술 향기(酒香), 주막(酒幕), 술익은 마을 ... 이런 단어들이 정겹고,
특히 비오는 날 빗소리 들리는 포장마차나 허름한 주막에서 파전에 막걸리 한잔하는 것은 낭만이다.
그래서 비오는 주말에 “비오는데 술 한 잔 하자”고 전화할 여자 친구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아무리 전화번호를 뒤져봐도 쉽게 전화할 만 한 친구가 없을 땐 좀 서글프다.
어쨌든 술도 차라리 많이 마셔버리면 취해서 푹 잘런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도 저것도 아닌 몇 잔 하고 나면 오히려 잠을 설치고 몸도 찌부둥하다.
특히 아침엔 오는 아주 약간의 숙취는 기분 나쁘고 하루를 망친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퇴근 후 황토길 맨발 걷기를 시작한다.
이전에 몇번 맨발 걷기를 하다가 귀찮아서 그만 두었는데,
날씨 탓인지 잠도 설치고 꿈도 매일 꿔서 내 몸을 학대하면 잠이 잘 올까 해서다.
집앞에 장미공원이 있고, 생태공원이 있고, 금정산이 있고, 긴 메타쉐콰이어 황토길도 있어 멀리서도 오는데
난 우선 순위를 다른데 두었기에 코 앞의 이런 환경들을 잘 활용하지 못했다.
건강에 관심들이 많아서 인지 여긴 나이를 불문하고 아침부터 밤까지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많다.
산책로 입구에 신발을 벗어 두고 맨발로 걷기를 시작한다.
발바닥을 통해 전해오는 땅의 촉촉함이 기분좋고,
마사토 알갱이들이 발바닥에 밟힐 때의 자극이 간지럽게 시원하다.
운동화를 신었을때는 쿠션이 있어 몰랐는데, 맨발로 걸으니 내 딛는 체중이 바로 땅에 쿵쿵 전해지고 그 충격은 다시 척추를 통해 머리까지 흔들린다.
(걷는 방식이 잘못되었는가 모르지만) 뒷꿈치가 아프지만 발바닥을 통해 나쁜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 같고,
땅으로 부터는 땅과 우주의 기가 전류처럼 발바닥을 통해 전신으로 다시 전해옴을 느낀다.
내가 좋아하는 메타쉐콰이어 길
까무룩 한 밤에 키 낮은 정원등이 겨우 밝힌 산책로를 자연에 뿌리를 내리듯 맨발로 걷는다.
몇 번을 되뇌었을까? ... "아 좋다, 아 좋다"
잡념이 사라지고, 내 몸도 정신도 맑아져 건강한 사람이 되는 것 같다.
자연에 뿌리를 내린 건강한 삶, 맑음, 촉촉함, 그리고 조급함이 없는 여유.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웠지만, 내가 바라던 삶도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맨발 걷기가 좋은 점 이런 것들이 많이 나오겠지만 굳이 찾아보고 싶지도 않다.
찾으면 또 그걸 설명하려 들것이고 거기에 구속당한다.
그냥 좋은 것으로 끝나면 되는 것이다.
좋은 책을 사면 빨리 읽고 싶어 기다려지듯이
오늘 밤의 맨발 걷기가 또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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