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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떠나는 북 큐슈 기차 여행기 4

유초잡감

by 유초선생 2024. 4. 25.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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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후인 역앞, 맞은 편 산 아래쯤이 긴린코 호수 / 유후인 골목길

북큐슈는 어디를 가도 맑은 물, 계곡 천지다. 부럽다.
분지 끝쯤에 에라역이다. 역들 모두 승강장 하나뿐인 간이역이고, 가을편지속에서나 나올듯 한 간이역들이 정겹다 
계곡의 숲속에서 맑게 흐르는 물, 작은 계곡 줄기는 더 큰 계곡에 합류하고 계곡은 동네 가운데를 또 흐른다. 기차여행 내내 감탄사를 연발했다. 여기가 천국이다. 

다시 산악지대를 건너고 이제 다음역이 유후인이다. 
슬리퍼를 백 팩에 넣고 내릴 준비를 한다. 
1:32분 도착,  빨간 기차 앞에서 추억을 저장하고 유후인역을 나선다. 
≪3편에 이어 계속≫
유후인역 광장에서 맞은편 긴린코 호수가 있는 산 쪽으로 쭉 뻗은 도로엔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일본인과 외국인도 많이 보이는 걸 보니 여기가 역시 북큐슈 최고의 관광지임을 실감한다. 관광지 쪽으로 가는 길엔 기념품과 먹거리를 파는 가게가 즐비하고, 거리엔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히타에서 간식을 먹어서 인지 배는 고프지 않다. "그래도 점심시간이 지났으니 끼는 때워야지"
어제 저녁 고기를 먹어서 인지 야키니쿠, 토리니쿠(꼬치)는  싫고 뭔가 담백한걸 찾는데 골목 안에 노포(老鋪)로 보이는 우동소바집이 보인다. 출입구에 흰 노렌(포렴)이 길게 낮게 드리워진 것이 일본풍을 더하고, 노렌을 젖히고 들어가면 홀로 연결된다. 
홀 벽 쪽으론 탁자로 된 테이블이 있고, 홀 가운데 네모나게 빙 둘러앉을 수 있는 바(BAR)처럼 된 테이블에도 사람들이 꽉 찼다. 간단하고 담백한 가케 우동을 시켰다가 타누키 우동으로 바꾸었다. 옆에 손님 두 분은 토리텐소바를 시킨 모양인데 서로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맛있는 모양이다. 

히타에서 예상에 없던 시간을 2시간 반이나 소비해 버렸기에 유후인에 머물 시간도 많이 없어 마음이 바쁜데, 노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이라 서빙이 영 늦다. 
벳부행 열차시간을 검색하는 동안 우동이 나왔다. 맛있다. 국물까지 다 마신 후 계산을 하는데 표시된 요금에 세금은 별도로 내란다. 어떤 곳은 세금포함이고 어떤 곳은 세금 별도라니 관광지의 상술인가 싶어 좀 씁쓸하다. 
한참을 걸어 나오는데 아뿔사 ...  휴대폰을 계산대에 두고 왔다. 달려갔더니 검은색 카운터에 검은색 휴대폰이라 아직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긴린코 호수

이제 긴린코 호수를 향해가며 골목길의 예쁜 풍경과 집, 인테리어를 카메라에 담는다. 
긴린코호수다. 이전에 처음 방문했을 때는 상당히 큰 호수였던 것 같은데 늘 보니 그렇게 크지는 않다. 어쨌든 예쁜 호수에 여행객의 미소를 남기고 유후인역으로 가려는데 자가 로스팅 커피숍인 캬라반 커피전문점이 보인다. 

예쁜 정원을 가진 가정집을 개조한 것 같은 커피숍이라 들어가 보고 싶었다. 
여기까지 와서 가보고 싶은 예쁜 커피숍을 발견했는데 안 들어가면 여행이 아니지 않는가?  

마당을 거쳐 커피숍에 들어가니 세련되고 대학교수처럼 지적으로 보이는 노인이 가게를 지키고 있다. 손님은 아무도 없다. 유럽에서 수입했을 듯한 소품과 커피를 로스팅하고 내리는 다양한 도구들, 데지마에서 보았던 푸른색 도안을 넣은 접시, 커다란 다인용 나무테이블위에 깐 꽃무늬 천 시트의 빈티지한 인테리어가 아늑함을 더해준다. 
이런 커피숍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를 생각하니 이 집 주인은 과연 커피 오타쿠(덕후)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자 유리 비이커를 사용해 정성스럽게 커피를 드립해내는 모습에서 범접 못할 전문성과 기품이 느껴진다. 파란하늘처럼 손톱으로 툭 튕기면 쨍하고 소리날것 같은 흩트러짐 없는 완벽함, 정갈함 그 자체다.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 물으니 “괜찮다” 하여 중후한 부부 바리스타와 실내사진을 찍었다. 
. 고급스런 도자기 커피 잔에 커피가 나오고, 커피향도 잘 모르는 막입 이지만 늙은 바리스타와 오타쿠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커피에 더 깊은 풍미가 느껴진다. 
“나도 은퇴하면 이런 멋진 커피숍을 차리고 싶다”고 했더니 이 주인 영 반응이 없다. 

나중에 귀국해 인터넷으로 검색해 봤더니 이 커피숍 주인은 “외국인이라도 일본에 왔으면 일본어로 주문해야지 왜 영어를 쓰느냐”고 거꾸로 호통을 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극우파인가? 철학자인가?
 잠시 후 한국인 청년 커플이 들어오고 난 기차시간표가 급해 카페를 나왔다.  빨리 달리면 15:17분 기차는 탈것도 같다

골목길을 걸어 나오는데 예쁜 동화마을 같은 것이 보인다. ‘유후인 플로라 빌리지’다. 
멈칫 시선을 빼앗기고 사진기록에 남기려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다. 
어제 오늘 몇 번이나 비, 해, 비, 해 일기의 변화를 겪는다. 
시간은 급하고 비는 오는데 내가 좋아하는 동화마을 같은 풍경을 놓치고 가기엔 후회할 것 같다. 처마 밑에 비를 피하면서 운명을 결정했다. 

“난 자유여행중이다. 이번 기차를 못타면 뒷 기차를 타면 된다. 그게 머시라꼬” ...비가 언제그칠지 몰라 우산을 쓴 채, 나도 나중에 이런 카페하나 차리고 싶어 인테리어위주로 사진을 찍어둔다. 막상 들어와 보니 동화마을이 아니라 상가에 딸린 스머프집 같은 작은 소품 판매점들이라 금방 다 봤다. 다음 기차는 40분 후에 있다. 

또 햇살이다. 지역 토산품 과자를 몇 개 사고선 천천히 골목길과 전통가옥을 구경하며 유후인역에 도착했다.

유후인 거리 풍경

지금부턴 유후인 – 오이타 - 고쿠라 - 모지코 -고쿠라 - 하카타로 이동할 예정이었는데, 항구도시 모지코에 가면 7시가 넘는다. 
시모노세키 카라토 시장에서 생선초밥을 실컷 먹으려고 했는데 시간상 도저히 안 되겠고, 고쿠라 탄가시장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빨리 하카타로 넘어와도 9시가 넘을 것 같다. 히타에서의 3시간이 아깝다. 

"일단 가보자. 이것저것 안 되면 후쿠오카에서 초밥을 먹고 나까스 야타이(포장마차)에서 한잔, 해장으로 웨스트우동을 먹으면 되지 뭐 ... 여행인데 뭐 ..."
오래 걸어서 인지 발이 아프다. 나의 탁월한 선택 1,000원짜리 슬리퍼에 또 감사함을 전하며 일기를 정리한다. 

오이타까지 가는 2량짜리 큐다이 라인은 역시 산속마을과 간이역을 지나며 정겹게 달려간다.
오이타에서 내린 후 환승시간이 촉박해 1번 홈으로 급히 달린다. 
고쿠라에 가기 위해선 하카타행 열차를 타고가다 오이타에서 갈아타야 한다. 

파란색 소닉열차에 오른다. 지금까지 탄 기차 중에서 최고다. 신칸센보다 안락하다. 
오이타를 지나 벳부로 가는 동안 오른쪽은 전부 바다풍경이다. 히타–유후인 산악노선도 좋지만 이 노선도 큐슈레일패스을 이용할 수 있는 최고의 경관구간이다. 

창틀이 넓어 창틀에 생수와 과자를 올려놓고 풍경감상 삼매경에 빠진다. 
어제 편의점에서 사둔 술잔이 붙어있는 동그란 예쁜 병의 조그만 월계관 사케(청주)를 홀짝홀짝 마신다. 승객들이 술 마신다 할까봐 라벨을 뜯어 버리니 예쁜 생수병처럼 보인다. 
안락한 차내, 부드러눈 사케(청주)에 몸이 노곤해질 즈음 날이 어두워져 간다. 
조금 지친다. 이 안락한 열차 안에 계속 머물고 싶다. 
여러 생각이 겹친다. 기차여행이고 열차비도 공짜인데 기차를 많이 타고, 고쿠라 탄가시장에 가서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도 있을까? 피곤한데 후쿠오카로 바로 가서 회전초밥을 먹고 오늘 밤 일정을 소화할까?

소닉 열차

아직은 하늘이 훤한데 차창에 또 비가 때린다. 
습기 많은 지역인 만큼 열대성 소나기인 스콜 같은 걸까? 기차는 다시 평원을 달린다. 
유후인쪽 산악열차는 느렸는데 평지인 이곳은 속도가 빠르다. 이곳도 보리나 밀을 많이 심는가 보다. 

몸은 노곤하고 좌석은 너무 편하다. “그래 많이 둘러보는 것도 좋지만 건강을 해치면 안 된다. 고쿠라에 가면 후쿠오카 일정이 안 나오니 오늘은 바로 후쿠오카로 가자. 앞으로 자주 올 텐데 시모노세키 가라토시장과 고쿠라 탄가시장은 다음에 와서 가면되지 뭐”.  
바깥 풍경이 잘 안보일 쯤 책을 꺼내 읽다가, 여행길에서 절대 졸지 않던 나도 깜박 20분 정도 졸았다. 
하카타역으로 가는 소닉열차는 고쿠라역에 정차한 후 다시 후진하여 하카타로 향한다. 그래서 좌석이 정방향이 되도록 의자를 180도 돌려야 한다. 
나도 승객들이 모두도 일어나 의자 옆 페달을 밟고 의자를 돌리니 부드럽게 돌아가 다시 정방향이 된다. 승객이 없이 돌리지 못한 좌석은 KTX 동반석처럼 마주보는 좌석이 되었다. 3인 이상 여행을 오면 이런 배치도 대화도 하고 에끼벤 도시락도 까먹을 수 있어 좋을 것 같다. 

높은 건물의 불빛이 많이 보이는걸 보니 후쿠오카 인가 보다. 
긴 기차여행을 마치고 하카타역에 내렸다. 이제 몸이 좀 가볍다. 
가라토시장 생선초밥을 못 먹은 대신, 하카타역 지하 우오가시 회전초밥집에서 초밥을 먹고 호텔로 가기로 했다. 

하카타역 지하 우오가시 회전초밥

우오가시 회전초밥집은 늘 줄을 서는 곳이고 지난 번 왔을 때도 대기 줄이 길어 포기했던 곳이다. 오늘도 역시 줄이 길 다. “오늘은 혼자니까 기다렸다가도 먹어야지”. 내 앞에 10여명이 대기했는데 잠시 후 내 뒤의 줄은 더 길어졌다. 좌석수가 적어 좌석회전도 느리다. 

배낭을 메고 20분을 기다리니 어깨도 무겁고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몰라 포기할까 하는 중에 점원이 “일행이 몇 명이냐”고 묻는다. 혼자라고 하니 점원이 앞줄 대기자에게 “1명 빈자리가 있는데 먼저 모셔도 되느냐”고 묻고 승낙을 받아 들어오라고 한다. 

배낭을 내려 의자 앞에 두고 ... “이제부터 여행자에게 멋진 식사를 제공하자” 스스로 위로하고 맛있는 회전초밥을 고른다. 초밥1접시(2개)에 190엔에서 490엔, 세트메뉴는 920엔~1,750엔인데 2세트는 먹어야 할 것 같다. 우선 좋아하는 생선초밥 2접시씩 주문한다. 
맛있다. 입에서 녹는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여기에 나마비루(생맥주)가 빠질 수 없지. 
맛있는 생선초밥에 생맥주라 ... 여행에 수고한 나에게 오늘 저녁은 제대로 보상한다. 
가격이 낮은 것부터 높은 것 까지 골고루 맛보고 생맥주도 2잔이나 비웠는데 4,000엔 수준이니 잘 먹었다. 

후쿠오카 지리는 잘 알기에 밤거리도 구경하며 걸어서 캐널시티 워싱턴 호텔에 도착하여 체크인을 하고 들어가니 좋다. 쿠루메 호스텔에 비하면 천국이다. 

이제 나는 밤의 여행객이 된다.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사기위해 호텔과 붙은 캐널시티 쇼핑몰로 향한다. 캐널시티의 야경과 불빛을 담은 분수는 늘 멋있지만, 쇼핑몰은 이미 파장이라 층층이 대부분 문을 닫았다. 선물은 면세점에서 사기로 하고 나카스 강가 포장마차 쪽으로 가려는데 비가 쏟아진다. 바람도 불고 비를 맞으면서 갈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결국 나카스를 포기하고 편의점에서 맥주 1병과 안주를 사서 숙소에 들어가니 생수가 없다. 프론트에 물어보니 생수는 제공되지 않는단다. 
캐널시티로 생수를 사러 다시 나가는데 비가 그쳤다. “그러면 그렇지” 나카스에서의 한잔을 포기할 수 없어 나카스 강가로 나가니 쌀쌀하다. 겉옷의 지퍼를 올리고 후드도 쓴다. 이 옷 참 잘  산 것 같다. 모양도 색깔도 편의성도 좋다. 

나카스 포장마차들이 보인다. 야타이 포장마차는 낭만이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일요일 밤이고, 시간도 늦었고 비도 와서 그런지 야타이 대부분은 문을 닫았고 남은 두세 곳 장사를 하는 곳은 손님들로 가득하다. 끼어들 틈도 없다. 

기웃 기웃하다 메뉴가 라면, 꼬치 등이라 지금은 딱히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지나친다. 두 사람이 여행했으면 기꺼이 끼어들었을지도 ... 수백가 넘는 술집과 유흥업소들이 가득한 나카스 골목길을 걷는다. 손님들과 키모노를 입은 종업원들로 가득하던 나카스 골목도 조용하다. 

여기는 나카스 파출소, 저기 4층이 자주 갔던 멤버스 LB 술집, 저 나카스강 다리를 건너면 가와바타 아케이드가 있고, 오른쪽 코너에 바로 웨스트 우동이 있다. 튀김 부스러기를 듬뿍 넣은 카케우동, 키쯔네 우동이 목구멍에 매끄럽게 넘어가고 오뎅과 생맥주도 맛있는 집이다. 한국에 프랜차이즈를 내고 싶어 본점을 방문할까도 했던 가게다. 그런데 시간이 늦어서인지 가게 문이 닫혀있다. 아쉽다. 한국의 펍 맥주집이라도 있으며 좋을 텐데 일본은 꼭 안주를 시켜야하고 안주도 굽는 것이 많아 부담스럽다. 바람에 밤공기가 차고 날씨도 쌀쌀해 나카스에서의 한잔을 포기하고 숙소로 향한다. (그래서 여행은 두 사람이 좋다. 두 사람이었으면 어디라도 찾아 들어갔을 것이다)  

여행에 따뜻한 옷은 필수다. 더울 것 같고 짐이 될까 가벼운 옷차림으로 가다 날씨가 쌀쌀하면 고생이다. 호텔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니 피로가 가신다. 오늘도 바쁜 하루였다. 

피곤했던 탓인지 잘 잤다. 커튼을 여니 햇살이 맑고 환하다. 정말 GOOD MORNING 이다. 
체크아웃을 하고 아침은 돈부리를 먹기 위해 나왔다. 휴대폰 데이터는 2일만 신청했기에 오늘 부터는 휴대폰이 되지 않는다. 

지도를 펴고 쿠시다신사와 14층 건물전체에 녹색나무를 심어 계단식 녹색지붕을 만든 아크로스 빌딩을 가보기로 했다. 가는 길에 돈부리 집이 있으면 먹을 요량이다. 

진자(신사)가 보인다. 이전에 신사 입구에서 모찌를 사먹었던 기억이 있다. 
월요일 아침이라 양복을 입은 젊은 직장인들의 출근 발걸음이 바쁘다. 직장인들이 신사로 들어가는걸 보니 아마 샛길이 있는 모양이다. 
신사에 들어가니 흰옷을 입은 신직들이 흙 마당을 쓸고 대나무 갈퀴로 곱게 긁는다. 
사모래가 깔린 마당은 빗질을 받은 뒤 발자국하나 없이 깨끗하다. 
어릴 적 싸리비로 흙 마당을 곱게 쓴 뒤의 그 모습 같다.  

 차분한, 준비된 경건함이 묻어난다. 샛길이려니 생각했는데 직장인들이 출근길에 이곳에 들러 기도를 하고 간다. 나이 든 사람도 있지만 젊은 남녀직장인들이 많다. 
뭐지? 이게 일본의 정신이고 문화인가? 한국 교회의 새벽기도 같은 걸까? 

신사 옆엔 만행사라는 절이 있다. 검은 고양이 2마리가 절 마당에 앉아 빠끔히 나를 바라본다. 스님도 보이지 않고 염불 소리도 없다. 신사의 경건함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이 근처에 돈부리집이 분명히 있었는데 찾을 수가 없다.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다. 
웨스트 우동집도 아직 문을 열지 않았고, 카와바타 아케이드 끝 쪽에서 물어보니 “길 건너 저기 있잖아요” 한다. 
야호 ! 그게 뭐 별것이겠냐 마는 여행길에 먹고 싶은 걸 먹고 싶었다. 
7~8명의 손님들이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키오스크로 주문해야 해서 음식을 기다리는 아가씨한테 주문 좀 해달라고 한다. 나는 한국 햄버거 매장에서도 키오스크로 주문을 잘 못한다. 560엔, 돈부리를 얹은 밥 한 공기, 국1개, 젓가락이 전부다. 

맛있다. 중(中)인데도 양이 많아 남길까 하다가 다 먹었다. 든든하기는 하다. 이제 모닝 커피를 마셔야지. 카와바타 아케이드로 들어와 커피벨로세(COFFEE VELOCE)에 들어간다. 10여명이 줄을 섰고 어젯밤 소닉열차 같은 칸에 탔던 중국인 여자여행객들을 여기서 또 만났다. 

일본말이 모르는지 점원은 일본어로 말하고 중국인은 바디랭기지로 말하는데도 OK하는걸 보니 점원의 눈치가 대단하다. 사실 중국인은 먹고 싶은걸 제대로 시켰는지, 점원은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적당히 OK했는지는 모르겠다. 

난 브랜드커피 레귤러를 시켰다. 280엔, 싸다. 젊은이들은 노트북을 켜고 열심히 인터넷 서핑을 한다. 나도 와이파이를 물으니 친절하게 안내하는데 한국 네트워크와 연결이 되지 않는다. 

커피숍의 중국여자들이 참 시끄럽다. 중국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알려져 있지만 조용한 일본커피숍 내에서의 소음은 참기 거북하다. 그런데도 일본인들은 아무도 제지하지 않아 내가 나서서라도 좀 조용히 시킬까 하는데(그 정도의 중국어는 한다) 잠시 후 중국여자들이 나가자 다시 적막이 찾아온다. 

아침도 먹었고, 따뜻한 모닝커피도 마셨으니 이제 후쿠오카 국제터미널로 가면된다. 
어제 못 산 선물을 사려고 가와바타 쇼핑몰에 가니 이제 문을 열고 영업 준비를 하고 있다. 
버스를 타도 되지만 아직 시간도 많아 천천히 구경하며 걸어가도 될 것 같다. 

강둑 길을 걷고 큰 길과 골목길을 걸어 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이제 기차여행이 끝나고 한국으로 가는 배만 타면 된다. 
여기 역시 자전거 라이딩을 마치고 귀국하는 여행객이 많다. 올 때도 느꼈지만 헬멧, 선글라스, 남녀 딱 붙는 라이딩 복장이 또 눈에 거슬린다. 일본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은 참 멋진 사람들이라 생각할까? 어쩌랴 제 멋인데 ..

면세점에서 가족을 위한 선물을 사고 435호에 여장을 푼다. 비도 그치고 따뜻한 햇살이 드는 선창에 앉아 책을 펼치고 이제 떠나보낼 후쿠오카 항을 카메라에 담는다. 

여행일기도 쓰고 책도 읽고 여유 있는 시간을 즐기는데 카멜리아호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가는 것 같기도 하고 서있는 것 같기도 한데 풍경들이 조금씩 멀어지는 걸 보니 출항하는 모양이다. 
선 밖으로 나와 손을 흔들어 후쿠오카와 작별을 한다. 
떠나는 항구에는 이별이 있다. 후쿠오카 타워, 후쿠오카 돔 야구장, 시호쿠호텔이 점점 멀어지고 할머니 여자 자매가 운영하는 찻집이 있던 노코시마섬도 점점 멀어진다. 
사요나라 후쿠오카 !!

짧지만 나름 멋진 여행이었다. 시도를 하고 실행을 한 여행이었다. 
내면의 나를 만나고 내가 누구인지를 조금은 깨달은 여행이었다. 
난 방랑기가 있고 여행을 좋아하는 바람 같은 남자였다. 
짧은 여행에 50페이지에 이르는 여행일기도 쓴걸 보니 아직 정서적으로 메마르지 않았고,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계속 도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그래 너 참 멋지다. 
앞으로도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날마다 여행 같은 삶을 살길 바란다.   끝

(다음여행은 오사카 토롯코 열차여행과 시모노세키 맛집여행을 할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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