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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떠나는 북 큐슈 기차 여행기 2

뚜벅뚜벅 인생여행 (자유 여행기)

by 유초선생 2024. 4. 23.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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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케오온센역

≪1편에 이어 계속≫

여행은 걷는 것이다. 걸으면서 보고 느끼는 것이다. 
큰 길도 걸어야겠지만 그 마을의 속살을 보려면 골목길이 좋다. 그래서 나는 골목길 걷기를 좋아한다. 
나중에도 느낀 것이지만 일본 주택가에선 사람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다들 집안에만 있어서 그런가?  

타케오온천 역에서 온천까지는 걸어서 가기로 했다. 

관광지도를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온천이다.
시간이 일러서 그런지 관광객들은 거의 보이지 않지만 온천풍의 목조 건물과 입구의 늘어뜨린 노렌(포렴:일본의 술집이나 가게입구에 늘어뜨린 천, 우풍을 막기도 하고, 가게 이름이나 마크가 새겨져 있음)을 보니 이곳이 온천지역임을 대번에 알 수 있다. 

온천마을의 골목길을 지나 계속 올라가니 작은 성문(城門)같은 붉은 색의 타케오온천 누문(武雄温泉楼門)이 보인다. 여기가 제일 오래된 타케오 온천인가 보다. 

타케오온천

여행이라 해서 유명한 관광지만 돌아다닐게 아니고, 자유여행 중에 온천을 즐기며 여행자의 피로를 푸는 것이 제대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의 맛이다. 

 “좋아 들어가 보자” ... 입욕료 500엔 ... 싸다. 
입욕료를 내고 들어오니 타올이 없다. 작은 타올 2개 빌리는데 300엔, 이건 좀 비싸다. 
락커는 100엔 동전을 넣어야 하는데 타올을 빌린다고 동전을 써 버려서 다시 100엔 동전으로 바꾸는 번거로움을 다한 후에야 탕으로 들어왔다.

지하실처럼 푹 꺼진곳에 위치한 욕장에 들어오니 네다섯 사람이 온천욕중이다.

타케오 온천수가 뜨겁고 매끈매끈하다.
“아 ~ 좋다”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지하에서 뽑아 올린 후 계속 탕 밖으로 넘쳐 흘려보내는 온천수라 마음껏 뒤집어써도 아깝거나 미안하지 않아 좋다. 온 몸을 탕에 담그니 지난 밤 선박에서의 여독까지 싹 풀린다. 

그래 이게 바로 여행의 맛이지 ...
동네사람 같아 보이는 사람들이 온천을 하러 들어오고 나간다. 일본인들의 목욕시간은 30분 이내로 그리 길지 않은 것 같다.
오래도록 온 몸을 푹 지지고 싶지만 나가사키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온천을 나온다. 


 돌아오는 길도 역시 골목길을 택했다. 골목길이, 집들이 너무 깨끗하다. 
사진관, 미용실, 찻집 모두 열 평도 안 될 정도로 작고, 인테리어도 간판도 조명도 요란하거나 화려하지 않아 정겹고 눈도 마음도 편하다. 이런 동네는 가게주인도 고객도 다 이웃이다.
70년대에나 있었을 창문형 에어컨은 작동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소박함이 좋다. 

신칸센 카모메 열차 안

 타케오역에서 쿠키 한 봉을 사들고 나가사키행 신칸센 카모메를 탄다.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열차 선로의 노반, 도상, 침목, 레일, 조인트 구성 등도 유심히 살펴본다.
역 구내라서 그런지 노반은 콘크리트로 덮여있고, 침목도 나무침목이나 pc침목이 아닌 콘크리트 판으로 된 침목같다. 도상 역시 자갈을 깐 자갈도상이 아니라 콘크리트 노반위에 충격 흡수패드를 깔고 레일을 깐것 같다.
아직 한국에는 이런 구조가 없는것 같은데 깨끗해서 좋아보인다

일본이 자랑하는 초고속 열차 신칸센, 카모메가 갈매기이듯 하얀 얼굴에 길쭉한 부리를 가진 유선형 카모메가 예쁘다. 한국의 KTX보다 좌석도 넓고 실내도 깔끔하다. 

바람을 가르며 카모메가 타케오를 지나 남쪽으로 달려간다. 쭉쭉 뻗은 히노키(편백나무) 숲이 장관이다. 
이 구간이 신칸센 전용선인지 터널의 연속이고, 터널과 터널사이의 산 중턱에 보이는 마을 풍경이 중국 윈난성 소수민족 마을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저 멀리 바다가 보인다. 오무라(큰 마을)란 이름에 걸맞게 바다를 낀 넓은 평지의 마을(도시)이다. 바다를 낀 이 멋진 도시에도 높은 건물은 없고 거의 2층짜리 건물이다. 

일본의 주택은 어디를 가도 비슷하다. 일본전통가옥을 제외하곤 모두 박공 경사지붕 2층집에 색깔 또한 잿빛으로 똑같아 칙칙하다. 

한꺼번에 피고 한꺼번에 지는 벚꽃을 일본인의 근성에 비교하듯, 같은 생각, 같은 행동을 하고자 하는 일본인들의 정신문화 관련이 있는 것일까? 모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의식 때문에 변화를 싫어하고, 묻어서 가려는 것일까? 
(이 부분에 대하여는 '일본의 정신문화가 일본의 주택문화에 미친 영향'이란 제목으로 블로그에 별도로 올려두었다)

이사하야역, 하늘이 훤해지고 해가 떴다. 금요일부터 처음 보는 해다. 
산중턱에 '하카'라고 불리는 비석들로 이루어진 가족무덤들이 보인다. 우리가 추석이나 한식날 산소에 벌초하러 가듯이 일본인들은 '하카 마이리'라 하여 가족묘지를 찾아 비석을 닦고 제물을 바친다.

이제 나가사키역에 도착한다. 나가사키는 히로시마와 함께 원자폭탄을 맞은 도시이기도 하지만, “나가사키엔 오늘도 비가 내린다” 라는 노래로도 유명한 항구도시다. 

나에게는 이것보다 나가사키는 일본 최초의 무역항이고, 데지마섬을 통해 서양의 문물(과학, 의술, 언어 등)을 적극 받아들인 서학의 성지다.

일본 근대화와 메이지유신의 성공 동인을 찾고 싶던 나에게 나가사키는 발로 밟아보고 싶은 도시였다.   

나가사키 역사 내 식당가. 쇼핑몰

 우선 나가사키 역 규모가 크고, 확장공사를 하는지 외벽을 두르고 큰 공사를 벌이고 있다. 
역 대합실과 연결된 쇼핑몰(시장 같다)엔 다양한 먹거리들이 관광객을 유혹하고 맛도 보라고 한다. 

하지만, 오늘 목표는 데지마 방문과 나가사키에 왔으니 나가사키 짬뽕을 먹어보는 것이다. 
관광지도를 보니 멀지 않은 곳에 데지마가 있고 걸어서 20분 정도면 갈 수 있단다. 

데지마(出島)는 조용준 작가가 쓴 ‘메이지 유신이 조선에 묻다-일본이 감추고 싶은 비밀들’라는 책에서도 나오는 섬이다. .
이 책은 일본의 외국문화 수용과정과 일본 근대화의 원동력 등을 분석한 책으로 꼭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잠시 역사 이야기를 곁들이자면)
일본이 외국인을 처음 만난 건 1543년, 100여명의 선원이 탄 포르투갈 배가 다네가시마라는 섬에 표류해 오면서다.

이 배에는 화승총 등 서양무기가 실려 있었는데, 섬의 도주가 총 2정을 2000냥(지금의 금액으로  수억 원 상당)을 주고 구입하고, 이를 개량해 자기의 것(일본 조총)으로 만든다. 

이후 일본은 이들 무기를 앞세워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을 침략했고, 조선의 도공들을 포로로 끌고 간다. 
일본은 한국에서 천민이었던 도공들을 후하게 대했고, 도공 이삼평과 심수관을 통하여 유명한 아리타야끼(아리타 도자기)와 사쯔마야끼(사쯔마 도자기)를 만들게 된다. 

일본은 한국의 도공들이 만든 도자기를 유럽에 수출하여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고, 이 돈으로 총포와 군함들을 수입하여 근대화와 부국강병을 이루게 된다. 이렇듯 일본 발전의 기저에는 한국도공들이 만든 도자기가 그 자금원이 되었기에 일본은 이를 숨기고 싶은 것이다. 

물론 일본도 에도시대에는 쇄국을 했지만, 지방정부인 ‘번’(번,藩은 쇼군으로부터 영지를 부여받은 영주들이 직접 통치하는 행정구역), 특히 큐슈지역의 사가번(사가현과 나가사키현 일부), 사쯔마 번, 조슈번 등에서는 적극적으로 해외무역을 했다.
특히 사가번은 막부보다 먼저 총포를 구입하고, 같은 제품을 만드는데도 성공했다. 중앙 막부도 아니고 270개 번중 일개 사가번이 군함까지 구입한 것 자체가 경이로운 일이다. 

일본은 한국으로 부터 문화를 수입해간 뒤떨어진 나라였는데, 일본은 어떻게 메이지유신 후 50년 만에 비행기를 만들고 항공모함을 만들었을까?

책에는 일본이 조총을 만든 후 임진왜란 전에 조선에도 조총을 전해주었다는데, 조선은 왜 일본처럼 이를 개발해 무기화 할 생각을 않고 창고에 그대로 처박아 두었을까?
조선은 왜 일본처럼 서양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나가사키 역 앞, 길을 물으니 육교 위까지 따라와 저 끝쯤이 데지마라고 알려준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데지마를 물어보니 자기 방향과 다른데도 도로 끝이 보이는 육교까지 따라와 안내해 준다. 정말 친절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라는 생각을 또 하게된다.  
데지마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면 된다니까, 시내구경 겸 걸어서 가다가 나가사키 짬뽕집이 있으면 먹기로 하고 걷는다. 

점심시간은 이미 지나버렸고, 아이를 데리고 가는 젊은 여성분에게 근처에 나가사키 짬뽕집이 있느냐고 물으니 어디쯤 가면 있을 거라고 말하는데, 지리도 잘 모르겠고 그냥 잘 알겠다하고 데지마 쪽으로 향한다. 
근처에서 60대 중후반 남자에게 데지마를 물으니 길을 따라오며 신호등을 건너면서까지 안내한다. 
외국인에 대한 배려이겠지만 과잉친절 같아 좀 부담스럽다. 

나가사키 항이다. 도시의 품에 안긴 것 같은 나가사키 항이 잔잔한 파도만큼이나 예쁘고 평온하다. 
바다 위엔 옛날 그 당시 무역을 했을 것 같은 목선이 떠있고, 잘 꾸며 논 수변공원엔 다양한 먹거리 매장도 있다. 

여기도 나가사키 짬뽕은 보이지 않는다. 그놈의 나가사키 짬뽕이 뭐라고 시간도 늦고 해서 생선초밥이나 먹어야겠다고 길을 건너려는데, 식당 앞에 펄럭이는 수직 깃발에 나가사키짬뽕라고 써진 것이 보인다. 억울할 뻔 했는데 살았다.  

나가사키 짬뽕

  면이 적게 든 나가사키짬뽕은 790엔 + 군만두 3개 150엔. 야채와 함께 깊이 우려낸 맵지 않는 나가사키짬뽕이 맛있다. 일본음식은 평균적으로 양이 많은 것 같다. 난 면이 작은 것을 주문했다.
여행객에게 나마비루(생맥주)는 감로수다. 일본에서는 언제, 어디서든지 생맥주를 먹을 수 있어 좋다. 
(별 것 아니지만) 먹고 싶었던 나가사키 짬뽕도 먹고, 시원한 생맥주로 목도 축였으니 이젠 데지마로 곧장 가자. 

데지마(出島)는 1637년 카톨릭 포교를 하는 포르투갈인을 가두기 위해 바다에 만든 약 5,000평 크기의 인공섬이다. 1639년 포르투갈인을 추방하고 이후 200년 동안 이곳은 네덜란드와 무역과 교류를 하며 서양학문을 받아들이는 통로가 된 곳이다.  나가사키는 유럽 학문 난가쿠(蘭學)의 성지였고 이곳에 네덜란드 상관이 있었다.  

지금의 데지마는 일부 매립되여 섬이 아니다.
바다라 해도 바로 20여m 눈 앞이라 헤엄쳐도 충분히 건너겠지만, 어쨌든 이 작은 섬에 포르투갈인과 네덜란드인들이 갇혀 살았을 것이다.   

다리를 건너면 '데지마'다

다리를 건너 입장료 520엔을 내고 데지마에 들어간다. 데지마에는 에도시대를 재현한 건물들과 조선 도공이 빚은 도자기, 서학(네덜란드 난학) 등의 서양 문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범위가 좁아 1시간이면 다 둘러볼 수 있지만, 책에서 읽은 데지마와 그 역사의 현장을 접목해 당시의 무역품, 주거생활공간, 생활용품, 난방시스템 등도 예리하게 살펴보고, 각 방에도 직접 들어가 보고 사진도 찍어둔다.
데지마는 쇄국정책을 펴던 일본의 국제무역 창구였고 바깥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숨구멍이었다. 

관광지 내에 하카마(일본 남자복장)에 삿갓을 쓰고 칼을 든 안내원이 안내도 하고 사진도 같이 찍어준다. 기모노를 빌려 입은 여성관광객도 많았지만 난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대신했다. 

 난생 처음 가지고 간 셀카봉으로 독사진을 찍어보려 했는데 블루투스가 안 되는지 사용법을 몰라서 그런지 사진이 찍히질 않는다.(카메라 쪽을 향해 손을 흔들기만 하면 찍히는데 나는 디지털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 할 수 없이 일본 여성관광객들에게 사진을 부탁했더니 이런저런 각도로 친절하게 잘 찍어준다. 감사하다.

나의 여행기 속엔 일본에 대해 좋은 평가가 많이 나오는데, 사대주의나 친일파같은 시선으로 보지 마라. 일본을 넘어서려면 일본을 알아야하는데 한국은 이미 극일을 했고 일본이 오히려 한국을 부러워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제 한국은 세계속에서 자랑스러운 국가고 국민들 역시 자긍심이 높다. 그럼에도 좋은 것은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제 다음 목적지 쿠루메행 열차를 타기위해 다시 나가사키역으로 간다.  
올 땐 걸어왔지만 갈 땐 노면 전차를 타기로 했다. 이번 여행의 테마가 기차여행이고 노면전차도 기차이기 때문이다.
4정거장 쯤 되는데 140엔, 참 편리하고 새로운 경험이다. 
노면전차를 타보는 것은 나가사키 여행에 보너스 같은 추억을 더한다.

나가사키 역 앞 노면전차와 버스터미널

 일본에는 한국의 지하철처럼 환승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 
대도시와 직접 연결되지 않는 중소도시를 가려면 대부분 중간에서 환승해야 한다. 

나가사키역에서 기차시간표를 보니 타케오온센으로 가는 신칸센 열차시간이 2분밖에 남지 않았다. 탈까 말까 망설이다 순간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이를 보고 역무원이 무전을 치는걸 보니 열차를 출발시키지 말고 기다리라는 무전 같다. 10~20초 남기고 승차완료, 작은 성취감을 느낀다. 좌충우돌 여행은 이래서 재밌다. 

 나는 여기서 레일패스의 위력을 실감했다. 레일패스 없이 기차를 타려면 창구에서 기차표를 구입하던지, 이용법도 잘 모르는 자판기에서 발권을 해야 하는데 외국인들에게는 영 불편하다. 그리고 한번 발권하면 변경도 할 수 없다. 

그러나 1만 엔짜리 레일패스 한 장이면 기차표를 끊을 필요도 없고, 아무역에서 아무열차를 타고, 아무데나 내려도 되니 얼마나 편리한가? 
하물며 일본이 자랑하는 신칸센도 내 마음대로 탈 수 있으니 큐슈의 모든 기차가 내 자가용 이다.  

  쿠루메까지 가려면 직통은 없고 두 번 환승을 해야 한다. 나가시키 - 타케오온센(환승) - 토스(환승) - 쿠루메로 가야한다. 환승이 그렇게 번거롭지 않고, 노선마다 구간마다 열차도 달라 갈아타는 즐거움이 있다.  

  신칸센 열차에 다시 열차에 몸을 싣고는 준비해간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많이 걸어서 발도 좀 아픈데 열차 내에서 슬리퍼를 신으니 발에도 숨 쉴 틈을 주고 피로도 풀린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청보리가 핀 들판이 참 넓다. 사가현의 내륙지역이다. 
나지막한 집들과 비가 내린 뒤 먼지를 걷힌 하늘이 파랗다. 산도 없는 마을 끝에 파란 바다가 보인다. 분명 바다다. 그런데 내륙이라 바다일 리가 없다.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이었을까? 이곳이 참 축복받은 땅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다시 사가역, 한국을 사랑하는 일본 사람들의 모임인 '후쿠오카 나들이회' 하시모토 누님이 살고 있는 곳이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교류도 하고, 나보다 10살도 더 많지만 편지도 늘 꽃 편지지에 써서 보내주는 마음은 소녀인 누나다. 

릴레이 카모메

타케오온센에서 토스행 릴레이 카모메로 갈아타고 토스역에 내린다. 
석탄기 가득한 때 묻고 오래된 토스역 지하도엔 옛날 증기기관차 사진들이 커다랗게 전시되어 있다. 
철도 출신인 내게 옛날 증기기관차 사진들은 가슴을 뛰게 하고, 고교시절 서울 유학할 때 야간열차를 타면 하얀 스팀을 내뿜으며 뽀옥~ 뽀옥~ 울던 그 기적소리가 바로 추억하게 만든다.    
(다음 여행 땐 시모노세키 철도 박물관을 방문해 볼 예정이다)

토스 역,
카고시마 라인

토스에서 다시 카고시마라인 열차로 갈아타고 쿠루메로 향한다. 
≪ 3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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