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여행지로 경남 양산의 천성산 내원사를 다녀왔다
나는 역마살이 있는지 집에 가만히 붙어있지를 못하는 성격이다.
굳이 목적지가 없더라도 어디론가 훌쩍 떠나는 것을 좋아하고, 길이 있는 곳이면 아무 골목이나 일단 들어가 본다. 그러다 막다른 골목이라 돌아오면 된다.
그것을 역마살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나는 호기심 또는 ‘노마드(nomad) 정신’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산티아고 길을 걸으려면 최소 1달 반 정도는 시간을 내야 하는데, 현직에 있으니 은퇴 후에나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우선 우리나라부터 먼저 돌아보고 다리에 힘도 키우자는 생각이다.
천성산은 근교에 있는 산이고 이름도 익히 들었지만 내원사까지 가 보기는 처음이다.
오늘도 드라이브 중 갑자기 이곳으로 핸들을 꺽은 것이다.
양산시 하북면 용연마을을 지나 내원사로 향하는 길이 하천 양쪽으로 잘 정비되어 있다.
내려오면서 들려야지 싶은 토속음식점도 많고, 예쁜 카페도 시선을 뺏는다.
계곡엔 겨울 가뭄이 심했는데도 물이 많이 흐른다.
이곳이 산이 깊고, 물이 모이는 유역면적이 넓다는 증거겠다.
도립공원, 천성산 내원사 일주문에서 주차비 2,000원을 내고 들어가니 바로 주차장이다.
걷기로 한 탓에 내원사 까지 “걸어가도 되느냐” 물었더니 “걸어가면 45분, 차로도 10분 걸린다” 고 한다.
용연마을에서 일주문까지가 하천쯤이라면 일주문 옆 심성교를 건너면 이때부터는 내원사로 향하는 계곡 길이다. 길은 아스팔트로 잘 포장이 되어있고 올라가는 곳곳에 주차장과 화장실도 있어 편리하다.
혼자, 3명, 4명 ... 입구에서부터 평상복 차림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날씨도 따뜻하고 바람도 없어 좋은데 관광객은 십여명 정도로 얼마되지 않는다. 나는 아내와 같이 간 탓에 중간쯤에 차를 세우고 걷기로 했다.
차안에서 보는 풍경이 멋지다. 700m쯤 올라갔을까? 차타고 가면 이 멋진 풍경을 놓칠 것 같아 걷기로 한다. 내원사 까지 계곡을 따라 이어진 길은 경사도가 낮고, 길 가장자리 계곡쪽 도로 난간을 의자 식으로 만들어 놓아 남녀노소가 계곡을 감상하며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풍경이 가히 절경이다, 구르다 박힌 집채만 한 바위덩어리가 이곳저곳에 서로 기대어 서 있기도 하고, 수천 년, 수만 년에 걸쳐 돌이 구르고 물이 흐르며 깎고 다듬은 6km에 달하는 내원사계곡이 과연 제2금강산이고 소금강이라는 일컬을만 하다.
하류가 바위와 돌이 깔린 좀 넓은 하천이라면 깊이 들어갈수록 계곡은 군데군데 소(沼)를 만들어 물을 품고, 맑디맑은 물들은 소리내어 흐르다 소에 고여 쉬었다 감을 계속한다. 바람도 잠든 고요한 소(沼)는 스스로 얼마나 맑은지를 보여주려는 듯 어떤 소는 유리 같기도 하고, 어떤 소는 파란 빛을 띠고 있다. 바닥에 작은 자갈까지도 손에 쥔 듯 선명하다. 학창시절 설악산 등산을 갔을 때 수렴동 계곡의 소가 오늘처럼 맑아 수영하러 들어갔는데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아 죽을 뻔한 추억들이 생각난다.
어찌 계곡뿐이랴, 가파른 절벽위에 위태하게 서있는 큰 소나무는 바위의 쪼개진 틈으로 깊게 뿌리를 내렸나 보다 병풍을 두른 듯 깎아지른 절벽 길에선 천 년 전쯤에 여기다 석불을 조각해 두었더라면 유적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산의 좌우 대부분은 낙엽송인 참나무가 많고, 대한민국의 정신 같은 푸른 소나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래도 가는 길옆엔 아름드리 노송들은 서있어 이곳이 천년사찰로 가는 길임을 알려준다.
심성교(尋聖橋), 옥류교(玉流橋), 세진교(洗塵橋), 여의교(如意橋), 금강교(金剛橋)를 지나고, 선 바위에 새긴 마음을 다스리는 글귀에 깨달음을 얻는다. “괴로움은 욕심 때문에 일어나고 지혜 때문에 사라진다”, “부처님 법은 모든 것을 놓아 버림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겨남으로 저것이 생겨난다”, “자신의 내면이 깨어있지 못함은 무지 때문이다”
내원사는 1,300년 전 신라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이라 하는데 지금 이곳이 비구니 스님 수도원이라 한다. 목조건물과 콘크리트 건물이 같이 있고, 대웅전과 종무소건물의 단청이 산뜻하다. 오사카 교토의 청수사의 붉은 단색 도색이나, 나라의 동대사가 단청을 하지 않은데 비하면 우리나라 사찰의 단청은 공도 많이 들고 아름답다. 스님들의 수행장소인 소심당은 아직 단청을 하지 않은 상태라 어둡지만 그래도 역사의 오랜 향기가 묻어나는 것이 좋다.
“멈추어 서서 고요히 바라보세요, 스님 모습은 렌즈에 담지말아 주세요”, “스님들의 수행공간이오니 발길을 돌려주세요” 이런 문구가 참 마음에 들고 경건하게 만든다. 관광객들중에는 스님들이 수행하는 공간에서 떠들고, 아무 곳이나 기웃거리고, 스님의 모습까지 카메라에 담는 모습은 정말 예의가 아니다. 스님 모두 수도중인지 경내에서 단 한사람의 스님도 만나지 못했다. 소심당 앞 음수대에서 조용히 한 모금 목을 축이고 발길을 돌린다.
내려가는 길은 내리막이라 수월한 것도 있지만 발걸음이 가볍다. 최근 신경 쓸 일이 많아 머릿속이 번쩍번쩍 하는 증상이 있었는데 이곳을 걷고 그 증상이 없어진 것 같다. 쉬엄쉬엄 1시간 40분 정도 걸었는데 다리도 아프지 않다.
꼭 먼 스페인까지 가서 산티아고 길을 걸어야만 깨달음을 얻는 것일까? 그것 역시 보여주기 위함은 아닐까? 여기처럼 혹은 다른 대한민국의 산길, 흙길, 골목길을 걸으며 깨달음을 얻는다면 그 길이 곧 산티아고 길이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
다음에 이 길을 혼자 걷고, 그 다음엔 10kg 배낭을 메고 20km정도 시골길을 걸어 걸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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