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23.(목)~26일(일), 3박 4일 일정으로 ‘고교졸업 45주년 기념 오사카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가장 추억이 남을 고3때 학교사정으로 졸업여행을 가지 못했기에, 더 늙기 전 다리에 힘이 있을때 60중반의 허연 머리로 떠난 늦깎이 졸업여행이었다.
모든 여행이 다 가슴 설레지만, 고등학교 한반 친구들이 졸업 45년 만에, 60 중반에 떠나는 졸업여행이니 그 설렘과 기대는 다소 느려진 심장을 다시 두근거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베이비붐 세대, 7080세대의 중심인 우리 친구들,
학창시절엔 까만 학생복에 10인치 반, 12인치 나팔바지를 입고, 통기타 치며 고고 춤추고, 향토장학금이 오는 날은 자취방에서 뽀얀 담배연기 속에 막걸리 째리도록 마시던 그때 그 시절이 아직도 생생한데 .... 그때의 고3 으로 다시 돌아가 떠나는 졸업여행이니 얼마나 가슴 설레었을까?
특목고, 학비면제, 책과 교복까지 국비로 지급되는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 “국립철도고등학교”. 머리는 좋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인문계 학교에 갈 수 없었던 전국 각지의 수재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 용산의 철도고등학교 운동장에 한 줄로 선 것이 1976년 3월이었으니 어언 48년이다.
텔레비전도 없어 서울말을 직접 들어본 적도 없던 나에겐 서울, 경기, 전라, 충청, 강원 모든 말들이 서울말처럼 들려서 한마디도 못하고 얼어버렸던 그 만남과 떨림의 순간.
이렇게 우린 운명처럼 만나 동기가 되고, 깜둥 추억들을 함께 나누고, 졸업 후에도 모두 철도공무원으로 임용되어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국립 철도고 토목과 10회 동기, 바로 우리 열씨미(10회 Civil engineering Meeting)들이다.
(토목과는 1반뿐이라 3년 동안 같은 반이었고, 졸업 후도 같은 길을 갔으니 우린 친구를 넘어 운명을 같이하는 동반자다)
(졸업여행을 논하다)
이번 거사의 시작은 이러하다.
2023년 4월 21~22일 경주에서 열린 1박2일 반창회 때, 김관형 회장과 권기승 총무를 이어 정원수 회장과 김선곤 총무가 선출되었다. 전임 집행부가 알뜰하게 회비를 거두고, 코로나로 지출도 줄다보니 회비가 4,300만 원이나 모였고, 신임 회장. 총무가 동기들을 위해 영원히 기억에 남을 추억거리를 만들도록 하겠다며 해외여행을 제안했다.
우리 친구들 모두 사회와 직장에서 성공한 인생들을 살았던 최고의 엘리트들이지만, 이제 그 정점에서 내려와 제2의 인생을 시작해야 하는 나이에 뭔가 새롭게 활력을 불어넣을 임팩트가 필요했고, 또 남은 인생을 함께할 소중한 친구들과의 우정을 다시 한 번 꽁꽁 동여매기 위함이었다.
(응답하라 1978)
모두가 원했고, 누군가 해야 했지만 실행하지 못한 해외 졸업여행, 제안된 안건은 이의 없는 동의와 재청으로 가결되고, 부득이한 사정으로 참석할 수 없는 친구를 제외하고 회원 42명중 최종 30명이 여행에 참석했다. 나 역시 현역이고 회사일로 바쁘지만 (우리 나이에) 이번이 우리 동기끼리 단체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기로 했다.
여행일정은 일본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동남아, 중국 등을 대상으로 여행지 선호도 투표를 한 후 최종 오사카 3박 4일 코스로 결정되었다.
이번 여행을 위해 정원수 회장이 1,000만원을 찬조한 것을 비롯해 많은 친구들이 200만원, 100만원, 50만원 등 찬조행렬에 참여해 3,000만원 가까운 찬조금이 모였고, 여행에 참여하지 못하는 친구도 찬조에 동참함으로써 여행경비에 대한 부담도 많이 줄어들었다.
(여행은 가벼워야 한다. 몸도 가벼워야 하고 떠나는 마음도 가벼워야 한다)
이제 여행준비를 해야 한다. 이왕 떠나는 여행이고 블로그도 시작해볼까 하던 차라, 지난번 혼자 떠난 북 큐슈 기차여행 때처럼 여행일기를 적기위해 작은 스프링 수첩도 하나 준비했다.
오사카는 위도가 부산과 비슷하지만, 늦가을이라 날씨가 어떻게 변할지 몰라 여행복을 선택하기가 마땅찮다.
여행갈 때는 날씨의 변화에 맞게 두꺼운 옷도 가져가는 게 좋다. 추워서 떨면 여행이고 뭐고 진짜 개고생이다. 그러나 3박 4일에 이것저것 다 챙기면 여행 가방이 복잡해진다.
(난 혼자 여행갈 땐 작은 배낭하나만 매고 간다)
일기 예보를 보니 그렇게 추울 것 같지 않아 캐주얼 하게 떠나기로 하고, 혹시에 대비해 후드 달린 옷에 운동화를 신었다. 모름지기 여행은 가벼워야 한다. 몸도 가벼워야 하고 떠나는 마음도 가벼워야 한다.
멋스럽고 편한 옷과 편한 신발은 여행을 더 경쾌하게 자신 있게 만든다.
(설렘을 안고)
드디어 출발일 아침이다.
인천발 – 오사카 09:00분 대한항공 26명, 부산발 – 오사카 08:30분 제주항공 4명이다.
서울, 부산, 전주, 대전, 제천, 원주, 경주 .... 출국시간 2시간 전인 6:30분, 07:00분 까지 부산, 인천공항에 도착하려면 새벽길을 나서야 할 친구들이 많다.
부산의 준원이는 오는 길에 나를 픽업해 가기로 했고, 성진이는 제천에서 새벽 3시에 출발해서 원주에서 순웅이를 픽업해서 인천공항으로 가기로 했단다.
그놈의 정이란 게 뭔지.....
공항에 도착하니 벌써 해외여행객들로 가득하다.
부산 친구들은 사전에 A.B.C.D 연번으로 좌석을 예약해 두어서 금방 체크인 후 발권을 했고, 로밍까지 마치니 시간이 많이 남아 공항에서 아침을 먹었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왔는데 날씨가 포근해서 다행이고 감사하다.
(현해탄을 건너)
출국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오르니 여행을 떠나는 사람, 출장, 혹은 귀국길 승객까지 만석이다.
부산-오사카행 제주항공은 좌우 3열배치 소형항공기라 좀 좁은 듯 했지만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모두 마냥 들떠 있는 것 같다.
엔진 소리가 커지고, 활주로를 힘차게 박찬 비행기가 날고 나도 난다.
아파트가 작아지고, 높은 산도 숨겨진 산세를, 실체를 내 보인다.
인생도 세상도 다 별것 아닌데, 보이지도 않는 저 조그만 주택과 아파트의 구멍구멍 마다에도 그들만의 삶의 이야기가 있고, 희로애락이 있겠지
발아래 흰 구름이 무릉도원을 만들기도 하고, 점점이 떠가는 흰 구름 조각들은 동화 속 신천지를 찾아 떠나는 돗단배같다.
비행기가 두꺼운 구름층 위를 난다.
지금 구름 위에는 밝은 햇빛이 비치지만 저 구름 아래는 흐리거나 비가 내릴 수 도 있겠다
‘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라고 했는데, 구름이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동시에 가졌듯이 우리의 인생도 밝은 면과 흐린 면이 늘 붙어있다. 받아들이기 나름이고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끝을 맞춰보면 결국 인생은 본전이다. 작은 일에 일희일비 하지 말자.
현해탄을 지나고 저 멀리 산들이 보인다. 일본 땅이다. 한국의 산들이 날카롭지 않고 둥글둥글 하다면, 일본의 산들은 우선 뾰족뾰족하고 산등성이도 날카롭다는 느낌이다.
무리에서 떨어져 산기슭에 외롭게 걸린 작은 구름 덩어리를 보고는 '나는 자연인이다'를 떠올린다.
저 구름도 자연인을 꿈꾸는 걸까?
(만남)
9:40분 오사카의 관문 간사이공항에 도착한다. 간사이공항은 1994년 바다를 매립해 만든 공항으로 1터미널과 2터미널이 있다. 바다위에 펼쳐진 활주로 주변엔 산도 집도 나무 한그루 없어 황량함마저 느껴지지만 사방 탁 트여 눈도 시원하고, 조종사들이 이착륙에 부담이 없어 제일 선호하는 공항이란다.
가덕도에 신공항을 만들면 이렇겠다.
부산팀은 간사이공항 2터미널 도착후 셔틀을 타고 1터미널로 이동해 서울친구들의 도착을 기다린다.
나는 여행의 설렘에 잠을 설쳤는데 한 친구는 애완견이 끙끙거려 못 잤단다.
“사람은 스스로 운명을 만들고도 그 만들어진 것을 운명이라 한다.”(허브코헨)
“그럼 개를 안 키우면 되잖아? ㅎㅎ”, “그래도 재롱떨고 애교부려 키우는 재미가 있다네.”
11:40 : 서울 친구들이 도착한다.
“어이~ 친구야 오래간 만이다”, “너 많이 변했다”, “넌 어쩌면 하나도 안 변했나?” 오랜만에 보는 친구도 있어 돌아가며 반가운 인사들을 나누는데 키 큰 한사람이 누군지 모르겠다. 가이드는 아니고 살짝 물어보니 박인천이란다. 살도 찌고 키도 학교 다닐 때 보다 훌쩍 커서 영 모르겠다. 이래서 자주 만나야 하는것이다.
부산팀도 소주를 챙겨왔는데 서울팀은 공항에서 소주를 100병이나 사왔다고 한다.
직장에서의 위치만큼이나 스케일들도 크다. “그래 졸업여행인데 이 정도는 돼야 되지 않겠어?”
60중반을 달리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친구들 모두 아직 88하다.
아참,.. 이번 졸업여행은 고3의 마음으로 떠나자 했으니 ...우리 지금 고3이지 ..ㅎㅎ
우리는 오늘 일본을 만나고, 옛 친구들을 만났다
(다음 포스팅에 오사카 졸업여행 (2)가 이어집니다)
(아래는 추억의 사진들)
열씨미, 졸업 45주년 기념 오사카 여행기 (3) (0) | 2024.03.12 |
---|---|
열씨미, 졸업 45주년 기념 오사카 여행기 (2) (1) | 2024.03.11 |
말기 암 할머니의 생의 마무리 방법 : 여행 (1) | 2024.01.22 |
천성산 내원사를 다녀와서 ... (2) | 2024.01.09 |
11.27 오사카 여행을 마치고 (2) | 2023.1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