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또 휴가철이다.
아이들 어릴 때는 매년 산이나 바닷가에 가서 텐트치고 추억을 만들어주곤 했었는데
다 결혼하고 나니 이젠 휴가가 되어도 특별히 휴가계획은 없다.
그저 휴가니까 친구들과 골프 한두 번 치거나, 부부동반 맛있는 것 먹으로 가던지 하는 게 전부다.
나는 역마살도 끼고, 방랑 끼도 있어서 가만히 붙어있질 못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주말이면 혼자라도 그냥 차 몰고 떠난다.
목적지도 없다.
길 위, 발길 닿는 곳이 목적지고, 시장에 들러서 군것질을 하던가 길가에 파는 옥수수 빵을 사먹는 재미도 좋다.
그래서 나는 '여행',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설렌다.
호모비아토르, '여행하는 인간'이 혹 내 숙명은 아닐까?
나는 호기심이 많다.
알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것도 많다.
낯선 걸 만날 때, 그리고 그것들과 대화할 때 나 답고,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다른 사람은 철학이나 인문학 책이 무겁다, 지겹다, 잠 온다고 하지만 나는 이런 책들이 좋다
알면 새롭고, 시야가 넓어지고, 내 지식과 삶의 지평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 깊은 곳에 숨겨진 보물을 찾는 느낌으로, 눈이 반짝이고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여행은 단체여행도 좋지만, 설레는 것은 역시 혼자 떠나는 여행이다.
마누라 눈치도 보이고, 친구들도 있어 함께 여행가는 것을 우선적으로 생각은 하지만, 내심은 혼자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야 내가 가고 싶은 곳도 가고, 자기 취향에 맞는 여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좌충우돌, 서바이벌 여행이 한편 두렵기도 하지만 스릴도 있다.
(물론 친구들과 이것저것 기웃거리며 한잔하는 낭만은 없다)
작년 봄엔 혼자 북큐슈 기차여행을 다녀왔다.
테마는 ‘기차여행’이었고, 조건은 '혼자 떠나는 것'이었다.
은퇴 후 여행을 하면서 여행기를 쓰는 ‘여행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그것이 가능한지를 시험하는 도전이기도 했다.
어쨌든 처음 적어보는 여행기였지만 손바닥만한 수첩에 50페이지나 적었고, 나중에 사진과 함께 “혼자 떠나는 북큐슈 기차여행기”라는 제목으로 지역잡지사에 1편을 실었고, 이 블로그에는 2,3,4편이 다 실려 있다.
이어서 작년 11월에는 고교졸업 45주년 기념 오사카여행을 다녀오면서 또 여행기를 적었고, 여기 1,2,3,4편으로 나누어 실었다.
여기서 느낀 것은, 혼자 여행을 떠날 때는 그때그때의 느낌과 생각들을 바로 노트에 적어 둘 수 있었는데, 단체여행을 가면 그럴만한 여유와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단체여행은 정해진 코스, 시간에 따라 움직여야 하고 행동도 통일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혼자 차분히 느끼고, 생각하고, 메모할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왁자지껄하고, 시간에 쫓겨 빨리 돌아보고 기념사진 하나 찍고는, 다시 집결, 이동, 식사..
사실 단체여행에서는 몰려다니다 보니 길거리 음식하나 사먹을 여유도 분위기도 없다.
하물며 노트를 꺼내 여행기를 적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무엇보다 자신을 돌아보고, 차분히 자신과 대화를 할 시간이 없더라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가이드의 안내멘트에서 친구의 건배사 하나까지 기록하여 여행기를 완성하긴 했지만,
이것은 여행기록물일 뿐이지 느낌을 담은 진정한 여행기는 아니다라는 생각이다.
6월 초엔 미국서부여행을 다녀왔다.
미국 사는 아들이 초청했고, 아들 역시 아버지를 잘 알기에 이번 여행은 아버지에 포커스를 맞춘 '미국 서부여행'으로 준비했다고 했다.
LA 근교 공원, 바닷가, 맛집, 쇼핑몰, 헐리우드, 천문대도 다 좋았지만, 역시 내겐 아리조나 사막 – 라스베가스 – 후버댐 – 네바다사막 – 샐리그먼 – 그랜드캐년 코스가 더 좋았다.
광활한 대지와 사막, 수시간을 달려도 늘 같은 풍경이었지만 그 가운데 어떤 곳은 선인장, 어떤 곳은 용설란이 자라고, 어떤 곳은 모래사막, 어떤 곳은 붉은 바위산, 그랜드 캐년 근처에 이르러서는 그나마 숲이 있는 곳도 있었다.
사막 위 잡풀 정도만 자라는 벌판 가운데 외딴 오두막집에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서부영화에서 많이 보았던 황량하지만 낯선 풍경, 가공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내가 직접 본다는 것이 신기했다.
영화세트를 갖추지 않더라도 지금 바로 카메라를 들이대고 말을 달리면 서부영화가 되고, 저 바위산 너머에서 아파치나 카우보이, 건맨들이 금방이라도 달려올 것 같은 분위기다.
이런 끝도 보이지 않는 어마어마한 사막과 광활한 대자연에 감탄하면서 미국이라는 나라의 무한한 가능성을 느끼며, 만일 한국에 이런 곳이 있었다면 세계 최대의 골프장도 만들었을 거라는 발칙한 생각도 해 봤다.
직접 보고 느끼는 것, 이것이 여행이다.
내가 워낙 서부영화나 웨스턴 스타일을 좋아해서 아들이 카우보이 샵에 가서 카우보이모자와 부츠, 조끼를 사주겠다고 데려갔지만 내 나이에 차마 부츠까진 못 사고 카우보이모자와 두꺼운 통가죽 벨트만 샀다.
나는 이번 여행 역시 '미국 서부여행기'를 쓰기위해 노트를 준비하고, 순간순간, 장소장소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열심히 사진도 찍었는데 이런 나의 여행스타일이 아내와 아들, 딸에게는 불편하게 보였던 것 같다.
‘여행은 사진 찍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담고 오는 것’이라나?
맞다. 여행은 눈에 많이 담고, 맛있는 것 먹고 즐겁게 놀다 오면 된다.
하지만 나의 여행에는 목적이 있다. .... ‘여행기’
그래서 이번 휴가때는 일본 시모노세키와 고쿠라 ‘맛집여행’ 으로 테마를 잡았다.
혼자 여행가면 아내가 뭐라 할지 몰라 아내에게 “같이 가자”하니 “날씨도 덥고 당신하고 여행 다니면 힘들다”며 혼자 다녀오라 한다.
물론 아내는 아내친구끼리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지만 모두 팩키지 여행이다. 여자들 끼리는 그런 여행이 편하고 좋은 모양이다.
사람은 각자의 여행 스타일이 있다.
내 친구들도 많이 걷고 돌아다니는 여행은 싫고 단체여행이 편하다고 한다.
오히려 잘 됐다. 아내도 안 간다고 하고, 친구들도 안된다고 하니 이제 나 혼자 떠나면 된다.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 ), 감히 청하지는 못하지만 원래 부터 바라던 바였다.
이번 여행엔 또 어떤 이야기들이 만들어질까 벌써 설렌다.
아내와 가면 비행기를 타야겠지만 혼자가면 싸고 낭만이 있는 밤배를 타도된다.
호텔도 작은 것으로 해도 되고, 앞으로 혼자 세계여행을 하려면 게스트하우스도 이용해야 될것 같아 경험도 할 겸, 싸고 여행객들과 대화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호스텔)도 예약했다.
전철을 타도, 버스를 타도 되고, 좀 먼 거리지만 걷고 싶으면 걸어도 된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내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는, 거슬림이 없는 자유여행 이다.
구글지도에서 미리 코스도 대충 정해본다.
가라토시장 초밥, 복어회, 고쿠라 탄가시장, 숨은 맛집과 이자카야에서 한잔, 생맥주는 매끼마다, 외국 친구를 만나면 더 좋고 .... 낯선 여행에서 영화처럼 우연한 만남도 이루어 지려나? ㅎㅎ...
나는 이런 여행을 상상하고 준비하는 과정들이 즐겁다.
이번 여행을 위해 기꺼이 동영상 촬영기 '오즈모 포켓2'도 구입했다.
손바닥 안에 드는 작은 촬영기인데, 남의 눈에 잘 띄지 않고 영상촬영과 함께 녹음도 가능하다.
이것을 이용하면 번거롭게 휴대폰을 꺼내 동영상을 찍거나 노트에 적어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어줄 것 같다. (느낌도 그때 그때 영상과 함께 말로해두면 되니까..)
혹 아는가? 이런 것들이 모이고, 경험이 쌓이고, 컨텐츠가 좋으면... 은퇴 후 잘 나가는 여행 유튜버가 될런지도 ... ㅎㅎ
이번 여행기를 쓰기위해 잠시 짬을 내어 여행을 준비하는 마음들을 대충 적어 둔다.
남들로부터 관심 받고 싶어서도, 돈을 벌기 위해서도 아니다.
난 지금 늙지 않으려고, 맑으려고, 나를 찾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의 내 삶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만의 속도로'
'나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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