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단소경박(短少輕薄)

유초잡감

by 유초선생 2024. 2. 26. 14:55

본문

 

오뉴월 젊은 아가씨의 치맛자락이야 짧을수록 좋고, 
배 나온 중년 여성의 저울눈금은 가벼울수록 좋다.    
하물며 SNS의 글도 짧을수록 좋다.  

요즘은 SNS(Social Networt Service) 시대다
카톡, 밴드,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 옛날처럼 전보를 치고, 손 편지를 쓰고, 전화하고, 발품을 팔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젠 SNS상에서 서로 연락하고, 공통의 관심사를 나누고, 새로운 인맥을 형성하고 인간관계를 맺어간다. 
한마디로 나 자신이 중심이 되어, 나의 관심사와 개성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호응함으로서 상호 소통한다. 

이러다 보니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카톡 카톡’ 알림음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정보의 바다라고 하는 유튜브에는 내가 알고 싶은 지식과 볼거리들이 무한으로 올라와 있고, 틱톡(TikTok)에 올라오는 짧고 재미있는 동영상은 눈을 떼지 못하고 계속 보게 만든다.   

덕분에 세상 편해지고 사람들도 단순해졌다. 검색하면 나오니 굳이 책을 찾거나 머리를 싸매고 공부할 필요도 없다. (편의점에서 다양한 식사류를 사먹을 수 있듯이) 사람들과 굳이 어울리지 않고도 나만의 세상에서 심심치 않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러다 보니 유튜브 중독에 빠지고, 너도 나도 정치평론가가 되고, 은둔형 외톨이가 늘어나고,  디지털 기기 스크린에서 나오는 청색광 '블루라이트'가 수면 장애와 피부 노화를 유발한다는 걱정에 까지 이르렀다. 

‘부친 위독 급래’ ... 시골에서 자전거를 타고 우체국에 가서 타지에 있는 형제나 친척에서 급한 전보를 치거나, 밤 새워 연애편지를 쓰고 찢고 쓰고 찢고, 우체부 오는 시간에 맞춰 동네 어귀로 나가 혹시나 답신이 올까 기다리던 시절의 이야기는 ‘나 때는 말이야, latte is a horse’의 추억으로만 남았다. 

가끔 생각한다. 지금 젊은이들에게 그런 애틋한 마음, 감성들이 있을까? 통기타 치며 고고춤  추던 추억이 없는데, 그들은 나중에 어떤 추억들을 이야기 할까? 화려한 이벤트, 보드게임, 온라인 게임의 추억?

SNS에서 정보는 홍수처럼 넘쳐나고 사는게 바쁘다 보니 이젠 사람들도 정보를 얻는데 굳이 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불필요한 정보나 텍스트가 긴 문장은 바로 스킵(skip)해 버린다. 손가락으로 밀어버리면 되니 말이다. 텍스트 보다는 소리나 영상물을 좋아하고, 다큐멘터리보다는 짧은 동영상을 좋아한다. 유튜브의 영상도 자극적인 제목에 끌리고, 영상도 앞 부분만 잠깐 보고는 또다른 것에 기웃거리니 일면만 보고 전체를 판단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모두가 반풍수밖에 되지 않는다. 반풍수가 집구석 망하게 한다.    
     
과연 단소경박, 경박단소(短少輕薄, 輕薄短小)의 시대다.
디지털 기계도, SNS도 짧고, 작고, 가볍고, 얇아야 먹힌다.  
난 가끔 블로그나 단톡방에 글을 올리는데, 친한 친구들이기에 추억이든 세상사는 이야기든 부담 없이 할 수 있어 좋다. 그러다 보니 비교적 글이 길어진다. (다른사람 보기엔 장황하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단 몇 줄로도 자신의 생각을 올리고 몇 자의 댓글로 공감을 표현할 수도 있다.  또 사진 한 장으로 일상을 보여주고 자신의 삶을 대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불끈 불끈 솟아나는 욕망과 후회들, 인간의 원초적 본성과 예민한 감성들, 굽이굽이 몇 십 구비에 맺힌 삶의 이야기들을 어찌 몇 줄 글로 다 엮을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바쁘다. 바쁘다보니 읽기 진부하고 서리서리 끝날 줄 모르는 긴 이야기에 쉽게 지친다. 더구나 인문학이나 철학같은 이야기엔 더 그렇다. 오히려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사람 혹은 관종(관심종자)처럼 폄하해 버리기도 한다. 그러니 나 역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글 올리는 걸 자제하게 된다.  

글을 찬찬히 읽어보면 거기 글쓴이의 마음과 진솔한 삶의 이야기가 있다. 세상이 바쁜걸 인정하고 간단히 쉽게 얻도록 해야 하는 건 맞지만,  그럼에도 우리 삶에 어느 정도 은근함과 기다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메주를 띄우듯이, 시래기를 말리듯이, 아궁이에 장작을 때듯이, 목재의 질감에서 편안함을 느끼듯이 투박한 가운데 인생의 본질이 있다.  

나도 단소경박(短少輕薄, 輕薄短小)이 좋다. 무겁지 않고 가벼워서 좋다.
하고싶은 이야기, 몸에 좋다고 억지로 끼워 넣은 훈계의 잠언, 버리기 아까운 좋은 표현일지라도 ..... 나무를 전지하듯 과감히 잘라내고 버리는 것도 단소경박이다. 
 

728x90

'유초잡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오공의 세상사는 이야기  (0) 2024.02.29
천사 같던 그녀가 ...  (3) 2024.02.28
좋은 물건  (0) 2024.02.23
계획없는 계획  (0) 2024.02.22
햇살 맑은 주말 아침..  (0) 2024.02.1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