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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영천이 좋다.

유초잡감

by 유초선생 2024. 2. 13.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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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맹이처럼 동네어귀를 뜀박질로 달려가는 여울이 좋다
발목 사이로 피래미 겁 없이 꼬리치며 올라가고
돌 틈에 살진 다슬기 게으름을 부려도
사과는 사과대로, 매미는 매미대로 
저대로 익어가고 노래하는  
그 여울가가 나는 좋다

대보 뚝 돌망태를 감고 돌다
나지막한 바위언덕에 기대어 가파른 숨을 쉬어가는 강이 좋다
애기 종다리 나보다 더 빨리 달리고
넓은 강가에 툭 자빠져 누워보면
구름은 구름대로, 소는 소대로 
가다 쉬고, 쉬다 먹어도 재촉하지 않는 
자갈 많은 강가가 나는 좋다.

탱자 꽃 하얗게 핀 과수원길과 달콤한 사과 향
한소끔 끓어오르는 포풀러숲의 매미소리
서산에 걸린 해가 홍시 같이 붉어 질 때
괜한 그리움에 두 눈 붉어오고 
소들 주인보다 앞서 집으로 돌아올 때 쯤이면
뒤안간 굴뚝에 가난도 정이되어 피어오르던 곳.

해국이, 경화, 혜정이, 홍옥 국광, 꺽다구 뿍주구리, 자치기, 오마치기...
그리운 얼굴, 그리운 이름, 깜둥 추억들이 아직도 살아 숨 쉬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창하리 창꿈마을

금호강, 젖내 나는 어머니 품에 안기어 흐르는
내 고향 영천이 나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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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들떴던 설날도 무사히? 지나갔다.
명절이면 고향에 갔고 지금도 가고 싶지만, 올해는 고향엘 가지 못했다.      
고향을 떠난지 50년이 지나 이젠 잊혀질만도 한데 고향을 생각하면 늘 가슴이 먹먹해진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더니 부모님도 다 돌아가시고, 어릴 적 마을을 돌며 세배를 드렸던 동네어르신도 대부분 돌아가셨다. 다만, 멱을 감고 물고기 잡던 자갈 많은 금호강변, 소나무 스무 남은 그루 자라던 용당산과 용당수, 골목과 언덕, 오르막과 내리막길은 아직도 그대로다.  

50년도 넘게 세월이 흐른지라, 산천도 꼭 의구한 것만은 아니다.
추억이 가장 많은 금호강은 새로 둑을 막아 강폭이 많이 줄어들었다.

동네 유일한 언덕인 용당산에는 몇 기의 산소가 있어 10월 묘사때는 떡을 얻어먹곤 했는데, 그 용당산의 잘 생긴? 노송들은 누군가가 정원수로 쓰려고 캐어가 버렸고, 그 아래 썰매타고 물고기 잡던 용당수는 수로만 남긴 채 메워졌다. 

가장 높은 사다리를 써야만 닿던 키 큰 사과나무도, 탱자나무 울타리도, 돌팔매질로 따 먹던 키큰 대추나무도 베어지고 없다.
베이비붐 세대인지라 20여 가구 작은 동네에 12명이나 되던 우리 동기들도 모두 떠나고
이제 남은 건 추억뿐이다. 

노스텔지어,
그래서 고향에 갈 때면 마을 골목과 강변과 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길을 걷고 온다. 
어릴적 추억의 흔적들을 찾아보려고 ............

금호강 너머 서쪽하늘을 물들이는 노을만은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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