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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에 대하여..

유초잡감

by 유초선생 2023. 12. 20.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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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가 쓴 레포트의 일부 입니다) 


 ○ 들어가며

  인간은 누구나 오래 살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간과 생물은 누구나, 무엇이든지 예외 없이 죽는다. 그것이 우주의 질서요 우리의 현실이다 
 진시황은 불로장생을 위해 신비의 불로초를 구하려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4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고, 구약성서에 나오는 므두셀라는 969년을 살았다고 하지만 그 역시 결국은 죽었다는 사실이다. 

  F.엥겔스는 “생명이란 단백질의 존재양식이고 대사활동이다”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이렇게 우리 인간의 생명을 담백질이란 물질의 끊임없는 출입과 변화, 에너지로의 전환, 생성과 소멸을 통해 균형을 유지하고 존재한다는, 그저 DNA를 가진 기계론적 생명체로만 논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인간은 그냥 담백질 덩어리가 아니라 생각할 수 있고, 판단할 수 있고, 결정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는 영적, 육체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와 현생에서의 삶의 현실 가운데서 늘 고민하게 된다. 삶이란 건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 왜 나의 삶은 이토록 힘들고 고통스러울까? 왜 나에게 이러한 고난이 닥치는 걸까? 인간이라는 삶의 종말인 죽음 뒤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인간은 이런 문제에 대하여 끊임없이 물으며 답을 찾고자 했지만 아직까지 그 누구도 시원하고 확실한 답을 찾아내지 못했고, 이런 답답하고 나약한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종교라는 의지처와 안식처를 찾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성경 히브리서 9장 27절과 고린도후서 6장 1절~2절에 “인간의 수명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고 했고 그것도 “수고의 날이며 화살처럼 빨리 지나간다”고 했다. 

 삶이란 한번밖에 없고 누구든 예외 없이 죽는다. 죽지 않고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대리석 조각 같은 ‘생명이 없는 것’ 들이다. 그래서 요즘은 욜로(YOLO : You Only Live Once)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한번뿐인 인생이니 너무 미래만을 위해 살지 말고 현실의 행복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자는 철학이다  

 우리는 한번 사는 인생을 후회 없이, 가치 있게, 존엄하게 살아야 하고 살고 싶다.
그러나 그런 삶의 과정에서 질병이라는 무서운 존재가 우리의 삶을 파괴하고 있고, 어떠한 방법으로도 거부할 수 없는 수명이라는 생명의 한계와 삶의 끝이 존재한다.

 인간은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을 때만 삶의 의미와 가치가 있고, 그것이 바로 인간이 존엄하고 영적 존재인 이유다. 냉정한 이야기라 할 수 있겠지만,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할 수 없을 때 인간은 그저 살아있는 담백질 덩어리 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인생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그래서 우리는 육체가 있는 날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늘 고민해야 하고,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스스로의 철학이 꼭 필요하다. 
  인간의 질병과 고통, 존엄하게 살 권리, YOLO,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고 거부할 수 없는 명제와 현실을 두고 안락사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고 개인적으로는 찬성의 의견을 제시하자 한다.   


○ 안락사의 정의

‘안락사’는 희랍어로 편안한 죽음(enthanatos)이라고도 하며 불치의 병에 걸려 죽음의 단계에 들어선 환자들의 지속적인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본인의 희망이나 가족 또는 다른 사람의 원함에 의해 환자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행위이다

 존엄사와 안락사는 어떤 의미이고 또 어떻게 다른가? 존엄사와 안락사 모두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며 세상을 마감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지만 의미 차이가 있다.
 안락사는 매우 폭넓은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안락사는 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불치 또는 말기 환자의 고통을 제거하거나 덜기 위해 인위적인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을 말한다. 안락사는 대개 환자의 생명 단축을 불러오는데 환자의 생명을 끊어 죽음을 앞당김으로써 고통을 해결해 주는 방식을 적극적 안락사라고 한다.

 ‘존엄사’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면서 죽을 수 있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환자가 회복이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처했을 때,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자연적인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환자의 자기결정권(또는 가족의 처분권)을 의사의 생명유지의무보다 더 중시하는 입장에서 나온 것이다.

○ 안락사의 분류

 안락사에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수단에 따라 따라 ‘적극적 안락사(active euthanasia)’와 ‘소극적 안락사 passive euthanasia’)로 나눌 수 있다. 적극적인 안락사는 약물 등을 사용하여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이고, 소극적인 안락사는 치료를 중단하여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을 일컫는다.

 ‘적극적 안락사(active euthanasia’)는 안락사를 수행하는 사람이 불치병의 환자나, 아주 심한 고통의 환자, 의식이 없는 환자의 삶을 단축시킬 것을 목적으로 치사량의 약물이나 독극물을 직접적으로 주사하여 환자를 죽음으로 이르게 하기 위하여 능동적으로 행하는 안락사의 한 형태이다. 
 ‘소극적 안락사(passive euthanasia)’는 환자가 겪고 있던 질병 등의 원인으로 인해, 질병에 대한 치료가 불가능한 과정에 들어섰을 때 안락사를 수행하는 사람이 죽음의 진행과정을 일시적으로 저지하거나, 연명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회복이 불가능한 과정에 들어섰을 때 이를 방치함으로써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경우이다. 적극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 사이의 차이점은 어떤 적극적인 행위에 의해서 생명을 끝내는 것과 연명치료를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생명을 끝내는 것의 구분이다.

 안락사는 생명체 본인의 동의 여부에 따라 안락사는 ‘자발적(자의적) 안락사(voluntary euthanas)’ 와 ‘비자발적 안락사(involuntary euthanasia)’로 나눌 수 있다.  자발적 안락사는 환자의 직접적인 동의가 있을 경우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이고, 비자발적 안락사는 환자의 직접적인 동의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요구 혹은 국가의 요구에 의해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여기에는 극한의 고통 등으로 부터의 해방되고 죽음을 선택하기 위해 치명적인 약물주입 등에 대하여 위해 본인의 적극적인 요구나 신청 등에 의해 이루어지는 ‘자발적(자의적) 안락사'와, 무뇌아, 다운증후군 신생아, 혼수상태, 지속적 식물인간, 중증의 치매, 정신장애 등을 겪고 있는 환자 등 생명주체인 본인이 의사표시 능력이 없거나 결정능력이 상실된 상태에서 가족이나 친권자의 동의하에 이루어지는 ‘임의적 안락사 (nonvoluntary euthanasia)‘, 그리고 환자나 생명체의 본인의 의사는 무시하고 주위 사람이 고통을 덜어 주거나 사형 등 필요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안락사를 시키는 ’타의적 안락사(involuntary euthanasia)‘등이 있다 

○ 안락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 및 법적 근거

 우리나라 헌법 제10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되어있다.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에는 ‘자기운명결정권’이 전제되어 있고, 자기운명결정권에는 환자가 자기의 생명과 신체의 기능을 어떻게 유지할지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그러나 적극적 안락사는 종교적이나 의학적 입장에서도 허용되지 않거니와, 법률적인 입장에서도 허용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환자의 "고통제거수단"으로 이를 행하였어도 이는 위법이며, 이러한 경우에 환자의 명시적인 청탁이나 촉탁이 있었다면 촉탁. 승낙에 의한 살인죄, 없었다면 일반살인죄가 성립하게 된다. 
 
 2008년 소위 ‘김 할머니 사건’은 내시경 검사를 받던 70대 중반 김모 할머니가 심장마비에 이은 뇌 손상으로 식물인간 상태가 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가족들은 호흡기를 제거해 달라고 병원에 요구했지만 병원은 이를 거절하자 가족들이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듬해 5월 대법원은 연명치료 중지 요청을 받아들였다. 이는 연명치료 중단을 인정한 첫 번째 판결이다.  대법원은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를 의학적으로 환자가 의식의 회복 가능성이 없고, 생명과 관련된 중요한 생체 기능의 상실을 회복할 수 없으며, 환자의 신체 상태에 비추어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이 명백한 경우로 정의했으며, 연명치료는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진료 행위로서, 원인이 되는 질병의 호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질병의 호전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에서 오로지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치료로 보았다.  

 이러한 대법원의 판결과 현실에서 환자와 가족들이 겪는 고통의 문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둘러 싼 법정 공방 및 사회적 논의를 더 이상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렵다는 판단 하에 대통령 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법적근거를 마련하고 그 일정한 기준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연명치료 중간에 대한 기준이 마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2011년 보건복지부에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2%가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이른바 안락사에 찬성한다고 답했고, 2016년 1월 8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안(웰다잉법)’도 국회의원 203명이 표결에 참여해 202명 찬성, 1명 기권의 압도적 지지 속에 통과됐다. 웰다잉법이 제정됐다는 소식에 의료계 및 환자의 가족들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끝낼 수 있게 됐다”고 환영했으나,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는 “본인의 결정이 아닌 가족이나 제3자의 대리 동의를 허용한 것은 환자의 생명권과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우려의 목소리도 내고 있다. 

 행복하게 살 권리 못지않게 고통 없이 품위 있게 죽을 권리도 중요하다. 안락사 및 존엄사와 같은 민감한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도 현실적인 문제로 자꾸 대두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제는 구체적 사회적 논의와 입법이 절실한 시점이다.


○ 안락사 찬성과 반대의 주장들

  1, 안락사 찬성 이유

  2011년 보건복지부가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대해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찬성한다’가 72.3%, ‘반대한다’는 27.7%로 찬성한다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2014년 보건복지부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인국의 88.9%가 연명치료에 반대, 2012년 서울대병원 조사결과 말기암 환자의 90%가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있어 국민의 대다수 그리고 환자 본인 역시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부정적인 시각을 나타내고 있다.

한편 2011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에 의하면 사망시점 기준 36개월 이전 월평균 진료비가 37만원인데 비하여 사망2개월 전에는 261만원, 사망 1개월 전에는 285만원으로 사망 직전 진료비가 7배 이상 증가하였고, 국내 암 진료비의 1/3 이상이 사망 1개월 전에 지출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환자의 연명치료 의사나 의학적 생존 가능성에 상관없이 무의미한 연명치료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치료가 아닌 단순히 죽음에 이르는 시간만을 연장시키는 치료일 경우,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고통 속에 있는 죽음의 과정이 환자의 품위를 지킬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의미이고, 무의미한 연명치료로 인한 국가 건강재정의 낭비와 환자 및 가족들의 경제적 고통을 더해 줄 뿐이라는 사실로서, 환자 본인의 선택 또는 환자가 이런 선택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환자의 뜻을 잘 아는 가족에 의한 대리 결정권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 찬성하는 사람들의 입장이다.

 안락사를 찬성하는 사람들의 이유로는 
 1)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권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결정하고, 결국 죽고 사는 문제도 자신의 삶의 영역이다. 삶에서 가장 추구해야 할 것은 행복이고, 행복하지 않은 길을 누구도 강요할 권리는 없다 

 2) 환자의 고통을 덜어준다. 삶의 질이 중요하다 고통 받는 환자의 삶은 죽음 보다 못할 수 있다. 치료가 불가능한 중환자의 경우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며 죽을 날을 기다리기보다 삶을 정리할 시간을 갖고 존엄하게 품위를 지키며 죽을 수 있어야 한다

 3) 무의미하게 의료행위에 쓰이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경제력은 우리 삶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치료가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생명만 유지하는데 모든 재산을 써버린다면 환자는 물론이고 가족까지 큰 경제적 위기에 빠질 수 있다. 꼭 돈 문제뿐만이 아니라 시간도 환자에게 투자하기 때문에 모두가 불행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4). 안락사가 인정되면 장기이식이 가능해져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다. 죽음에는 누구나 예외가 없다 다만 그 시기가 언제이냐는 문제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가치있게 품위있게 살아야 한다. 의학적으로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판정된 경우 제3자를 위해 장기를 기증하는 것도 가치있는 삶을 사는 길이다 

  5) 환자의 인권뿐만 아니라 가족의 인권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본인과 가족도 원하지 않는 연명치료를 제3자가 환자의 인권이나 생명의 가치를 논하는 것은 지극히 이론적이고 논리에 함몰된 비현실적 생각이다. 본인의 생명이 소중하듯 간병가족 모두의 인권과 행복도 소중하기 때문에 어느 한쪽으로 기울여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2. 안락사 반대 이유

  안락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꼽은 이유는 ‘생명은 존엄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없다’와 ‘생명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남용의 위험이 크다’,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할 것이다’ 등이다 

 안락사는 생명을 걸린 문제인 만큼 안락사의 문제를 쉽게 결정 할 경우 자살 방조 또는 살인 공모 등의 법률적인 문제를 만들 수 있고, 안락사 논의의 이면에는 결국 돈 문제와 연계되어 있어서 환자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는 연명치료 중단이 빈발할 가능성이 있어서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안락사를 반대하는 사람의 의견으로는  
  1) 생명은 절대적인 가치이고 인간의 생명은 신 이외에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다. 모든 생명의 생사는 신의 섭리와 자연의 이치에 맡겨야 한다. 태어나는 것도 자기가 결정하지 못하는데 죽는 것을 자기가 결정한다는 것이 모순이다. 생로병사의 자연적인 순리를 인간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   

  2) 안락사를 허용하면 생명 경시 풍조가 생겨 날 것이다. 안락사는 촉탁, 승낙에 의한 살인죄(형법252조1항)이다. 스스로의 목숨을 끊게 하는 것이야 말로 인간존엄성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안락사가 허용되었을 경우 이것을 악용이나 남용 등의 범죄들이 등장할 것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거나 돌보기 귀찮다는 이유로 안락사 시킬 수도 있고, 안락사로 위장한 살인 범죄도 발생할 것이다. 인간의 생명은 어떤 상태에 있든지 관계없이 그 자체로 무한한 가치가 있고 절대적 존엄성을 지닌 만큼 인간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어떠한 치료중지도 정당화될 수 없다.

  3) 경제적 문제 등 외부 판단만으로 생명 문제를 가늠할 수는 없다. 경제적 문제로 인한 생명 단축은 옳지 못하다 돈이 인간의 생명보다 중요할 수 없고,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생명에 대한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은 비인간적, 자본주의의 폐해이다.  또한 가족의 증언이나 판단, 의료진의 동의로 중단된 연명치료는 환자 본인의 실제 의사와 다를 수 있고, 안락사라는 선택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환자와 가족들에게는 안락사를 알게 모르게 강요당할 수 있다.

  4) 안락사를 환자의 가족이나 의사가 결정할 경우 생명의 자기결정권에 어긋난다. 안락사는 생명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안락사를 누가 결정하는지가 중요하다. 불의의 사고 등 의식불명 상태의 환자를 의사의 판단이나 가족들의 동의만으로 진행되는 것은 생명의 자기결정권에 어긋난다.

  5) 의사의 판단이 잘못될 수 있고 기적적으로 살아나는 경우가 있다. 4년간 식물인간 상태였던 유금옥씨가 남편의 보살핌으로 4년 만에 식물인간 상태에서 깨어났고, 영국에서는 무려 23년간이나 뇌사상태에 빠져 있던 환자가 의식을 회복 후 23년 동안 자신은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을 수 있었다고 한 사례도 있는 것처럼, 식물인간상태의 환자는 깨어날 가능성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안락사나 장기기증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의학적인 판단에 지나치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   

  6) 고통은 호스피스를 통해 줄일 수 있다. 호스피스는 전문 간병인들로 환자의 고통을 최소화하고 그들의 남은 시간을 편안히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할 수 있다.

○ 안락사에 대한 나의 개인적 의견

  당신은 죽음을 앞두고 있는 환자의 고통을 느껴 보았는가? 자신이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환자 자신의 심정과 견딜 수 없는 극심한 통증과 고통을 당신은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는가?  눈과 귀는 보고 들을 수 있는데 몸은 움직이지 못하고, 말도 할 수 없어서 자기를 표현도 할 수 없고, 자기결정도 못하는 환자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혼수상태 또는 인공호흡기에 의존하여 의식마저 없는 식물인간 환자는 고통마저 느낄 수 있을까?  

 그 고통을, 그 힘듦을 참을 수 없어서 “차라리 죽여 달라” 고 외치는 환자들의 목소리가 진심일까? 그냥 고통을 참을 수 없어서 해보는 “앓이” 일까? 
 지옥은 유황 불 못에 던져져 그 뜨거움과 고통 속에 허우적거리면서도 헤쳐 나올 수 도 없고, 죽으려고 해도 죽지도 못해 영원히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 곳이 바로 지옥이다.  
 
 의학적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 암 환자, 의식도 없어 자신의 삶을 판단할 수도 결정할 수도 없이 주사와 약물에 의지하여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의식불명 환자, 그 환자와 함께 많은 시간과 경제를 빼앗기고 불행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바로 ‘지옥’이 아닌가 싶다. 

삶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을 때, 그리고 행복할 때(행복할 수 있는 희망이 있을 때) 그 삶이 의미 있고 가치가 있고 살아갈 만 한 것이다. 

 삶이 힘들다는 이유로 자살하려는 사람들에게도 ‘삶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나머지 삶의 선택에 관한 본인의 뜻이 반영된다는 것은 ‘생명경시’가 아니라 오히려 ‘생명과 인권의 존중’이고 ‘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을 지키는 것이다. 인간이 극한의 고통 속에 있는데도 당사자도 아닌  ‘제3자’가 생명을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이론적, 종교적 논리에 함몰되어 그 생명을 고통 속에 방치하는 것이 ‘생명 존중’이 아니라 ‘생명 학대’이고, ‘죄악’이고 그것이 바로 ‘인간의 존엄성 훼손’하는 것이다  

 물론 안락사를 결정하는 상황에 있어 안락사(존엄사) 결정의 기준을 철저하게 판단해서 생명의 가치를 지키고 그 생명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의학적으로 환자가 의식과 생명과 관련된 중요한 생체 기능의 상실을 회복할 수 없으며, 환자의 신체 상태에 비추어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이 명백하다고 판명되고, 연명치료가 사망을 앞둔 환자의 질병의 호전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에서 그저 환자의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치료로 확인된다면, 안락사라는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힘들지만 현실적인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만일 당신이 말기 암 진단을 받아 의학적으로 더 이상 치료 할 수도 없고 하루하루 극심한 고통 속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환자라면, 의식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이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 투석기에 의지한 채 팔 다리에 주렁주렁 링거를 달고 혈압과 맥박을 체크하며 죽음만을 기다리는 환자라면, 그런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는 당신을 바라보며 직장과 가정도 팽개치고 매일 병원에서 간병하며 비싼 병원비에 힘겨워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당신은 어떤 결론을 내리겠는가?
  
 인간은 삶은 행복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삶이 가치가 있고 그것이 바로 우리는 살아가야할 이유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존엄하다. 그래서 인간은 존엄하게 살고 존엄하게 품위 있게 죽을 권리를 가지는 것이다  

 ‘안락사(존엄사)’ 힘들고도 어려운 결정이지만,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삶의 가치와 행복,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의미 있는 것이라 생각되기에 나는 안락사를 지지한다. 


○ 시사점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허용 여부는 그 자체를 두고 아무리 찬반을 논해도 사실 쉽게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 특히 윤리적인 문제를 들고 나오면 논쟁은 평행선을 달리게 되고 영원히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 거기다 이 논의를 종교나 철학 인간의 가치 등으로 확대해 나가면 더욱 더 어려워진다. 그래서 과학적으로 의학적으로 어떤 경우가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해당하는 것인가와 환자와 가족이 겪는 고통문제 등 보다 현실적인 부분에 논의의 초점이 맞추어서 안락사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2009년 정부가 범사회적 합의체를 구성해 토론한 끝에 연명치료 기준에 대한 합의사항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것은 본인이 사전에 의향서를 작성하는 것을 전제로 인공호흡기나 심폐소생술 등 특수한 연명치료만 중단할 수 있고, 영양공급 체온 유지 등을 통해 생명을 이어가는 일반 연명치료는 함부로 중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기준 역시 실제 사례에 적용하는데 한계가 있고 법적 강제력이 없어 확고한 기준으로 자리 잡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구체적. 사례적 접근을 언제까지 피할 수만은 없고, 평균 수명의 연장으로 앞으로 이런 논의는 점점 더 많아질 것이 분명하다. 이미 많은 국가에서 소극적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고, 네덜란드, 벨기에, 캐나다 등 적극적 안락사와 조력자살도 허용하는 국가들도 있다. 따라서 우리도 당장 결론은 나지 않더라도 안락사에 대한 하나하나 구체적 허용 기준을 만드는 노력은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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