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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큐슈 기차여행기(2차-8편) : 난공불락 구마모토 성

뚜벅뚜벅 인생여행 (자유 여행기)

by 유초선생 2025. 7. 9.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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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20(일)

역사속에서 우리는 겸허해진다. 
세월을 이기는 것은 없다. 권력도, 부귀와 영화도, 철옹성도 언젠간 무너진다.
그런 흔적앞에 사람들은 잠시 겸허해 지지만, 그 기억은 아이스크림의 달콤함 보다 오래가지 못한다. 
오늘은 일본 3대 성 중의 하나인 구마모토성을 둘러볼 예정이다.    

호텔 근처에 구마모토성이 있고, 9시부터 입장하기 때문에 아침은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오늘 조식은 호텔 조식이다. 호텔예약 시 조식을 포함하면 1만 원 정도 더 비싸지만, 조식 미포함으로 예약해도 프론트에서 900엔에 식권을 바로 구매할 수 있다.

원래 오늘 아침은 시모도리 상가 내 간진쇼쿠도에서 먹으려 했는데 어젯밤 그 식당이 보이지 않아 그냥 호텔에서 먹기로 한 것이다.  
구마모토 그린호텔 레스토랑은 일반인도 이용가능한 식당인 것 같은데 식사하는 사람은 세 사람 뿐이다. 식사는 뷔페식이 아니라 1인상 연어구이 정식으로 나오는데, 깔끔하고 간단해서 좋고, 커피한잔까지 곁들이니 이만하면 최고다. 
 
일단 체크아웃을 하고, 배낭은 프론트에 맡기고 구마모토성으로 간다. 
밤새 비가 왔는지 땅이 젖어있다. 어젯밤 노면전차 내려 호텔을 찾는데 애를 먹었는데, 아침에 보니 호텔 옆이 바로 트램 정류장이고, 한 블록쯤 뒤가 바로 구마모토성이었다. 

성 입구의 둥그런 건물이 시민회관 시어즈홀, 유메홀이고 다리를 건너면 성이다. 성 앞으로 흐르는 쓰보이강은 강이라기보다 수로에 가깝고, 당시에는 이 강 자체가 한쪽면의 해자역할도 했을 것도 같은데 오사카성의 인공해자보다 넓지도 깊지도 않다. 강 너머 석축위에 쌓은 242m나 되는 긴 담장(나가베이)은 국가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구마모토성은 오사카성, 나고야성과 함께 일본의 3대성의 하나인데, 다리 입구에 구마모토성을 건축한 가토키요마사(加藤淸正) 동상이 세워져 있다. 

가토키요마사(가등청정.加藤淸正)는 구마모토성의 다이묘(봉건영주)이자 임진왜란 때 선봉으로 조선을 침략한 왜군의 장수로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이다. 조선을 침략 후 함경도를 넘어 만주까지 진출하였지만 함경도에서는 의병장 정문부에게 패전하고 혹한의 추위와 식량문제 및 명군의 참전으로 철수하였다. 화왕산성 전투에서도 의령의 홍의장군 곽재우에 패한 가등청정은 울산왜성을 쌓고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버텼다. 먹을 것과 물도 없어 동료의 시체를 뜯어먹고 말을 죽여 피를 마시며 처절하게 버티다가 원군이 도착한 후 이순신을 피해 겨우 일본으로 도망했다. 가토키요마사는 울산왜성 서생포왜성의 축성을 경험으로 축성술의 대가가 되었으며, 일본으로 도주할 때 울산에서 끌고 간 수많은 포로들은 구마모토성 축성에도 동원되었다. 울산왜성 트라우마로 인해 구마모토성에는 우물을 120개나 파 놓았다고 한다. 

다리를 건너자 큰 나무숲 사이사이로 성벽들이 먼저 보인다. 일단 눈에 들어오는 성의 규모가 상당히 커 보이고, 곳곳에 성벽이 무너진 곳이 많이 보이는데, 보수하지 않고 그냥 콘크리트 메워놓은 것이 보기 흉하다.

사쿠라바바 조사이엔 / 관광상가

개장 시간은 멀었고 구마모토 성 옆 사쿠라노바바 조사이엔 부터 둘러본다. 사쿠라노코지(사쿠라 골목)는 옛 성하마을을 재현했다고는 하지만, 당시의 모습은 없고, 지금은 기념품점과 식당 등이 있는 관광단지 상가다.  

구마모토성 입장시간이 되어가니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여기도 중국어를 쓰는 단체관광객들이 많았는데 모두 사쿠라노바바부터 들렀다 성으로 올라갈 모양이다. 방금 아침을 먹은 터라 둘러만 보고 바로 상가 뒷쪽을 통해 남문 매표소 쪽으로 올라간다. 저 멀리 뭉게구름처럼 핀 녹음의 더미위에 고개를 내민 구마모토성의 자태가 웅장하고 아름답다. 입장료는 800엔, 천수각 입장료는 천수각에서 별도로 내야한다. 

구마모토성 남문출입구

남문 출입구에서 천수각이 있는 곳 까지 올라가는 특별견학통로는 철제 교량으로 되어 있다. 안내판을 보니 ‘석단(石壇, 석축)과 호구(虎口)를 넘는 약50m 스판(경간)의 아치구조’라고 써져있다. 높은 곳 혹은 가까이서 성과 호구를 한눈에 관람할 수 있어 좋은데, 이 특별견학통로는 지진으로 무너진 성벽등을 복구할때 까지 임시로 설치한 것이고 2038년 복구가 완료되면 철거할 예정이다.  

다리위에 오르니 성의 바깥쪽으로는 거대한 나무들이 서 있고, 성안 쪽으로는 가파른 성벽과 해자같은 호구가 가히 난공불락의 요새임에 보여주고 있다. 오사카성은 거의 평지에 있기 때문에 깊은 해자를 파서 성을 방어하였고, 고쿠라 성은 해자와 강, 가라쓰성은 바다를 낀 산위에 있어 자연 방어가 될 수 있었다. 
반면, 구마모토성은 야트막한 언덕위에 위치하여 해자는 팔수는 없었고, 대신 성 전체구역에 단차를 두고 2중, 3중으로 성벽을 쌓아 올렸다. 특히 성으로 진입하는 길은 해자처럼 깊이 파져있어, 그 길에 들어서는 즉시 독안의 쥐, 호랑이 입으로 들어오는 것이라 호구(虎口)라고 한 것 같다.

성을 공격하기 위해 과연 이곳을 지나갈 수 있을까? 난공불락, 호구(虎口)다.

일본에는 성(城)이 많고 대부분의 지역에 성(城)이 있다. 과거 일본의 정치체제는 막부체제였는데, 중앙정부인 막부가 있고 지방정부인 번(藩)이 있다. 번(藩)은 영주(다이묘)가 다스리던 영지다. 1467년 천왕의 권위가 추락하자 영주들 간의 전쟁이 심해지고, 지방의 호족들이  다이묘(영주)나 쇼군(군사령관)이 되겠다고 배신과 하극상을 벌이며 150년간 전쟁이 끊이지 않은 것이 센코구(전국)시대(1467~1615)다. 이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지역의 지배자가 바뀌고, 잘나가던 가문이 몰락하고, 난세가 늘 그렇듯 기름장수, 병졸, 농민 등 등 미천한 출신들이 급작스럽게 출세한 시대이기도 하다. 이 전국시대에 각지의 영주들이 자신의 영지를 방어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성(城)을 쌓기 시작했고, 전국에 걸쳐 3000여 채의 성이 건축될 정도로 성(城)의 전성기였다. 일본의 대규모 축성시기가 임진왜란, 정유재란시기와 겹쳐, 일본성에는 항상 조선의 침략과 관련된 인물이나 역사가 서려있다.  

하지만 이 견고한 성도 세월을 이기지 못하여 무너져 내리고, 추가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철망을 씌워둔 곳이 많다. 안타까운 것은 2016년 구마모토 지진으로 성채의 약 1/3이 훼손되고, 10%는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고 한다. 지금도 일부 건물을 받치고 있는 축대부분이 무너져 건물이 붕 떠 있고, 건물 벽에는 금이 가고, 지붕 처마선 마저 휜 것이 보이는데, 또 지진이라도 생기면 완전히  붕괴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안타깝다.

구마모토성 석축의 특징은 아래는 완만해서 쉽게 오를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몸이 뒤로 젖혀져 올라갈 수가 없는 구조다. 그래서 일본의 닌자 같은 날쌘 무사도 오를 수 없다하여 이런 구조를 무샤가에시(武者返し)라고 부른다. 

과연 겹겹이 이중삼중으로 쌓아올린 견고하고 높은 석축은 난공불락의 위용을 뽐내고 있고, 아직 상태를 보존하고 있는 석축들은 마추픽추처럼 맞춤들이 정교하다. 
세월의 이끼를 안은 그 돌들은 알고 있으리라, 구마모토성 400년의 흥망성쇠를, 인생도 부귀영화도 무상함을 ... 

구마모토성은 규모가 커서 10개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메인인 천수각 구역으로 들어가려면 혼마루고텐(어전) 건물아래 지하통로인 '구라가리 통로(闇以通路)를 지나가야 한다. 이 터널로 된 통로는 좌우는 석축으로 쌓여있고, 통로의 천정에는 굵은 들보들이 건물을 받치고 있다. 다른 성에서 보지 못한 구조다.    

구라가리 통로 입구 / 앞에 보이는 것은 우물이다

이 통로를 지나면 천수각 광장이고 산 정상 평지에 우뚝 솟은 천수각이 보인다. 광장 한쪽에 커다란 은행나무가 서 있다.  

구마모토성은 1607년 가토기요마사에 의해 축성되었다가, 1877년 세이난 전쟁 직전 화재로 천수각과 혼마루고텐 일대가 소실되었고, 1960년에 대천수각과 소천수각은 철근 콘크리트로 외관이 복원되어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다. 
천수각 앞 광장에는 어른 서너 명이 안아야 할 정도의 큰 은행나무가 있는데 축성 당시 가토 기요마사가 손수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의 은행나무는 1877년 화재 때 같이 불탔다가 다시 새싹이 자라난 것이라고 한다. 가토기요사마가 축성할 당시 장기간 식량을 확보할 목적으로 성안에 은행을 많이 심었는데 그래서 구마모토성은 은행성」으로 불리기도 한다. 

나지막한 산 정상의 평지, 하늘아래 우뚝 솟은 구마모토성은 웅장하면서도 깔끔하고 세련되었다. 광장에는 칼을 메고 갑옷을 입은 일본 무사 3명이 관광객의 사진촬영에 응해주고 있다. 

오사카성과 고쿠라성 등의 천수각은 다 올라가 봤고 내용은 비슷비슷하다. 이곳 역시 콘크리트로 신축한 건물이라 천수각 입구만 둘러보고, 서문 쪽으로 내려온다. 천수각 아래쪽에서 보는 천수각은 석축위에 떡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이 더 웅장해 보인다. 

천수각 아래쪽엔 높은 철골 벽체를 두르고, 그 안에서 성벽 망루격인 우토야구라(宇土櫓)와 성벽을 보수하고 있었는데 그 공사 규모가 대단하다. 우토야구라는 원래의 천수각을 뜯어 이곳에 다시 옮겨 지은 것으로, 17세기 초 일본 성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몇 안 되는 건물이라 한다. 특히 이곳 우토망루 성벽 아래는 성을 출입하는 통로인 것 같은데 그 깊이가 깊고 성벽이 높아 아무리 강한 적이라도 감히 접근을 엄두도 못 낼 난공불락의 성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저곳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과 축대가 너무 많아 안타깝기도 하지만, 축대, 성벽 돌 하나하나에도 번호를 매겨 원형을 복원하려는 모습에서 역사 보존의 의지와 정밀성이 느껴진다.

복원중인 우토마구라와 성벽
아래 통로에서 성벽의 높이가 어머어마하게 높아 보인다 .
가토신사

성 아래쪽 가토신사에 들러본다. 가토신사는 가토키요마사를 주신으로 모신 신사인데 1962년 콘크리트로 지어져 오래된 신사에서 느끼는 역사의 향기나 엄숙함 같은 것은 없고, 경내 역시 공원 같은 느낌이다. 다만, 이곳에서는 언덕위에 우뚝 솟은 구마모토성 대천수와 소천수, 및 우토야구라까지 구마모토성 주요 건물의 전체 위용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가토신사에서 바라본 천수각 / 오른쪽 철골 건물 안에서 우토야구라 복원작업이 진행중에 있다.

 

가토신사를 돌아 나오는 길 따라 긴 석축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어 당시 구마모토성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은 석축위에 건물은 없지만 축대의 일부는 부서지고 일부는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모습에서 마추픽추의 폐허를 보는 것 같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세월이 흐르면 사람도, 사람이 만든 위대한 것도 무너지는 법이다.   

복구가 완료된 후의 천수각 일원 (뒷족 높은 건물 대천수, 왼쪽 소천수, 앞쪽 복구중인 우토야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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