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호기심이 많고, 방랑벽도 있어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을 좋아한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유랑해야 하는 운명을 가진 역마살(驛馬煞)까지는 아니어도, 늘 돌아다니고 싶어 하는 방랑벽(放浪癖)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집에 붙어 있는 것 보다, 시간이 생기면 차를 몰고 아무 곳으로나 훌쩍 떠나는 것을 좋아한다. 집 밖으로 나가면 모든게 신기해보이고, 눈이 반짝거리고, 생기가 돈다.
한편, 그 반대로 조용히 책을 읽고 글 쓰는 것도 좋아하고, 무슨 일이든 한번 몰입하면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린다.
지식이든 뭐든 모르는 것은 알고 싶어하는 호기심(好奇心)이 많아서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외국어를 배우고, 여행하고, 늘 새로운 것을 찾다 보면 늙을 시간이 없다.
그래서인지 내 나이 환갑을 훌쩍 넘었지만 난 아직 꿈을 꾸는 '좀 오래된 소년'이다. 꿈을 꿀때는 '어린 소년'처럼 설렌다.
이런 습성들은 나의 여행 특성에서도 잘 나타나, 구속되는 것을 싫어하고, 모험적인 것을 좋아하고, 많이 돌아다닌다.
짧은 기간 내 많은 것을 경험하려다 보니 바쁘게 돌아다녔고, 그때그때의 느낌들을 여행노트에 적으려다 보니 마음도 바빴다.
일본 기차여행 때는 하루의 절반 이상을 기차를 탔고, 초밥여행 때는 하루종일 걸었다.
물론 여행의 테마를 정해 떠났기 때문에 그 목적에는 부합하였고, 여행을 통해 글감을 얻기도 했지만, 거기엔 '쉼'이 없었고, 여유로움도 없었다.
휴가는 일에서 벗어나 쉼으로 가는 것이고,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움으로 떠나는 것이다.
모두 지루함, 무거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신남과 가벼움과 자유를 추구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짧은 기간 내 많은 것을 하려다 보면, 그것은 휴가나 여행이 아니라 목적을 위한 숙제가 되어버린다.
가벼운 마음으로 새롭게 충전하려 했던 여행이 오히려 힘든 여행이 된다.
한국인들의 단체 해외관광은 더 그렇다.
“1시간 후에 이곳에서 다시 집결하세요.” 가이드의 깃발 따라 유명관광지를 바쁘게 돌아다니다 보니 자세히 둘러볼 수도, 현지의 문화를 깊이 체험할 시간도 없다. 하물며 길거리 음식하나 사먹지 못하고 그저 사진 몇 장 찍고는 '그곳에 가봤다'는 이야깃거리를 남기는 것이 전부다.
그래서 나는 단체여행보다 혼자 떠나는 여행을 좋아하는데, 나 역시 어디도 가봐야 하고, 여행노트도 적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다 보니 바쁨에 쫓기는 건 마찬가지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3주정도 휴가여행을 갔다 오면 지능지수가 3%정도 낮아서 돌아온다'고 한다. 낯선 세계로의 떠나는 여행은 매혹적이라는 광고와 인식에 현혹되어 불필요한 물건을 사는 등 흥청망청 소비한것에 대한 후회와, 많이 돌아다녀 몸도 마음도 녹초가 된 결과다.
사실 과거에는 지금과 같은 여행이란 말 자체도 없었다. 멀리 떠나는 것, 특히 빨리 빨리 여행은 파발꾼, 순례자, 상인, 범죄자들이 하는 것이었다.
바닷가 모래위에서 썬텐을 즐기고, 나무그늘아래 느긋하게 책을 읽는 외국 여행객들을 보면, 그들이야 말로 목적 있는 여행을 하고, 제대로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나도 지금껏 파발꾼같은 여행을 했다. 물론 많은 경험을 했고, 글감도 얻고, 매 여행마다 에피소드가 있어 스릴도 있었지만, 아쉬운 것은 거기 쉼이 없었고, 여행지의 깊은 곳을 들여다 보지도 못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이런 '돌아다니기식 여행'에서 '한곳에 오래 머무는 여행’, ‘음미하는 여행’, ‘스며드는 여행’, 으로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은퇴 후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진다면 당연히 그래야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지금의 여행 스타일은 바꿀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자연과 어우러진 작은 산촌.어촌마을에 오래 머물면서 그곳의 잔잔한 일상들을 같이 느껴보고 싶다. 토속음식의 맛을 천천히 즐겨보고, 낯선 곳의 햇살과 바람도 즐기고 싶다. 도심의 화려한 불빛과 취기에 같이 흔들릴 것이 아니라, 소박하고 정겨운 마을, 질서와 무질서가 조화를 이루는 예쁜 마을, 그곳 특유의 냄새를 풍기는 마을에서 쉬며 거기 스며들고 싶다. 동네 어른들과 대화도 나눠보고 선술집에서 맥주라도 한잔 나누며 그들의 삶과 사람 사는 이야기도 같이 나눠보고 싶다.
숲이 빽빽하면 하늘도 별도 볼 수 없고, 빡빡한 삶은 숨이 차다.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함을 느끼고, 쉼을 통해 새로움으로 충전해야 하는 여행에서, 목적과 시간에 목표에 구속받으면 그건 여행이 아니라 고행이다.
크루즈는 예약할 수 있어도 행복은 예약할 수 없다.
부산사람이 용두산 타워에 오르지 않듯이 파리사람들도 에펠탑에 오르지 않는다.
남들이 하는 끌려가는 여행이 아니라, 찬찬히 스며드는 여행
와비(侘)정신을 통해 비움의 아름다움과 느림을 미학을 즐기고 오는 것도 여행을 특별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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