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벳푸에 들렀다가 큐슈 횡단특급을 타고 아소를 거쳐 구마모토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07:00 아침 일찍 호텔 조식을 먹고, 08:00 호텔을 나와 고쿠라행 전철을 탔다. 시모노세키에서 큐슈 어디를 가려해도 일단 고쿠라역까지 와야 한다. 어제는 레일패스를 교환하지 않은 상태라 돈을 주고 탔지만 오늘은 레일패스로 승차한다.
고쿠라역에 도착 후 북쪽 출구에 있는 은하철도 999(원작: 긴카테츠도 스리나인) 주인공들을 만나러 간다. 철이와 메텔, 차장의 동상과 캐릭터다.
은하철도 999는 1982년 TV에서 방영되어 온 국민을 TV앞에 모이게 한 만화영화다. 이들 주인공의 동상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이 만화를 창작한 만화가 마쓰모토 레이지(松本零士)의 고향이 기타큐슈이기 때문이다.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 우주 정거장엔 햇빛이 쏟아지네
행복 찾는 나그네의 눈동자는 불타오르고, 엄마 잃은 소년의 가슴엔 그리움이 솟아오르네
힘차게 달려라 은하철도 999, 힘차게 달려라 은하철도 999, 은하철도 999”
지금은 외국어는 외워도 외워도 또 가먹는데, 40~50년도 이전의 '은하철도 999'나 어릴적 불렀던 '마루치 아라치' 같은 노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교육은 어릴때 제대로 시켜야하는게 맞는 것 같다.
하늘을 나는 기차, 꿈을 싣고 달리는 기차, 나는 기차여행자.
고쿠라역 건물 중간 뻥 뚫린 공간에서 전차가 툭 튀어나와 고가 철로위로 달리는 모습은 하늘을 나는 은하철도 999를 닮았고, 전차외벽에 은하철도 999 캐릭터가 래핑되어 있어 동심을 자극한다.
고쿠라역 승차홈에 우동판매점이 있다. 50년 전 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서울 갈 때는 청량리행 야간열차를 탔다. 추운겨울 밤12시 넘어 영주역에 도착하면 열차는 치~익, 치~익 하며 하얀 스팀을 내뿜었고, 호객하는 사람이 “맛있는 가락국수 있습니다”라고 외치면, 플랫폼 가락국수 코너로 달려가 따끈한 가락국수 한 그릇에 허기와 추위를 달랬던 그 가락국수다.
이제 소닉특급을 타고 벳푸로 간다. 고쿠라에서 벳푸로 가는 길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간다. 동쪽은 바다풍경이 펼쳐지는데 이 구간의 풍경은 여러 번 봤기도 하고 아침 햇살이 들어오기 때문에 반대쪽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신발을 벗고 가벼운 베 슬리퍼가 갈아 신는다. 비행기를 타거나 장시간 여행할 때 베로된 슬리퍼로 갈아 신으면 발이 엄청 편하다. 내겐 여행의 선택 아이템이 아니라 필수다.
9시 30분이 넘었는데 아침 안개가 자욱하다. 멍하니 바라보는 풍경, 이때가 나를 만나고 나와 대화하는 시간이다.
큐슈 철도노선을 표시한 지도와 여행노트를 펴고 순간순간의 느낌들을 정리해 둔다.
벳푸역에 내려 먼저 오이타로 가는 기차시간을 확인하고 관광안내소에 가서 지도부터 챙겼다.
자유여행에서 그 지역 관광지도는 필수다.
벳푸역은 역 앞쪽과 뒤쪽 모두 비슷해 어디가 역 앞인지 뒤인지 모르겠다.
벳푸 지옥온천행 버스를 탄다. 나는 혹시 내릴 곳을 모르거나 지나칠까봐 주로 운전석 근처에 앉는다. 버스요금은 390엔, 13분정도면 도착한다.
벳푸는 일본 최대의 온천도시로 시내 전역에 온천이 산재해 있다. 특히 간나와 지역에는 지옥순례라고 하는 7개의 지옥온천이 있는데, 시라이케(하얀연못), 오니야마(귀산), 가마도(가마솥), 오니이시보즈(스님 대머리), 우미(바다), 지노이케(피연못), 다쓰마키(용오름)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뜨거운 물이 펄펄 끓는다 하여 지옥이란 이름을 붙여둔 모양이다. 간나와지역에 도착하자 이곳 저곳에서 하얀 증기가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우미지옥 버스정류장에 내린 후 벳푸역행 버스시간표 사진을 찍어둔다. 오늘 여행의 메인인 아소보이를 타기 위해서는 오이타에서 13:46분 출발하는 호히라인 열차를 타야하기 때문에 모든 일정은 이 시간에 맞춰서 조정해야 한다.
가마도 지옥은 이전에 가봤고 이번엔 우미(바다)지옥에 가보기로 했다. 우미지옥은 7개 지옥온천 중에서 가장 크고,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11시도 안되었는데 벌써 관광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7개 지옥온천을 다 볼 수 있는 공통관람권은 2,400엔이고, 한곳 만 입장하면 500엔이다.
우미지옥 문을 들어서자 입구에 98도의 온천수증기로 계란 등을 삶는 찜통들이 하얀 증기를 내뿜고 있고, 도깨비 방망이를 든 사람이 관광객을 위해 사진촬영에 응해준다. 하얀 증기가 쉴새없이 피어나는 곳이 우미지옥인가 보다.
가는길의 작은 수련연못엔 열대성 수련이 곱게 피어있고, 큰 수련연못은 거울처럼 산을 그대로 비춰 담고는 자신도 초록에 물들어 잠들어 있다. 연못 중간 중간에 떠 있는 푸른 잎은 나중에 커다란 대야처럼 자랄 '큰 가시연꽃'(빅토리아 수련, 대귀련, 大鬼蓮)으로 큰 것은 지름이 3m까지 자라는 것도 있고, 아이들이 그 위에 누워도 될 정도로 크다.
온천입구의 기념품 상가를 지나면 바로 우미지옥이다. 우선 코발트블루의 바다색 연못에서 흰 연기가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모습은 장관이고 신비하다. 어떻게 온천수가 푸른 바다색을 띄는가는 모르겠지만 하얀 수증기는 초록의 숲과 대비되어 더 하얗다.
땅속 용암이 바다지옥 가장자리 바위틈 숨구멍을 통해 한숨 쉬듯 증기를 내뿜으면 수증기는 바람에 일렁이며 잠시 길과 카메라 앵글을 가렸다가 다시 숲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사라진다.
초록의 숲, 그 산을 품은 초록의 호수, 코발트블루의 지옥 연못, 하얀 연기, 빨간 색 도리이, 고개를 높이 들면 다시 파란하늘. 부담스럽지 않은 색의 조화에 마음이 편해지고 눈이 맑아진다.
온천 뒤 숲길에 빨간색 도리이가 서있는 언덕길을 몇 발짝 오르면 조그만 신사가 있다.
신사라고 하지만 기도처 하나뿐이다. 외국인들도 차례를 기다렸다 기도를 하고 나오는 걸 보니 이 분들 여행을 제대로 하는 것 같다.
기념품 상가 2층은 역사 전시관으로 되어 있다. 간나와 온천의 발견과 개발부터, 일본천왕이 다녀간 사진 등이 전시되어있다. 우미지옥은 1910년부터 관광이용이 시작되었다고 하니 115년 전부터 온천지로 개발되었고, 큰 가시연꽃 위에 사람이 앉은 사진도 전시되어 있다. 이 빅토리아 수련을 검색하니 1837년 영국에서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고 하니 일본 토종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면 당시 국제 교역을 통해 들어온 외래종인가?
옆길로 가니 붉은 연못이라는 온천이 또 있다. 바다지옥은 코발트블루였는데 붉은 연못은 짙은 황토색이고 이곳에서도 수증기는 힘차게 솟아오르고 땅속 지열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그 옆 유리온실엔 연꽃, 바나나, 분재 등이 심어져 있다.
온천, 연못, 키 큰 야자수 나무, 갖가지 꽃, 우미지옥은 경내 자체가 하나의 공원이다.
족탕에 들러 잠시 발의 피로를 풀기로 했다. 아~ 따뜻하다. 눈을 감으니 따뜻함과 행복함이 밀려온다. 10분정도 족욕을 하고 나니 몸까지 개운하다. 히타와 아마가세에서도 길가에 족탕이 있어 족욕을 즐겼는데 이것 또한 일본 온천지 여행의 재미다.
관광을 마치고 벳푸역으로 다시 돌아간다.
버스기사는 승객들이 승차하고 차가 출발할 때는 항상 “우고키마스(출발합니다)”라고 안내방송을 한다. 날씨도 더운데 제모를 쓰고, 긴팔 와이셔츠를 입고 운전에 불편하지 않도록 팔뚝엔 고무밴드를 맸다. 주행도 하차도 서두르지 않는다. 나는 이런 직업정신, 서비스자세를 존경한다. 한국 같으면 인권침해니, 시대에 뒤떨어졌느니 하며 난리가 날 일이다.
벳푸역에서 점심을 먹어도 되지만,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으니 오이타(大分)에 가서 여유있게 점심을 먹기로 했다. 바로 오이타행 하얀색 카모메에 올랐다. 레일패스는 승차권을 발권할 필요없이 바로 승차할 수 있으니 너무 편리하다.
오이타, 큰 도시인만큼, 역사도 크고, 그 안에 시장, 기념품가게, 식당도 많다.
우선 역무원에게 아소행 열차시간표를 확인해 놓기 위해 매표소 쪽으로 갔더니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그래서 옆문 쪽에 서 있는 역무원에게 시간을 물었더니 직통열차와 환승열차 2가지 출력해서 주며, 분고타케타, 마야지에서 환승해야 하며, 환승시간이 2분밖에 없으니 바로 갈아타라는 설명까지 해 준다. 입이 닳도록 말하지만 일본은 참 친절하고 정확한 나라다.
이미 점심시간은 지났고, 30분 이상 여유도 있어 일단 점심부터 해결해야겠다. 배는 안 고픈데 어제 술 때문인지 속이 좀 쓰리다. 분위기도 좋고 술도 맛있다 보니 무리를 한 것 같다.
그래, 속도 풀 겸 우동을 먹자. 우동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간단한 음식이다. 후쿠오카 나카스에 가면 ‘WEST’라는 우동집이 있는데 하루에 한번 씩 먹을 때도 있다. 우동에 들어가는 튀김가루 ‘텐카스’를 듬뿍 넣은 우동과 국물은 속까지 시원하다.
대기줄에 기다리면서 주방안을 다 볼 수 있는데, 조리사가 우동을 삶아내는 모습만 보더라도 맛있어 보인다.
이곳 우동 역시 면이 굵고 매끈하여 목에 잘 넘어간다. 국물까지 다 비우니 속이 좀 풀리는 것 같다. 보통 우동을 먹으면서도 생맥한잔을 하는 것이 기본인데 오늘은 참는다.
제대로 된 기차여행을 하기 위해 기차 안에서 먹을 에끼벤을 산다. 여기도 하카타역처럼 선택이 고민스러울 정도로 먹음직스런 도시락이 많다. 느끼한 것 보다 짭조름한 게 좋을 것 같아 명란도시락을 샀다. 이제 13:36분 분고타케타행 기차를 타면 된다.
(2차-6편에 계속)
북큐슈 기차여행기(2차-7편) : 구마모토의 밤 (3) | 2025.06.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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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큐슈 기차여행기(2차-6편) : 큐슈횡단철도 (1) | 2025.05.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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