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양 상동역 앞에서 깔끔한 다슬기국으로 점심을 먹은 후 유천문화마을로 간다.
이곳은 청도 운문댐, 청도 풍각면, 청도읍, 밀양시로 가는 분기점으로, 그동안 수십 번 지나 다녔고, 유천마을 강가에서 조약돌을 줍기도 했었는데, 이곳에 문화마을이 있다는 것은 전혀 몰랐다.
최근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되어 잠깐 둘러보기로 했지만, 여행을 좋아한다 하면서 가까운 곳에 이런 문화마을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는 사실이 부끄러웠고, 유천마을에 대해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상동역에서 청도쪽으로 가다 첫 다리를 건너면 바로 유천마을이다.
유천마을은 청도천과 동창천이 합류하는 두물머리로, 청도천 쪽의 유호리와 동창천쪽의 내호리 두 마을이 하나로 붙어있고, 이곳에 ‘유천문화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유천문화마을은 마을을 가로지르는 600m 남짓한 한줄기 도로를 중심으로 1970~80년대 풍의 노포들과 그 시절의 풍물등을 그린 벽화들이 그려져 있는데, 7080세대라면 누구나 추억을 떠올릴 레트로 감성 가득한 마을이다.
마을에 들어서니 태극기가 펄럭여 오늘이 무슨 국경일인가 했는데, 날짜를 보니 국경일은 아니고 문화마을이라 상시로 태극기를 게양해 두는 것 같다.
마을 뒤쪽 청도읍사무소 유호출장소 옆 유천문화마을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서 둘러보기로 한다.
주차장 앞쪽에 유천역과 역 앞에 서있는 역무원 조형물이 있다.

지금 유천마을에는 유천역이란 폐역도 없다. 다만, 기록을 보면 1906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었을 시 유천마을 강 건너인 밀양시 상동면 옥산리에서 ‘유천역(楡川驛)’이란 간이역이 있었으나, 1935년 경부선 복선화로 선로가 이설되고, 1945년 상동면 금산리에 지금의 상동역이 지어지면서 행정구역에 따라 상동역으로 역명이 바뀌고, 유천역이란 이름은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골목길을 들어서면 바로 좌우로 어릴 적에 많이 봤던 대포집, 사진관, 양장점, 만물상회 등의 점빵 들과 소달구지 벽화가 그려져 있어 이곳이 문화마을임을 알려준다.
‘그래 그땐 그랬지’ .... 7080세대라면 누구나 추억을 떠올리게 되는 풍경들이다.
이어서 길 양쪽으로 단층짜리 약방, 다방, 음악다방, 철공소, 슈퍼, 머리하는 집, 잡화상, 식당 등이 늘어서 있다.
실제 영업을 하는 집도 있고, 중앙소리사, 양조장 처럼 간판은 달려있지만 실제 영업은 하지 않고 당시의 모습만 전시 해 둔 곳도 있다. 영신 정미소는 1941년 지어졌다고 하는데 아직도 먼지를 뒤집어 쓴 채 현역으로 일하고 있다.







메인은 역시 옛날 유천극장이다. 1967년 건축된 이 영화관은 당시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중심가고, 청춘남녀의 러브스토리도 많이 만들어 줬을 그런 영화관이었을 것이다.
영화관 간판에는 임예진, 이덕화가 주연한 하이틴 영화. ‘진짜 진짜 잊지마’, 김지미 주연의 ‘별아 내 가슴에’등의 영화제목과, 그림이 그려져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오늘도 영사기를 돌려 영화를 상영한다고 한다.
내가 어릴 적엔 신작로 시장터에 가끔 가설극장이 들어섰다. 극장직원들이 시골 부락부락마다 영화포스터를 붙이고 “오늘 저녁에 상영할 영화는 ... 라고 마이크로 외치고 다녔고, 어린이들은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가설극장 천막 밑으로 숨어 들어가다 들켜 얻어맞기도 했다.
초등학교 때는코스모스 핀 비포장 신작로를 걸어, 10리 나 떨어진 읍내에 ‘저 하늘에도 슬픔이’, ’엄마 없는 하늘아래’ 같은 단체영화를 보러갔다. 그때의 영화관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이곳 그리 크지 않는 유천마을에 영화관이 있다는 건, 당시 유천이 밀양과 청도의 접경지에 제법 큰 마을이었던 것 같다.
레트로 감성을 살려 시대를 재현한 마을이 전국 여러 곳에 있긴 한데 거의 영화세트장이다. 합천 영상테마파크 역시 1920년대~1980년대를 배경으로 조성한 영화 세트장인데 모든 건물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건물인데 비하여, 유천문화마을은 규모는 작지만 실제 사람이 사는 거리다. 지금은 노포들과 중간 중간 현대식 건물이 섞여 있지만 레트로 감성을 느끼며 커피도 한잔 하며 즐길 수 있는 공간도 있다. .
추억이 인간의 본성을 자극해서 일까? 이런 감성들을 만나면 왠지 마음이 편해지고 맑아진다.


관광버스 한 대가 도착하자 많은 사람들이 내린다.
“이곳까지 관광버스가?, 그 정도로 유명하단 말이야?”
유천극장 맞은편엔 1940년대 활동한 시조 시인 이호우와 이영도 오누이의 생가가 있다.
이호우 시인은 기자로서의 비판의식과 작가로서 투철한 시 정신을 가진 작가로, 시조 한 편을 쓰는데 수십 년 동안이나 퇴고와 개작을 거듭했다고 한다. 비록 작품 수는 185편에 불과 했지만, 그의 문학세계가 얼마나 깊고 풍부했는지, 자신이 쓴 시에 대한 자존심과 책임감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여동생 이영도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한학과 서화에 능했다고 한다. 대구의 부호와 결혼했지만 사별하고, 통영여중 교사로 재직 시 청마 유치환 시인을 만나 그가 죽을 때까지 20여 년 간 연인으로 지내며 유치환으로부터 5,000통의 연서를 받았다고 한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이호수 생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데 목에 건 명찰을 무슨 문학인 모임에서 단체로 관광을 온 모양이다.
우선 그 모임 회원들의 옷차림과 조용히 생가를 둘러보며 소곤소곤 대화하는 모습에서 고상함과 지성이 묻어있는 것 같다. 조금 전 명찰을 보고 작가라는 선입견을 가져서 인지는 모르겠다.
어느 여류작가는 천연염색을 한 치마저고리를 입고 약간 그레이 머리로 찬찬히 둘러보는데 뭔가 쿵하고 가슴을 때린다.
뭐지? 맑음, 소박함, 정갈함, 지성 ....
문득,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상상 속에서만 그리던 어떤 그리움을 만나게 되어서 일까?, 아니면, 자연그대로의 어떤 아름다움의 원형을 찾아서 일까?
시도 모르는 내가 언뜻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들은 이랬다.


시는 맑다
천연염색의 수수한 모시 옷
화장기 없는 코스모스
은은한 아카시아 향
손가락 끝으로 조물조물 무친 봄나물
산소품은 산들바람
자갈많은 여울을 흐르는 맑은 물소리
알곡의 탱글함
고운채로 걸러내 순수한 영혼
겨우 찾아낸 진실 하나
여류 작가가 그렇다.
우리는 늘 크고 화려한 것을 좋아한다.
관광지를 선택할 때가 그렇고, 여자를 보는 눈도 그렇다.
진실한 아름다움은 치장하지 않아도 이쁘다
막은 향기는 싸고 싸매도 배어난다.
| (혼자 떠나는) 시모노세키 이자카야(居酒屋) 여행 2 (0) | 2026.04.02 |
|---|---|
| (혼자 떠나는) 시모노세키 이자카야(居酒屋) 여행 1 (0) | 2026.03.31 |
| 북큐슈 기차여행기(2차-9편) 스이젠지 정원과 기차 여행 마무리 (7) | 2025.07.10 |
| 북큐슈 기차여행기(2차-8편) : 난공불락 구마모토 성 (11) | 2025.07.09 |
| 숙제 같은 여행에서 스며드는 여행으로 ... (6) | 2025.06.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