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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떠나는) 시모노세키 이자카야(居酒屋) 여행 2

뚜벅뚜벅 인생여행 (자유 여행기)

by 유초선생 2026. 4. 2.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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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3.21.

선내 식당이 오픈되었다는 방송에 잠을 깼다. 나는 현지에서 아침을 먹을 거라 먼저 씻기로 한다. 
카멜리아나 부관페리에는 대욕장에서 있어 피곤에 지친 몸을 푹 담글 수 있고 샤워를 하고나면 기분 좋게 아침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

간몬해협 오른쪽이 모지코, 왼쪽이 시모노세키다

배낭을 정리해 미리 하선 출구에 줄을 세워두고는 선창으로 나간다. Tip, 선박 여행시 미리 캐리어 줄을 세워두면 빨리 하선해 입국수속을 할 수 있어 1시간 정도 시간을 벌 수 있다.  
배는 이미 간몬해협에 들어섰고, 해협 좌우의 시모노세키와 모지코에도 새로운 아침이 열리고 있다. 
잔잔한 윤슬위에 아침 햇살이 길게 드리우고 바다는 은빛으로 반짝인다. 아침 식사를 마쳤는지 갈매기는 먹이사냥을 하지 않고 잔잔한 물결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다.  높은 배 위에서 갈매기에게 오징어 땅콩 하나를 힘껏 던진다. 못 봤는지 날아오지도 않고, 오징어 땅콩 한 알만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돗단배처럼 노란 점 하나로 떠 있다.  

여유롭다. 다른 생각을 하지말자. 나의 시선으로 그저 보이는 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고, 받아들이자.   
밝은 햇살, 맑은 공기, 폐부를 열어 시모노세키의 맑은 공기를 한껏 들이킨다. 아 아침공기가 이렇게 맑은것이었던가?

입국수속을 마치고 예약한 시모노세키스테이션 호텔로 향한다. 먼저 짐부터 맡겨놓고 여행에 나설 요량이다.  
시모노세키에서는 늘 웨스트 워싱턴호텔에 숙박했는데 이번에는 저녁에 한잔 할 예정인 오카모토 바로 옆 시모노세키 스테이션호텔로 예약한 것이다. 조식포함 65,000원에 예약했는데 이 호텔 역시 너무 친절해 오히려 미안하다.  

이제 작은 어깨 가방하나 매고 여행길에 나선다. 몸이 가벼워야 자유롭고 멀리 여행할 수 있다
오늘 저녁 4시 반 고쿠라역 2층 출구에서 시모노세키 친구들과 만나기로 약속한 만큼 낮 시간을 어디선가 보내야 한다. .  
특별한 목적지가 없고 시간에도 구애받지 않으니 발걸음 닿는 대로 가면된다. 

호텔 옆 신사에 먼저 가보기로 한다. 시모노세키 국제여객터미널에서 시모노세키역까지 연결된 공중보행로에서 바로 보이는 그 신사다.  시모노세키 국제 여객터미널 맞은편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오토시 신사(大歳神社)는 1185년 단노우라 전투 당시 미나모토노 요시쓰네가 필승을 기원했던 곳으로 전해지는 장소다.

도로 쪽 입구에 서 있는 큰 석재 큰 도리이로부터 신사까지는 가파른 긴 돌계단이 이어지고 계단 끝의 도리이를 지나면 바로 신사가 나온다. 돌계단에는 나이를 부르는 호칭이나 해당나이에 행하는 의식 같은 것을 적은 표지판이 붙어 있다. 즉 30번째 계단에는 30세를 일컸는 호칭을, 50번째 계단은 50세를 일컸는 호칭을 붙여두었다.  
우리도 20세(약관弱冠) 30세(이립而立), 40세(불혹不惑), 50세(지천명知天命), 60세(이순耳順), 61세(환갑還甲), 70세(고희古稀.종심從心) ...... 이라고 것 처럼 말이다. 그런데 일본에는 해당 나이에 행하는 의식도 포함했겠지만 우리보다 더 많다.  

첫 계단에는 하츠미야마이리(初宮参り)라고 적혀있는데, 아이가 태어난 지 1개월이 되면 아이를 신사에 데리고 와서 출생을 알리고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전통이다.  3번째 계단에는 발치(髮置, 남녀 아이 모두 3세가 되면 머리카락을 기르기 시작), 5번째 계단에는 고착(袴着, 남자아이 일본식 바지 하카마를 처음 입기), 7번째 계단에는 대해(帶解, 여자아이 오비(띠)매기)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는데, 시치고산(七五三)은 매년 11월 15일경, 일본에서 3·5·7세 아이의 무사성장과 건강을 기원하며 신사에 참배하는 전통 행사다. 이어 8세, 13세, 18세, 19세, ,20세, 24세, 25세, 26세, 32세, 33세 ......등 각 나이를 부르는  호칭이나 의식들이 적혀있는데, 이립, 불혹, 지천명, 이순, 고희...같은 것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같은 호칭을 쓰는 것 같다.  

나의 위치는 어딜까? 60 이순을 넘어 70 종심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 
마지막 계단 끝 도리이를 지나면 바로 오토시 신사 건물이 정면으로 보인다. 신직이 마당을 쓸며 새로운 하루를 준비하고 있다. 후쿠오카 쿠시다 신사에서는 아침 일찍 흰옷 입은 신직이 빗자루로 신사 흙 마당을 곱게 쓰는 모습에서 소리조차 내기 어려운 어떤 경건함이 느껴졌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신사에 오르니 시모노세키 항구와 역 주변이 훤히 보인다. 신직님께 가볍게 목례를 하고 경내를 둘러본다.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이곳에는 출근길에 들러 참배하고 출근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 아침을 먹으러 가 볼까? 여행 왔으면 현지 음식을 먹으려고 선내식사를 하지 않았다. 시모노세키에서 아침을 먹으려면 시모노세키역 1층 밖에 없는데 아침에는 라면집 하나, 햄버거집 하나 정도만 겨우 문을 열고 있다. 
둘러보니 마땅히 먹을 것이 없다. 면류는 점심때 먹어야겠고, 유메마트에 들어가 보니 다양한 도시락도 많은데 아침부터 도시락을 사 먹기도 그래서 일단 고쿠라로 가기로 한다.  
일본은 크게 네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쿄 오사카 등이 있는 혼슈, 후쿠오카 나가사키 등이 있는 큐슈, 삿포로의 홋가이도, 시고쿠 등이다.
혼슈와 큐슈 사이에는 간몬해협이 있는데 바다라고 하지만 해협의 폭이 780m 정도로 오히려 한강보다 짧다. 간몬해협은 일본 세토 내해로 들어가는 좁은 해로로 일본의 수에즈라고 불리며, 조선통신사가 이 간몬해협을 자너 오사카로 들어갔다. 시모노세키는 일본 혼슈의 남단이고, 고쿠라는 큐슈의 북단이라 간몬해협 바다를 건너가야 하지만, 전철로 2개역 15분 정도 걸리지 않아 시모노세키와 같은 생활권이라 봐도 무방하다.

고쿠라는 기타큐슈시의 가장 번화한 지역으로 혼슈와 큐슈를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지고 각종 상업시설과 음식점, 유흥시설이 밀집해 있는 큰 도시다.  하카타, 구마모토, 나가사키, 오이타, 벳푸, 고쿠라 등 일본의 대부분 역은 역사 안에 백화점이나 쇼핑센터가 있어 역사 규모가 크고 그 안에 식당가도 있어 편리하다. 
아침이라서 그런지 문을 연 식당들이 많지 않아 햄버거에 커피한잔으로 아침을 대신하기로 한다. 
모닝커피가 맛있다. 지금까지의 가고, 먹고, 보기 바쁜  빨리 빨리, 만이 많이 여행에서 천천히 느긋하게 즐기는 여행으로 바꾸기고 마음먹었고, 그래서 햄버거에 모닝커피 한잔도 여유롭게 즐긴 것이다.
고쿠라에 왔으니 은하철도 999의 메텔과 철이, 선장에게 인사는 하고 가야지. 

시끄러운 마이크소리가 들려 밖으로 나갔더니 나이 많은 남녀 노인들이 오키나와 헤노코 미국기지 건설 반대와 미국의 이란전쟁을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런 시위문화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비슷한데, 한국처럼 조직적이고 정치적이고 상업적이지 않고 (극우인가는 모르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하는 시위라 진정성도 있어보이고 봐줄 만도 하다.   

여기서도 나이 먹은 노인들이 오키나와 헤노코 미군기지 건설반대와 미국의 대 이란 전쟁을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모노세키 친구를 만나기까지 6시간이 남았다. 오늘은 그냥 한적한 바닷가에 가서 현지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눠보고 차도 같이 한잔 할까 했었는데, 고가(古賀)시 ‘타카야마 전당포’에 가보기로 했다. 타카야마 전당포는 중고명품을 저렴하게 파는 곳이다. 딱히 살 것은 없지만 구경도 하고 혹시 파크골프채가 싸면 하나 살까 해서다.   

고가(古賀)에 가려면 하카타쪽으로 가는 가고시마본선을 타고 1시간 정도 가야한다. JR홈페이지에서 검색하면 기본적으로 특급.급행, 신칸센 등으로 체크되어 있기 때문에 고가를 검색하면 하카타까지 가서 다시 돌아오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래서 이 조건들을 풀고 검색해야 고가까지 바로 가는 열차 시간이 나온다. 19개역 모두 정차하지만 1,090엔으로 가장 저렴하게 갈 수 있다.  

자동발매기에서 승차권을 발권한 후 고가행 전철에 오른다. 열차에 Commuter Train 이라고 써 진걸 보니 통근열차 쯤 된다. 좌석은 우리나라 지하철 같이 긴 종렬좌석으로 되어있는데, 차내 화장실이 있다는 것이 특이하다. 종렬좌석이라 바깥 풍경을 보는 데는 좀 불편하다.

기차여행을 하면 손도 자유롭고 마음도 여유로워 지나가는 풍경들을 보며 많은 생각도 하고 여행기도 적을 수 있다.   
고가 가는 길은 도시와 농촌을 거친다. 일본에는 2모작을 하고 있는 곳이 많아 지금쯤이면 보리나 밀이 많이 자라 있을텐데 들판에 아무 작물도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여기는 2모작을 하지 않는것 같다. 중간 중간에 보이는 주택들은 일본식 전통가옥이 아니라 현대식 일본주택이다. 주택의 창틀은 (드문드문 하이샷시도 있지만) 대부분 갈색 알루미늄 샷시다.  알미늄샤시는 문을 열 때 삑삑 거리고 페어유리로 되어있지 않아 단열 보온도 잘 안된다. 갈색이지만 하이샷시려나?

스페이스월드역을 지나 아카마로 가는 길 양쪽에 대나무 숲이 많이 보인다. 큐슈 히타 지역이나  아소지역을 지날 때면 쭉쭉 뻗은 삼나무 군락들을 보면 참 부러웠다. 우리나라 산의 소나무나 굴참나무 등은 꾸불꾸불 자라 건축자대로는 쓸 수 없는 잡목이다. 우리도 이런 노령목이나 잡목들을 베어내고 경제성 높은 삼나무나 편백나무로 교체 식목하여 탄소 흡수능력도 뛰어나고, 산불도 예방하고, 건축자재로도 쓸 수 있는 임업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왕대나무 역시 그런 의미에서 쓰임새가 다양하고 보기도 좋다.  

큰 도시 역 옆에는 대부분 5~6층짜리 주차 빌딩이 있다. 일본에서는 주차장이 없으면 자동차를 구입할 수 없고 따라서 자동차 문화가 잘 정착되어 불법주차를 하거나 경적을 울리는 모습은 거의 볼 수가 없다. 시골 역시 마찬가지, 주택마다 개별 주차장이 있고, 앙징스런 소형차들이 모두 제자리에 주차되어 있다. 

한자로 된 역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일본의 문자체계는 히라가나와 카타카나 그리고 한자가 있다. 히라가나는 동사나 형용사 등에 많이 쓰고, 카타카나는 외래어를 표기할 때 많이 쓴다. 한자 역시 음독(音読)과 훈독(訓読)이 있어 한 단어 내에서도 조합에 따라 읽는 법이 다르다. 따라서 일본인 마저도 한자를 어떻게 읽을지 몰라 한자 위에 히라가나로 후리가나(읽는 법)을 달아두는 경우도 있다. 
어떻게 보면 50음만 알면 일본어를 할 수 있으니 배우기 쉬울 것 같은데, 문제는 일본어로는 한글처럼 다양한 발음을 문자로 표기할 수 없다는 것과 한자를 모르면 읽을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의 유튜브를 보면 일본인들이 한글에 중독되어 한자 대신 한글을 쓰는 일본인들이 많다고 하니 이런 한글을 가지 우리는 행복하고 세종대왕님께 감사해야 한다. 

고가(古賀)역에 내린다. 행정구역상 시(市)임에도 도시 규모가 아주 작다. '타카야마 전당포'는 지도상 그리 멀지 않아 걸어가기로 한다. 높은 건물이 있는 쪽으로 나가야 할 것 같아 고가역 서쪽 방향으로 나가 물어보니 반대쪽이란다. 다시 역을 통해 반대쪽 동쪽 출구로 나가니 상가하나 없이 완전히 시골이다. 

역 울타리를 따라 긴 자전거 보관소가 있다. 직장인이나 학생들이 자전거로 역까지 와서 여기에 보관하고 통근하는 모양이다. Commuter Train 통근 열차를 타고 말이다. 길거리에 사람도 없어 물어볼 곳도 마땅치가 않다. 특히 일본 소도시 주택가에서는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대충 방향을 잡아 가는데 선수다 ㅎㅎ. 어떤 가게 앞에서 사람을 만나 물어보니 하천을 건너가서 3번 도로 뭐라 뭐라 하는데 잘 모르겠고 일단 다리를 건너가서 가다 다시 물어보기로 한다.

표시된 곳이 타카야마 전당포다. 작은 하천을 건어야 한다 .

다리를 건너가서 한참 가니 아무래도 이 방향이 아닌 것 같다. 다시 물어보니 왔던 다리를 다시 건너가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라 하고 다시 물어보니 다리를 또 건너라 한다. 할 수없이 구글지도를 켜고 방향을 잡아 겨우 도착했다. 
결국 이 사람 말도 맞고 저 사람 말도 맞았다. 나중에 지도를 보니 두물머리처럼 두 개의 하천이 있었다. 한쪽 하천 다리를 건너서 쭉 가다 다시 그 하천을 건너가면 바로 나오니 그게 가장 가까운 길이기도 하고, 다리를 건너지 않고 내려가다 다른 하천을 건너면 되니 그말도 맞다. 
모르면 구글맵을 켜서 가면되는데 로밍 데이터 아낀다고 물어보고 가려다 보니 헛고생을 한 셈이다.
좌충우돌이지만 이게 스릴있고 여행의 재미다.

고가의 타카야마 전당포, 타카야마는 후쿠오카 시내에도 몇개 있다.

타카야마 전당포다. 큰 창고 같은 건물에 중고 명품들이 전시판매하고 있는데 손님들은 겨우 10여명 정도 밖에 없다. 골프채, 롤렉스시계, 보석반지, 루이비통, 구찌, 프라다등 크고 작은 명품가방들이 가득 전시되어 있고 루이비통이 가장 많다. 기타 신발, 옷 등도 전시 판매되고 있는데 가방과 시계가 제일 많은 것 같다.  

몇십만 원으로 살 수 있는 명품 가방도 있지만, 중고지만 2,900만원이 넘는 롤렉스시계로 부터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짜리 가방들이 산더미처럼 진열되어 있다. 중고라도 결코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나는 원래 명품에 관심이 없고 이 나이에 브랜드 표시가 드러나는 명품은 오히려 부끄러워서 가지지 못하겠다. 다만 몽블랑은 브랜드가 거의 드러나지 않아 좋고,  특히 몽블랑 만년필로 글을 쓸때는 우선 마음이 안정되고, 사각사각 글도 잘 써져 나의 애용품이 되어있다. 파크골프채는 없다고 하여 한 바퀴 둘러보고는 나왔다.

주차관리하는 아저씨는 편한 복장으로 해도 될 텐데 제복에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맸고, 제모를 쓰고 허리에는 요대까지 둘렀다. 일본에는 철도 승무원, 버스 운전기사도 제복에 넥타이를 매고 제모를 쓴채 근무하고 있고, 학생들 역시 검은 학생복에 모자까지 쓴다. 내가 중고등학교때 입었던 황금색 단추가 달린 그 교복이고 모자다. 자율, 자유, 노터치....자율을 넘어 이미 제 멋대로, 방종에 이르기까지 한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모습이다. 만일 지금 한국에서 그런 걸 강제하면 인권침해로 고소 또는 진정을 당해 담당자들은 늘 고용노동부에 불려가 소명을 해야 할 판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가장 빨리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고 변화하여 선진국이 된 일본이지만, 지금은 오히려 변화를 거부하고 흑백사진처럼 과거속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제복은 모두가 똑같은 획일화를 요구한다. 그러다 보면 행동도 생각도 그 틀 안에 갇혀 획일화 된다.  지금은 통일, 획일화가 아니라 다양성, 창의성이 요구되는 시기다. 한국이 세계10위의 경제대국, 5위의 군사대국, K-문화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자율과 창의성 때문이다. 너무 빨리 변화하여 따라잡기도 힘든 한국,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지키려는 일본, 변화하는 세상에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발전의 속도가 느린 것이 아니라 뒤쳐지게 되어있다. 
(내가 꼰대라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럼에도, 지금 한국인의 직업정신, 직장인으로서의 자세, 자기 중심적 생각, 세계 시민정신 등을 보면 이런 일본의 직장인의 자세가 한편 부럽기도 한 것은 아이러니다.  

이 근처에는 식당이 별로 없다. 맛집을 검색해보니 타카야마 옆 이치요켄 라면집이 맛 집이라 하여 들어간다. 점심시간이라서 그런지 식당에 크지 않지만 거의 만석이다. 바로 카운터 석에 앉으려니까 자동식권발매기에서 주문을 먼저 하란다. 일본사람들은 라면에 공기 밥도 큰 것으로 먹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원래 양이 적은 사람이라 730엔 기본 라면만 시켰다.

‘어휴 ~ 짜다’ 일본 우동은 약간 달큰하면서 쫄깃한 것이 맛있는데 라면은 어딜 가나 짜다. 어쨌든 맛집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걸어서 고가역으로 간다. 이번엔 정 코스로 갔다. 다리를 건너 다시 다리를 건너는 코스, 제일 처음 안내해줬던 그분의 안내가 맞아 가장 빠른 길로 도착했다.
내가 걷는 이유는, 큰 길도 걷고 골목길도 걸으면서 그 지역의 속살들을 바라보려는 것이다.
골목길에 핀 꽃 하나, 가게 간판 인테리어, 엔규(炎牛 불타는소):고기밖에 모르는 점주의 야키니쿠집 이라는 뜻의 상호도 재미있다.

엔규(불타는 소) : 고기밖에 모르는 사장님의 야키니쿠가게와 벽돌 사이에 상호를 판에 새겨넣은 옆집 가게
멋진 일본 전통 주택, 옛날엔 고관이 살던집이었을 것 같다. 정원도 예쁘게 가구어 놓았다

고가역으로 돌아와 커피나 한잔 하려고 번화가?인 서쪽 출구로 나갔더니 커피숖이 보이지 않는다. 베이커리의 인테리어가 클래식해서 커피는 있으려니 해서 들어갔더니 커피는 없다고 한다.
그래 고쿠라에 가서 마시자

고가 베이커리, 커피는 팔지 않는다

 고쿠라행 기차를 타고 고쿠라로 향한다. 이번 열차는 횡열좌석과 좌석이 없고 손잡이만 있는 입석이 있다. 입석칸에는 손잡이가 둥글게 매달려 있어 많은 사람이 잡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참신한 아이디어다. 토요일인데 수업이 있는지 교복입은 학생들이 가득 탔다. 서 있는 학생, 의자에 앉은 학생들 모두 피곤에 찌들어 있고, 대부분 졸고 있다. 누구에게나, 시절마다 삶은 참 힘든 것 같다.

  다시 고쿠라로 돌아와 친구들을 기다리며 커피한잔 한다. 
그냥 커피숍에서 느긋한 시간을 보내기는 처음이다.

4시 50분 일본 친구 두 분과 만났다. 한분은 시모노세키에서 한글을 가르치는 선생님이고 한분은 거기서 한글을 배우는 시청공무원으로 지난번 시모노세키에 갔을 때 이자카야에서 한잔 했던 분들이다. 오늘은 이분들과 다찌노미집에서 한잔 하기로 했다. 

고쿠라역에서 5~10분 거리에 있는 우오마치 긴텐가이(魚町銀天街)로 향한다. 
우오마치 토오리는 아케이드 상가로 고쿠라의 최고 번화가다. 
이곳은 돈키호테를 포함한 잡화점과 상점들이 있어 쇼핑하기 좋고, 각종 식당과 이자카야 등이 밀집해 있는 먹자골목으로 저녁이 되면 현지인, 여행객들로 늘 붐비는 골목이다.

오늘 가는 집은 스텐드후쿠스케(スタンド福助)라고 하는 다치노미(立ち飲み) 서서 마시는 술집이다. 이 곳은 4시부터 6시까지는 하이볼, 레몬사와 등 술 한 잔에 100엔(950원)밖에 하지 않는다며 시모노세키친구가 한번 가보자고 했고, 6시 이후에는 한잔에 100엔 하는 다른 다치노미집에 가면 된다고 한다. 


스탠드 후쿠스케에 도착하자 작은 가게 내에는 이미 손님들로 가득하다. 다치노미(立ち飲み), 말 그대로 가게 안에 의자는 없고 주방 카운터석 앞에 그냥 서서 마시는 술집이다. 이런 술집은 한국에서 본적이 없다. 좁고 긴 가게 안은 이미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이 꽉 찼고, 사람이 많을 땐 대각선으로 서라는 안내문까지 있으니 대충 짐작이 간다.   
우리는 입구 구석 쪽에 한두 명 설 자리를 잡고 술을 주문한다. 

한잔에 100엔, 술값 부담도 없고, 분위기도 색다르고 왁자지껄해 괜히 기분이 업 된다.
우선 하이볼부터 시켰다. 아 술이 시원하고 달다. 
안주는 별것 없지만 눈 수술을 한 후 거의 20일 술을 굶었던 차라 오늘 술은 더 맛있다.

특히 이집의 센베로 메뉴는 1,000엔에 주류 3잔과 안주 2개가 나오는데 가성비 끝판 왕이다.
'센베로(せんべろ)'는 1,000엔이라는 듯의 센(せん)과 곤드레만드레 취한 모습인 베로베로(べろべろ)의 합성어로 1만원도 안 되는 1,000엔에 마음껏 취할 수 있으니 우리나라로 치면 만원으로 취할 수 있으니 ‘만원의 행복, 만취(萬醉)다. 


이왕 온 것 하이볼, 레몬사와, 생맥주까지 골고루 마셔본다. 친구가 한국에서 온 손님이라고 점주에게 소개를 시켜준다. 
이 친구는 일주일에 한 두 번은 이 곳에 온다고 하는데 점주를 비롯한 종업원들과도 잘 아는 사이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 오면 항상 노미토모((飲み友, 술친구)가 있다고 하는데 고쿠라에 사는 사람도 있고 시모노세키에서 온 사람도 있단다. 오늘도 역시 조금 떨어진 자리에 남자, 여자, 청년 등 노미토모들이 있어 내게도 소개시켜준다. 내 옆에 선 모르는 사람도 히로시마에서 혼자 왔다며 말을 건넨다. 
역시 술은 이런 곳에서 마셔야 즐겁다. 6시 100엔 마감시간이 되자 계산을 하고 2차로 한잔 더 하러 간다. 

일본에서는 술값을 나누어 내는 더치페이가 일반화 되어있다. 이곳 술값 역시 총 술값을 인원수로 나누어 부담하는 와리캉(割り勘, わりかん)하여 부담하고, 내 몫은 일본 친구가 내어 주었다. 지난번 시모노세키 이자카야에서는 나를 포함 6명이 술을 마셨는데 1/5로 나누어 와리깡을 했고, 대신 내가 2차는 전액을 부담했다. 

다시 6시부터 시작하는 다른 100엔 다치노미집에 가려다 이곳에서도 유명한 아지카야 홈런식당에 가기로 했다. 2차는 다치노미에서 인사를 나누었던 친구의 사촌분과 함께 가기로 했다. 홈런 식당은 생맥주 한잔에 199엔, 안주도 싸서 늘 자리가 없을 정도다. 나도 지난번에 왔을 때는 혼자서 외롭게 마셨던 경험이 있다.

오늘도 홈런식당은 손님으로 꽉 차있다. 사람이 많은 것도 그렇지만 주방 위쪽 벽 전체에 빽빽이 걸린 메뉴판과 생맥주 한잔이라도 주문하면 종업원 주방을 향해 ’도링쿠 오넹아이시마스(음료 부탁합니다)‘라고 외치는 모습도 분위기를 들뜨게 한다. 
여기서는 QR코드로 술과 음료를 주문한다. 이곳에 처음 혼자 왔을 때는 주문하느라 상당히 애를 먹었는데 이번에는 친구들이 있으니 나는 마시고 싶은 걸 말만 하면 되고 안주도 알아서 잘 시킨다. 

일본에서는 술을 마시는 사람은 많지만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 후쿠오카 나카스에 가면 수백, 수천 개의 술집이 밀집해 있지만 길에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 한국은 병 단위로 마시고 일본은 잔 단위로 마신다. 한국에서는 소주든 양주든 스트레이트로 마시고 그것도 몇 병씩이나 마시니 취할 수밖에 없지만, 일본은 대부분 술을 물과 얼음에 타서 미즈와리(水割り)로 해서 마시니 술이 독하지도 않고 많이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본 직장인들은 퇴근시간에 술집에 들러서 가볍게 한 두 잔 하고 귀가하는 사람도 많다. 

잠시 후 스텐드 후쿠스케에서 인사했던 사람들도 이곳에 오겠다고 한단다. 
2차를 내든 3차를 내든 내가 한 번은 다 내려고 했는데 언뜻 그 팀까지 합류하며 그 비용을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걱정이 든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왔다는 친구 삼촌분도 2차를 같이 했다. 나이는 62세로 나보다 어리지만 엄청 밝고 쾌활하다. 이 분 말씀, 고쿠라는 동남아에서 제일 술값이 싸고, 미얀마보다 술값이 싼 술꾼들에게는 최고의 도시라고 너스레를 떤다. 그래서 시모노세키 사람들도 전철로 두 코스인 고쿠라까지 술을 마시러 온다고 한다.   

우리는 앞 테이블에 4명이 앉고 나중에 합류한 20대 청년, 40대, 50대 아주머니는 뒷줄 좌석에 앉았다. 그러니까 오늘 술 멤버는 20대, 40대, 50대, 60대들이 다 모인 것이다. 

이번에 느낀 것은 일본에서는 나이에 상관없이 술친구 노모토모가 된다는 것이다. 60대와 20대 청년이 같이 술마시며 이야기 하고 떠들고, 남녀 역시 술집에서 만나면 거리낌 없이 술친구가 된다. (이곳 고쿠라만의 모습인지는 모르겠다) 한국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60대 중반의 꼰대가 20대 청년과 술친구가 되고, 40대 아주머니도 60대 남자와 같이 합석해 술친구가 되어 웃고 떠들고 세상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세키겐테이씨가 쓴 ’불량노인이 되자‘라는 책에서 80을 넘은 겐테이 영감이 청바지를 입고 꽁지머리를 하고 20대 젊은이들과 생맥주를 마시고, 여자 친구가 한 트럭이나 된다는 내용을 보고 블로그에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실제 그것이 가능한 모양이다. 나도 그래야겠다. 나도 상당히 보수적이고 꼰대인데 굳이 그렇게 살 이유가 없는 것이다. 20대, 30대 젊은이들과 어울리고 그렇게 살면 나도 젊어지지 않을까?

홈런 식당에서도 하이볼과 생맥주를 3-4잔은 마신 것 같다. 같이 건배하고 사진 찍고 멋진 시간을 보내고, 준비한 인삼차, 석류차를 처음 본 분들에게 선물로 드렸더니 ’이걸 받아도 되느냐‘며 너무 감사해 했다. 

2차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고 생각한 것은 기우였다. 이곳 역시 총 술값을 7명으로 나누어 와리깡을 하는 모습을 보고, 아무리 사람이 많이 모여도 걱정 없고, 다른 사람이 합석한다 해서 부담가질 일은 아니었다. 내가 마신만큼 내가 내니 그저 그 시간을 웃고 즐기면 되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내 몫은 시모노세키 다른 친구 분이 내 주었다. 사실 시모노세키 ’오카모토‘에서 내가 한잔 사기로 했기 때문이다. 

고쿠라의 밤은 화려하고 신난다. 다치노미를 경험한 후 나는 고쿠라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우리 일행 3명은 다시 전철을 타고 시모노세키로 향했다. 두 분 다 시모노세키 분이다. 우선 오카모토 바로 옆 호텔에 보관해 두었던 선물을 찾아 오카모토로 향한다. 정식 상호는 선어 오카모토(鮮魚 おかもと), 시모노세키 역 및 시몰 공중보행로에서 부산문을 지나 오른쪽 계단을 내려가면 부산 거리라고 불리는 그린몰이 나오고 이 근처에 이자카야가 좀 있다. 이곳이 시모노세키에서 유일하게 한 잔 할 수 있는 곳이다. 오카모토는 이 근처 주택가 골목 안 허름한 노포로 sns나 한국의 유튜버들이 꼭 가봐야 할 곳으로 많이 소개하는 가성비 좋은 해산물 맛집이다. 
지난번에도 왔다가 대기 줄이 길고 혼자라 먹지 못했는데, 이번엔 시간도 늦어 얼마 기다리지 않아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곳의 주 메뉴는 해산물 요리로 생선회, 해물 덮밥, 성게 덮바, 고래 고기, 조개 등이 있다. 회 모듬은 1인분 1,100엔이니 일본에서는 엄청 싸고 거기다 오토오시(お通し)도 없다. 이자카야에 가면 자리에 앉자마자 먼저 삶은 풋콩이나 양배추 썬 것 같은 간단한 안주가 나오는데 이것을 오토오시라고 하며 자릿세, 입장료 명목으로 300엔~500엔까지 별도로 받는다. 안주도 안주 같지 않은데 이렇게 비싸게 받는 건 갈 때 마다 좀 억울한 기분이 든다. 



1.2차는 내 몫을 시모노세키 친구들이 내어 주었고 3차는 내가 사기로 했으니 1인 3,000엔짜리 해산물 코스로 시키고 술은 병맥주로 마시기로 했다. 1.2차 마시고 3차까지 왔는데 전혀 취기는 없다.  샐러드를 더한 튀김 같은 안주와 장육 조림?, 두부요리 같은 것이 나오고 이후 메인인 생선회가 나왔다. 모듬회는 한국의 일식집 처럼 여러종류의 선어회가 한 접시 가득 담겨져 나왔다. 그렇게 외쳤던 오카모토인데 오늘 드디어 여기서 한잔하게 되었으니 기분 좋다. 

오카모토 사장님과 인사를 나누니 한국에도 가끔씩 가신다고 한다. 지난번에도 왔다가 자리가 없어 못 먹었다고 하니 미안해하며 특별 안주 서비스도 내어주셨다. 일본에서 서비스로 나오는 건 거의 없는데 내가 특별 대접을 받은 것이다. 맛있는 안주에 맛있는 술에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마감시간 11시가 되어간다. 다음에 부산에서 만나 또 한잔하기로 하고 마지막 잔을 비웠다. 

친구분들에게 준비한 차를 한 가득 선물했다. 선물로 뭘 사갈까 했더니 국산차 조그만 것 하나 사오면 좋겠다고 했는데 이왕 사는 것 종류별로 인삼차, 대추차, 쌍화차, 석류차, 오미자차, 율무차, 녹차, 믹스커피에 석류젤리, 약과까지 사 갔고, 일본 친구도 내게 뜨거운 물만 부으면 되는 미소(된장국)를 선물해 주었다.     

1차 고쿠라 다찌노미집, 2차 고쿠라 이자카야 홈런식당, 3차 시모노세키 오카모토까지 장장 5~6시간에 걸친 시모노세키 이자카야 여행을 마쳤다. 

내일은 카라토시장에서 초밥을 먹고 버스를 타고 시골동네 아무 곳이나 돌아다니다가 저녁 배로 돌아갈 예정이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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