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승이 왔어?
아직 안 왔다...어제 무리하더니만...그래도 그렇지 오늘이 어떤 날인데 ..
조끔만 더 기다려 보자.
흥주는?
출발은 했다는데 좀 늦게 출발 한 것 같애..
어제 부산 동문모임에서 둘 다 과음 할 때 알아봤다
짜식들 말이야. 안 그래도 실력이 딸리는데 오늘 우사하는거 아닌가 모르겠다"
부산에선 속 쓰려 비실비실 하는 기승이 태우고..
경주에선 친구들 모시려고 어제 대구에서 부곡 가는 길을 사전 답사까지 하며 정성으로 준비한 흥주가 쓰린 속을 감싸고 서울팀 모시러 대구로 올라가고 있었다.
열씨미 자치기 모임이 있던 날의 아침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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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이제 막 꽃망울 터트리는 남도의 봄소식을 카페에 전하고 친구들이 아직 다 읽지도 못했는데,
성급한 봄은 그 사이를 못 참고 쓰나미처럼 남도 전역을 휩쓸었고
어느새 경남의 중부인 이곳 부곡에도 절정을 이룬 봄의 향연들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눈부시게 하얀 벚꽃터널을 지나 클럽하우스에 도착하니 먼 길을 달려 미리 도착한 서울팀이 환한 얼굴로 부산팀을 맞는다.
선곤아! 어이 통! .....야 너 하나도 안 변했다. 잘 지냈냐?
선곤이의 매끈한 얼굴, 완길이 큰 입, 경철이 너털웃음, 재학이 멋진 모습은
27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어쩜 옛날 모습 그대로 똑 같은지....
변한 게 있다면 어언 중년을 넘고 사회의 중심에 서 있는 친구들의 중후함과 안정감, 그리고 여유라고 할까?
지난 1월 개설한 철고 토목과 카페와 홈페이지가 잊혀 진 우리들을 다시 묶어 준지 석 달도 안됐는데, 그 결실로 오늘 오프라인에서 첫 만남이 만들어 지는 순간이다
설레는 마음을 달래며 필드로 나가는데 아름다운 봄의 정취가 발목을 잡는다.
우선 사진부터 한방 박고 가자.
부딪히는 어깨에서 따스한 우정과 묵직한 의리 같은 게 느껴졌다
카페에 부산 친구들 사는 모습을 전하면서 농담 삼아 한번 붙어보자고 했는데 서로의 마음이 동하여 급히 이루어졌지만 사실 걱정도 많이 했다
준비문제가 아니라 서울 친구들의 실력이 대단하다기에 우리가 너무 못 치면 우사할까봐 걱정한 것이고, 덕분에 1주일에 2번 정도 실내연습장에서 칼을 갈게 되어 실력도 향상되었다.
순서를 정하고 드디어 "철고팀"이 먼저 티업에 들어갔다
동 코스 1번 543m 롱홀. 중혁이가 제일 먼저 티샷에 나섰다
멍강고 함 보여줘야지
내 이를 위해 준원이의 잔소리도 꾹 참고 노력했거늘.....
내 이를 위해 2주전 퍼블릭에 갔다가 담이 와서 어제 저녁까지 파스를 부치고도 칼을 갈았거늘 ......
서울 친구들의 따가운 시선과 부산 친구들의 기대를 감당하면서 드라이브 샷을 날린다
땅! 잘 가는가 싶더니 오른쪽으로 휘어진다....OB에 가까운 슬라이스다 좀 쪽 팔린다.
다음은 선곤이 차례
척주를 축으로 흔들림 없이 몸통을 감는데 왼쪽어깨가 거의 오른쪽 발까지 돌아가는 것이랑 깔끔한 피니쉬가 가히 일품이다.
빨래줄 처럼 날아가 페어웨이 가운데로 정확히 안착하는 장타, 소문은 들었지만 역시 달랐다
굿샷!...... 굿샷!.... 박수가 쏟아진다
다음은 재학이.
백스윙이 좀 짧은 것 같았는데 임팩트에 엄청난 힘을 실어 후려갈긴다.
낮은 탄두의 미사일처럼 페어웨이 중간으로 끝없이 날아간다. 어마어마한 장타다.
굿~샷!~~~
부곡은 우리 동네라 수도 없이 와 봤지만 1번 롱홀에서 언덕너머 50m 더 보내는 사람은 처음 봤다
인간도 아니다
마지막으로 흥주
아직 필드 경험이 얼마 되지 않았고 어제 과음한 탓에 내심 걱정을 했는데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첫 티샷임에도 드라이브 샷이 페어웨이 중간으로 잘 날아간다. 굿샷~이다.
이건 분명 예상 밖이고 기대 이상의 성과다. 이어지는 우드 샷, 어프로치, 퍼팅까지 ....흥주의 발전이 놀랍다
박수! 박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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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을 마치고 후반 서 코스 그늘집으로 들어오는 "토목팀"의 얼굴이 밝다
완길이가 전반에 버디3개씩이나 하고 성적은 2오버....
이런 상태라면 싱글은 당연하고 이러다 언더파 하는 것이 아닌가?
준원이와 기승이는 뚝심이 있어서 안 봐도 기본은 했을 거고
경철이 역시 오랜 경험으로 실력이 장난이 아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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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개한 봄,
바람 한 점 없이 햇빛을 가려주는 옅은 구름
가끔씩 얼굴에 시원함을 더해주는 촉촉한 빗방울과 그리고 친구들의 환한 웃음
파릇파릇 고개를 내미는 어린 잔디가 아직은 키 작지만 운동하기엔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고
기승이 말을 빌자면 오늘은 오랜만에 ’인간다운 삶‘을 산 하루였다.
따뜻한 부곡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불콰하게 진토닉이 취기를 더할 때 우리는 이런 모임을 자주 가지도록 하고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모임으로 확대하자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주말 부킹의 어려움 등으로 골프하는 친구들 다 초대하지 못했지만 일본이나 동남아, 제주도로 간다면 우리 친구들 다 모일 수 있을 것 같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 누군가를 위하여 준비하는 시간은 아름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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