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차 마지막 여행을 시작하다)
내일은 아침 먹고 바로 귀국해야 하니 오늘이 여행 마지막 날이다.
오늘 일정은 오사카 성, 동대사 관광코스다.
아침 풍경은 어제와 비슷하다.
레스토랑에서 아침을 먹고, 커피한잔을 테이크아웃해서 내려와 버스를 기다리고, 친구들은 니코틴을 보충하거나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눈다.
08:55 오사카 성으로 출발한다.
가이드가 오사카성 건축 비화와 막부시대 오다 노부나가, 토요토미 히데요시, 토쿠가와 이에야스의 성품을 울지 않는 종달새를 울게 하는 법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오다 노부나가 : 울지 않는 종달새는 칼로 목을 쳐 죽인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한 선구자이다)
토요토미 히데요시 : 어떻게 하든 종달새를 울게 만든다. (치밀한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다. 조선을 침략한 것도 일본 내부의 관심을 외부로 돌리기 위한 전략이었다 한다)
토쿠가와 이에야스 : 종달새가 울 때까지 기다린다. (기다림과 참을성이 예술의 경지에 이른 지혜로운 사람이다)
세 사람 모두 혼란한 전국시대의 일본을 통일한 사람들이이지만 일본 역사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성격은 달랐다.
리더십이란 정답이 없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리더십은 바뀐다.
(역사의 애환이 서린 오사카성)
09:55 오사카성에 도착했다. 오사카성은 쿠마모토성, 나고야성과 함께 일본 3대성의 하나다. 일본 도시는 칙칙하지만 오사카 공원은 지금 단풍이 한창이다. 소년 같은 마음으로 맑은 벚나무 단풍잎을 주워 입에 물어본다.
순웅이 친구는 어제, 오늘 새벽에 숙소에서 이곳 오사카성까지 8km 가까운 거리를 매일 조깅했다 한다. 역시 마라토너답게 그 힘이, 정성이 대단하다. 지금도 성내에는 조깅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오사카성은 토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가 일본을 통일한 후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1583년에 축성을 시작했고, 이곳에서 1592년에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의 성이니까 한국인으로서는 역사의 한이 서려있는 곳이다, 한편 권력의 흥망성쇠를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만일 오사카성이 없었다면 우리와 일본의 역사는 달라졌을까?
(일본 근대화와 발전의 자금줄은 한국 도공이 만든 도자기였다)
(여기서 잠깐 역사이야기를 좀 하자면)
일본이 근대국가로 발전하고 지금의 부를 이룬 배경에는 임진왜란 때 붙잡혀간 한국의 도공들이 큰 역할을 했다.
‘메이지유신이 조선에 묻다 : 일본이 감추고 싶은 비밀들’(조용준)에서 보면 임진왜란 때 강제로 끌려간 도공 심수관이 ‘사쯔마야키(사쯔마산 도자기)’를, 이삼평이 ‘아리타야키(아리타산 도자기)’를 완성했다.
일본은 이를 유럽 만국박람회에 수출해 떼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최신식 군함과 무기를 수입하여 부국강병을 이루었다. 도자기가 최신식 무기로 둔갑한 것이다. 일본 근대화와 발전의 기저에는 한국도공이 만든 도자기가 자금줄이 되었고, 그래서 일본은 이런 사실을 숨기고 싶은 것이다.
(난공불락의 요새도 무너진다, 역사는 영원한 것을 거부한다 )
오사카성에 들어가며 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거대한 해자와 석벽이다. 평지에 세워진 오사카성의 불리함을 보완하기 위해 성 둘레에 2중으로 깊게 파놓은 해자(인공 연못)와 커다란 바위로 높이 쌓아올린 석벽은 가히 난공불락이다. 마추픽추 석벽처럼 빈틈없이 아귀를 맞춰 매끄럽게 쌓아올린 석벽, 직벽이 아니라 약간 곡선으로 쌓아올린 구조가 조형미와 천수각의 위용을 더한다.
해자를 건너 오오테몬에 이르면 입구에 ‘타코이시’(돌에 새겨진 문양이 문어를 닮았다 해서 문어석이라 한다)라는 거석이 있다. 여기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이돌 1개 무게 108톤이라니 크레인도 없었을텐데 이런 거석을 어떻게 옮겼으며, 어떻게 성벽을 쌓았을까? 거석 일람표를 보니 이곳에는 126톤, 127톤, 150톤의 돌도 있다고 적혀있다.
오오테몬(大手門)과 사쿠라몬(桜門)을 지나니 오사카성의 상징인 천수각이 위용을 자랑한다. 지상 55m, 지상 8층 누각으로 아름다운 건축물의 조형미가 단연 돋보이고, 외벽 곳곳에 붙어 있는 금박을 입힌 장식이 찬연히 빛난다. 원래 목조건물이었으나 소실로 1931년 콘크리트 건물로 재건되었다고 한다.
천수각으로 들어간다. 천수각 안에는 토요토미 히데요시 당시의 유물과 역사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꼭대기 층 전망대에 오르니 동서남북으로 오사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푸른 숲과 강, 그 너머 펼쳐진 오사카 시내의 훤한 풍경에 가슴이 탁 트인다.
천수각 아래로 성을 둘러싼 해자가 보인다. 적의 침략을 다 내려다 볼 수 있었고 깊은 해자 안의 오사카성은 요새다. 그런 오사카성도 내전과 암투로 해자도 메워지고 성도 불탔다. 역사는 영원한 것을 거부한다.
꼭대기에서 내려오면서 층층의 내부를 관람하고 방문 스템프를 찍어둔다.
또 모일시간이다. 아직 둘러보고 싶은 곳이 많은데 시간이 촉박하다. 달리기를 해서 겨우 주차장에 도착하니 대부분 버스 안에 앉아 있다. 단체여행은 늦게 도착하면 다른 사람의 눈총을 받으니 주어진 시간마저도 다 못쓰고 와야 하고, 찬찬히 둘러볼 시간이 없는 것이 아쉽다.
11;50 여행 선물을 구입하기 위해 항구에 있는 면세점으로 간다. 그리 크지 않은 면세점인걸 보니 이 아마 단체관광객을 위한 면세점 같다. 모두 가족과 지인에게 선물할 낫또나 피부재생크림 등 선물들을 푸짐하게 산다. 나는 교회 다문화교실 외국인 친구들과 나누어 먹을 과자정도만 샀다. 가이드가 하나투어에서 주는 스킨 팩 영양크림을 하나씩 나누어 준다.
12:40 오늘 점심은 '스시'다. 1인당 초밥 9피스에 4인분 냄비 우동 1개.
스시의 나라인데 초밥위에 얹는 생선조각인 ‘네타’도 크기가 작고 .... 한국의 초밥집이 그립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나라(奈良)의 동대사로)
점심을 먹고 나라(奈良) ‘동대사(東大寺)’로 간다.
가는 버스 안에서 학창시절 키 순으로 정했던 학번을 자기가 알아서 외쳐보기로 한다. 51번 황근상, 50번 서호원 ... 난 4번 이었던가? 한준섭 선생님이 키가 비슷한 친구들끼리 한조로 만들어 주었으니 아무래도 같은 조 친구들끼리는 더 만나고 추억도 더 많다. (덕분에 儒草란 호도 주영이가 지어주었다)
나라(奈良)에 도착한다.
나라는 우리나라 통일신라시대쯤 일본 ‘나라국’의 수도였던 고도(古都)다. 도시의 건물들도 비교적 낮고 이곳엔 기와집들도 많이 보인다. 고속도로에서 내리자 왼편에 ‘본조사’라는 절이 보이고 시내 큰길가에도 3-4개의 절이 이어서 보인다. 고도답게 절이 많이 보이고 거리의 풍경들에서도 경주처럼 오랜 역사의 향기가 느껴진다.
키 큰 삼나무 가로수 터널을 지나 주차장에 도착한다. 쭉쭉 뻗은 키 큰 나무는 스기(삼나무)라 한다. 편백(히노키)와 삼나무(스기)는 잎을 보고 구분한다는 설명을 듣고, 친구들끼리 이 나무가 히노키냐 스기냐로 논쟁을 벌여본다.
숲길을 지나 동대사로 향하는데 큰 나무가 햇빛을 가려 좀 서늘하지만 피톤치드가 나와서 그런지 콧구멍은 뻥 뚫린다.
동대사가 사슴공원이라더니 공원 곳곳에 사슴들이 노닐고 관광객들은 먹이를 주며 사슴과 사진도 찍는다. 어떤 놈은 먹이를 달라고 코로 들이받기도 한다.
(한국의 사찰이나 문화재가 섬세함과 아기자기함이라면 일본은 규모다)
동대사(東大寺, 도다이지)는 751년 완공된 절이라하니 통일신라시대경에 지어진것 같다. 중학교 세계사 교과서에서 배웠던 절이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우선 어마어마한 규모와 높이에 놀라고, 단청을 하지 않은 검은 동대사 모습에서 오랜 역사와 세월의 흔적을 느낀다. 화재 후 1/3로 줄인 크기가 이 정도라니 원래의 동대사는 얼마나 컸을까 상상마저 안 된다.
절 내부로 들어간다. 세계최대의 목조건물과 청동불상이라더니 대불전에는 혼자서는 안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크기와 높이의 큰 나무기둥과 카메라 앵글에 다 담기지 않는 15m 비로자나 청동대불에 순간 압도당한다.
쭉쭉 뻗은 스기나무가 많은 일본이라 이 거대한 기둥이 하나의 목재로 된 통나무일까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여러 개의 기둥을 묶어 금속 띠로 결박해 놓은 것 같다. 기둥아래는 사람이 통과하면 액운을 쫓아 준다는 구멍 난 기둥도 있단다.
청수사와 동대사도 마찬가지지만, 한국의 사찰이나 문화재가 섬세함과 아기자기함이라면 일본은 규모다.
동대사 앞 고요한 연못속에도 단풍이 빨갛게 물들었다. 사슴과 인생사진을 찍고 다시 차에 올라 오사카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기 위해 떠난다.
(윤응환 박사의 경제특강)
오는 길 차안에서 응환이가 일본 경제특강을 한다. 어제부터 감기로 목이 잠겨 말도 제대로 안 나왔는데 내가 미리 준비해간 병원처방 감기약을 먹고 많이 좋아져 무료한 시간도 때울 겸 경제이야기를 좀 하겠단다. 역시 경제 전문가답게 환율과 경제에 관한 수준 높은 강의를 마치고, 지금은 엔화를 좀 사 모아도 될듯하다고 한다.
선곤 총무가 "친구들의 도움으로 여행을 잘 마치게 돼서 감사하고, 추억을 오래오래 간직하자"고 독려한다.
어느새 서쪽 하늘에 길게 띠구름이 드리워지고 이방 도시의 불빛들도 하나둘 켜진다.
이제 3박 4일 여행의 남은 마지막 코스는 저녁 소고기구이와 노래방에서 여흥을 즐기는 일이다.
일본 여행 내내 차가 밀리더니 오늘 역시 교통체증이 심하다. 가이드가 몇 번이나 식당에 도착시간을 늦추는 것 같다.
먼저 호텔에 사물을 내려놓고 가볍게 저녁식사장소로 이동한다. 식당 2층 입구에는 일반손님을 받고 우리 단체를 위해 안쪽 전부를 비워둔 것 같다. 동그란 드럼통 테이블과 인테리어가 우리나라 연탄구이 집 같은 분위기다. 무한리필임에도 소고기가 참 연하고 맛있다.
마지막까지 아껴둔 생명수도 정리하는 마음으로 넉넉히 내어놓고 마신다. 지금까지 식사 중 우리 입맛에 맞는 제일 맛있고 푸짐한 식사를 한 것 같다.
(열씨미, 오사카의 밤을 점령하다)
이제 도톤보리의 인파를 뚫고 걸어서 노래방으로 간다.
칸막이 없이 30명이 들어가고도 남는 하나로 된 큰 홀이다. 앞쪽에 무대가 있고 의자가 벽 쪽에 ‘ㄷ’자로 배치되어 있다. 여기도 “노미호다이(술 무한리필)”인데 2시간을 예약했단다.
정원수 회장이 마지막 인사를 한다. “우리의 만남이 어언 48이나 됐는데 이렇게 학창시절 가지 못한 수학여행을 나이 들어서오니 감회가 새롭다. 어렵게 추진한 행사지만 모두가 협조해 줘서 고맙고, 마지막까지 멋지게 잘 마무리 하고 모두가 즐거워하니까 다행이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씹어야 맛있다. 앞으로의 모임도 재미있게 활기차게 만들어 가자”며 건배를 제의한다.
이어서 선곤 총무가 “나이 들면 잘 삐진다. 이제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열씨미 살자”고 당부하며, 주특기인 500cc 맥주를 손도 대지 않고 이빨로만 물고 원샷하는 쇼를 보여준다.
우와 ~ 기인수준이다.
이때 여자분 두 분이 참석한다. (??) 오사카에 사는 준원이 초등학교 여자동기분과 친구분이라는데 나름 오사카에서 성공한 분들이라 한다. 메마른 사막 같은 남자들 세계에 여성 2분은 오아시스다.
스스럼없이 잘 어울리는 이분들 덕에 분위기가 한층 고조되고 분명 술도 몇 잔이나 더 마셨으리라.
(술은 쇠주로 마시고 춤은 고고로 춥시다)
두 여성분을 포함해 돌아가며 한곡씩을 부르고, 생맥주에 소주에 양주까지 아낌없이 제공되니 취기와 흥은 절정에 이른다. 친구들 모두 스크럼을 짜고 빙빙돌며 우리의 우정을 단단히 다진다.
일본에 왔으니 일본노래도 한곡 해야지.
선곤이는 ‘사찌꼬’를 불렀고, 난 ‘청춘시대(세이슌지다이)’를 불렀다. 고교시절 ‘푸른 시절’ 노래로 고고 춤을 췄다면 일본에는 ‘청춘시대’가 있다. 다이아몬드 스텝에 고고를 추며 학창시절의 추억속으로 깊이 빠져든다. 오늘 밤 우리는 오사카를 점령했다.
멋진 시간, 멋진 밤이었다. 오늘 노래방 비용과 양주는 민열이가 친구들을 위해 부담했다고 한다. 모두 고마운 친구들이다.
(낭만의 유혹 ... 딱 한 잔만 더 ... )
이제 숙소로 갈 시간이다.
몇몇 친구들은 옆길로 새서 도톤보리에서 한 잔 더 하고 갈 요량인가 보다.
도톤보리 다리 위에선 젊은이들이 돈을 받고 엉덩이를 맞아주는 게임을 하고 있다. 많은 구경꾼이 모인 가운데 한 청년이 돈을 받고 허리를 구부린다. 그러면 돈 낸 사람이 있는 힘을 다해 엉덩이를 힘껏 걷어 찬다. 인정사정없이 진심이다 ㅎㅎ. 저러다 다치기라도 하면 어쩔까 생각도 들지만 역시 젊음이 좋다.
마지막 밤인데, 술 한 잔 더하자는 친구의 너지(nudge)를 받고 도톤보리 강가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수로를 따라 죽 늘어선 야외 카페의 풍경이 낭만스럽다. 생맥주에 오징어구이, 꼬치 .... 가격도 안주하나에 5,000원 정도로 싸고 가벼워서 좋다. 밤 공기가 차다고 작은 난로까지 피워주니 멋진 풍경에 아늑함까지 더한다.
옆 테이블엔 외국인 1명이 생맥주 한잔을 놓고 강변 풍경을 열심히 스케치 한다. 친구가 가서 인사를 땡기고 합석을 한다. 이 친구는 이탈리아에서 왔는데 (화가는 아니지만) 오사카성, 신사 등 여행지의 풍경들을 노트에 스케치하며 나름 의미 있는 여행을 하고 있었다. 멋진 친구다.
여행지에서 이런 야외카페나 펍(pub) 에서 한잔하는 것은 낭만이다. 혼자 여행하면 한잔 하고 싶어도 어디 들어가기 뭐할 때가 있는데, 둘 이상이면 괜히 객기도 부리고 싶고 용기도 생긴다. ㅎㅎ
(우정 : 아무리 좋은 음식도 씹어야 맛있다)
4일차 아침.
오늘은 별도 관광스케줄은 없고 호텔에서 조식을 먹은 후 바로 귀국해야 한다.
부산은 서울친구들 보다 1시간 빨리 출발해야 되서 아침 일찍 레스토랑에 도착하니, 좀 더 자도 될 서울친구들이 인사라도 하고 보낸다고 벌써 나와 있다.
고맙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씹어야 맛있고, 아무리 좋은 동기들이라도 내가 먼저 마음을 내야 우정도 만들어진다.
이제 여행의 부산함과 들뜸을 끝내고 다시 익숙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야 할 작별의 시간이다.
부산팀 4명 때문에 대형버스를 움직일 수 없어, 부산팀은 서울친구들의 환송을 받으며 SUV 승용차 1대로 먼저 떠난다.
설렘을 안고 왔던 그 길을 되돌아 공항으로 가는 길.
우리를 환송하듯 오사카 하늘은 양탄자 대신 하얀 솜털 구름을 넓게 깔아두었다.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이다)
바다 위 탁 트인 활주로를 박찬 비행기는 일본을 밀어내고 한국으로 향한다.
‘사요나라 일본’,
‘여행은 새로워서 좋고, 내 집은 편해서 좋다.’
비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 소주한잔 하고 싶을 때 불쑥 전화해도 되는 친구, 김치냄새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반가이 맞아 주는 좋은 친구들과 함께 멋진 여행을 했다.
나이 들면 잘 삐진다.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열씨미 살자
참 좋은 인연, 멋진 친구들
멋진 여행도 했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친구'와 '인생'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가지게 되었다.
서로 이해하고 챙겨주며, 우리 남은 인생도 함께 하며 여행처럼 늘 새롭고 신나면 좋겠다.
“열씨미 친구들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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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우리나이 60중반, 돌아서면 까먹는 나이다.
그래서 이곳저곳 기록해 두어야만 까먹지 않는다.
이번 오사카 졸업여행은 어쩌면 우리들이 간직해야 할 마지막 추억일지도 모른다.
이 여행기를 기꺼이 적어본 것은,
그 추억이 가물 해질 쯤, 이글을 더듬어서 그때의 느낌과 추억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길지만 그냥 가볍게 읽어주길 바란다.
- 유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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