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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 옷

유초잡감

by 유초선생 2024. 3. 7.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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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오고 있는데 난 아직 가슴을 열지 못하고 있다
꽃샘추위 때라 기온도 들쑥날쑥해서 매일아침 머플러와 외투를 들먹이게 된다.    
머플러는 몽골 유학생에게 선물 받은 것인데 갈색으로  외투와도 잘 어울리고, 목에 감으면 너무 포근하고 아늑해서 지난겨울 나의 최애 아이템이었다. 

긴 겨울도 지나고 이젠 바람도 순해져서 머플러까지 매기엔 부담스럽지만 넥타이는 한 여름 오기 전까지는 매야한다.    

검정 계통의 양복에 홑 외투를 걸치니 월급쟁이 패션의 완성이다. 이게 남의 눈치를 봐야하는 월급쟁이 전투복이고 마음의 안전복이다.  

껍데기를 중요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직책과 직위에 맞는 묵시적 복장기준이 있다보니 추워도 두꺼운 패딩을 입지 못하고, 더워도 넥타이를 졸라매야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최악의 리더는 팀원들에게 얕은 물에서 발차기만 하도록 놓아두는 사람'이고, '유능한 경영자와 팀장은 직원들을 ‘한계상황’으로 내몰고 일부러 깊은 물속에 빠트리는 사람'이라고 한다. 

얕은 물에서 물장구나 치면 쉽고 편하지만 수영실력이 늘지 않는다. 반면 늘 한계상황에 내몰리면 당장은 힘들지만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때 생존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다.   

그런데.... 나폴레옹도 아니면서 “불가능이란 말은 쓰지 마라. 달나라에도 가고 화성에도 가는데 못할 게 뭐 있느냐?”며 서 부하직원들에게 했던 그 말들이 화장실 복도나 술좌석에서 가십이 되는것을 보면 과연 어떤 리더가 되어야 하는가에 의문이 들 때가 많다.

남이 아닌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기위해 모든일에 최선을 넘어 최대로 일했고 번아웃이 될 정도로 일해 왔다. 그러다 결국 공황장애를 겪고 10년 넘게 신경정신과 약도 먹었다.

노력하면 누군가 반드시 알아준다. 그래서 지금의 자리가 그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좋게 말하면 무한긍정이고 달리 말하면 자기 착취다.

이런내가 오늘 문득 ‘겉옷’이란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다  
회사는 과연 나에게 어떤 존재인가?
나의 삶의 터전인 회사를 떠난다면 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이제껏 나는 행복하기 위해 모든 노력과 희생을 다해 왔는데, 그 결과 지금 나의 행복의 수준은  어디인가?

오늘 넥타이를 매고 명함을 주고받고,  경비원의 거수경례를 받은 것은 오늘 내가 이 회사에, 이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이 회사를 떠난다면 그 명함은 전부 휴지통에 버려질 것이고, 나를 알아줄 사람도 나로부터 잔소리를 들을 사람도 없을 것이다. 

지금 내가 입고 이 제복, 이 명함은  그저 잠시 빌려 입은 남의 겉옷이다.
오늘은 아니더라도  언젠간 그 겉옷을 벗어야 할 날이 반드시 오고  그땐 이 포장지 같은 겉옷을 벗고 ‘자연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래 .. 지금 입고 있는 이 옷이 내 옷도 아니면서 멋부릴 이유도 없다. 교만할 이유도 없다. (인간의 본성으로 돌아간다면) 겉옷은 원래 어울리지 않고 몸에 맞지도 않는 옷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남의 겉옷을 입은 리더로서의 나는 지금을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현명할까?

남의 옷이비만 그래도 지금 내가 입고 있으니 내옷이고 옷값은 해야한다
그럼에도 겉옷 ... 포장지다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보다 섬기는 서번트리더십을 발휘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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