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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악기를 시작해야겠다.

유초잡감

by 유초선생 2025. 3. 31.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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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 전, 친구로부터 '색소폰 동호회 설립 3주년 기념연주회'에 참석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회원이래야 12명밖에 안되는데 오후 2시~6시까지 카페를 통째로 빌려 연주회를 한다고 해서  '뭐 이렇게 까지...'라고 생각했는데 회원님들의 열정은 그 이상이었다.      

1부에는 회원들의 색소폰 연주발표가 있고, 2부에는 참석한 지인들과 함께 어울림 한마당을 가지는데 아마 노래도 시킬 것 같으니 노래도 한곡 준비하란다.
나는 이런 것 별로 안 좋아 하는데 절친이라 거절 할 수도 없고, 결국 이왕 부른다면 기타를 연주하며 한곡 불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몇 년 전 친구가 "나는 색소폰을 시작했다, 너는 기타배우고, 너는 드럼배우고 ... 그룹사운드 같은 걸 만들어 은퇴 후에 같이 시간도 보내고 봉사도 하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이후 친구는 색소폰을 계속했고, 나머지 친구는 안하는 바람에 그 계획은 무산이 되었는데, 한 2년 후 친구가 색소폰 곡을 들려주는데, 유튜브가 아니고 본인이 직접 분 걸 녹음한 것이라 했다. 
‘뭐야? 이 정도 실력이었어?’  .... 부럽기도 하고 멋있었다. 
사실 친구는 1주일에 3~4일, 주말에도 연습실에 나가 연습을 할 정도로 연습벌레고 그 자체를 즐거워했다. 

그때 후회했다. 친구가 권할 때 같이 배울 걸..... 
그러나 이미 늦어버렸고, 그래도 악기 하나는 배워둬야겠다 싶어 친구 몰래 기타학원에 등록했다.
몰래 시작한 건, 하다가 그만 둘지도 몰라 소문을 내지 않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한편 내가 깜짝 놀란 것처럼 나도 친구에게 깜짝 실력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은 쉽지가 않았다. 고등학교 때 잠시 기타를 쳐보긴 했지만 이미 코드도 다 잊어버렸고, 손가락도 많이 굳었다. 
그래도 고등학교 시절 기타치며 고고추던 가락은 있어 금방 적응이 되었고,  선생님도 잘 한다면 이틀에 한곡씩 진도를 나갔는데.... 문제는 하이코드와 멜로디를 연주하는 것이었다. 
평범함 곡은 스트로크나 핑거주법으로도 대충 연주하겠는데, 멜로디 연주에서 손가락이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니 그때부터 스트레스가 생기기 시작했다. 

어디 전문가의 길이 쉬운가? 몇 년을 해도 잘 칠까 말까 한데, 겨우 2개월 배우고선 전문가처럼 전주나 노래에 멜로디까지 넣으려했고, 그걸 못 따라가니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즐기려고 했던 것인데 오히려 이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은다면 차라리 안하는 게 낫겠다 싶어 2달 만에 그만 두었다.

그런 내가 이번에 기타로 연주하고 노래하기로 마음먹고 혼자 연습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만둔지 1년이 지났는데 오히려 약간 자신감이 생기고, 뭔가 되는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제목은 임지훈의 ‘회상’, 존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 2곡이다.
회상은 리듬타기가 어렵지만 고상한 곡이고, ‘Take me home country road’ 는 경쾌하고 다른 사람들도 많이 아는 노래라 같이 부를 수 있는 곡이다. 

나는 리듬 감각은 있는데 악보 보는데는 아직 미숙해 한박, 반박 쉬고 들어가는 부분에서 주법과 자꾸 엉킨다. 
점심 먹고 30분 정도 산책하면서, 하나 둘 셋 넷 발걸음에 맞추어 빈손으로 치면 주법과 딱딱 맞아 떨어지는데 직접 기타를 잡고 앉으면 이게 또 잘 안 맞는다. 
할 수 없이 내 스타일로 악보 한 줄을 네 칸으로  나누고, 매 칸마다 가사와 주법의 up, down까지 표시하고 연습하니  이제 좀 맞아진다. 

1주일 동안 글쓰는 것도 책읽는 것도 포기하고 사무실에선 빈손으로 연습하고, 집에서도 30분 정도씩 연습하니 스트로크로는 이정도면 될 것 같고, 다음은 전주의 멜로디를 익히는 것인데, 그렇게 어렵진 않은데도 부드럽게 연주가 되지 않는다. 
어쩌랴, 멜로디 극복이 안되면 그 부분을 그냥 스트로크로 치면 된다고 생각해 버리니 부담은 적다. 

연주회 이틀 전인데 친구가 내빈 축사를 또 요청해 온다. 
한 친구는 그런 요청들이 불편한지 모임을 핑계로 빠져버렸는데 나는 진퇴양난이 되었다. 
이젠 기타연습은 그만두고 축사를 준비해야 한다. 
나름 글을 좀 쓴다고 해서 축사를 부탁하는데 대충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마 글을 쓰시는 분들도 그런 부탁을 들으면 불편하고 부담을 느끼셨을 것이다)
그리고 무슨 행사처럼 거룩하게 단상에서 프린트한 축사를 읽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이크만 들고 사람들 앞에 서서 원고 없이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 우리 나이에 같이 느낄 수 있는 이야기와 회원들 칭찬이나 듬뿍 해주는 것으로 하기로 했다.  
행사장에 도착하니 카페 각 테이블위에는 술과 음료, 과일, 떡, 안주, 먹거리들이 가득 차려져 있고, 무대위에서는 사전 색소폰 연습을 하고 있다. 
"어? 뭐지?" ....그 중 한 분이 내가 부르려고 1주일 간이나 연습했던 임지훈의 '회상'을 불고 있었다. 
와 ~ 멋지다. 나도 모르게 따라 불러보니 박자와 리듬이 딱 맞아 떨어진다. 

잘 됐다. 
원래 나는 기타치며 노래를 부르려고 했는데, 색소폰 연주회에서 합주도 아닌 기타독주를 하는 것은  아무래도 맞지 않을 것 같아 최종 기타를 가지고 오지도 않았는데, 다행히 색소폰 연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면 행사의 취지에도 맞고 감동도 될것 같았다.  
행사 시작 빵빠레가 울리고 시작하는 멘트가 나온다. 
사회자도 아는 여자분이기는 하지만 사회를 보는 건 처음 보았고, 공영방송 아나운서 뺨치는 미모와 예쁜 목소리에 순간 나도 깜짝 놀랐다. 이런 행사의 사회자로는 너무 과분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회장 부회장의 인사 후에 사회자가 다음 순서로 사회자가 나의 축사가 있겠다고 멘트를 한다. 
제일 구석자리에서 단상쪽으로 나가 마이크를 잡았다.
우선 ㅇㅇㅇ의 친구라고 소개를 하고,  “KBS 아나운서 출신 사회자님께서 축사라고 하셨는데 저는 축사를 할 만한 인물은 못되고, 몇 번 연습실에 방문했을 때 분위기도 너무 좋고, 회원님들께서도 따뜻하게 대해 주시고, 친구와 후배님도 계셔서 그냥 인사드리러 왔다”고 준비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도 은퇴의 시기에 이르다 보니 노후문제, 은퇴 후의 삶에 대하여 관심이 많고 관련 유튜브도 많이 본다. 거기 나오는 이야기의 대부분이 은퇴 후에 꼭 필요한 4가지가 돈, 건강, 친구, 취미라고 한다. 
저는 그 취미 중에 가장 좋은 취미가 '악기를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악기를 연주하면 시간 보내기 좋고, 동호회를 통해 친구를 사귈 수 있고, 늘 배우면서 자기계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면서 친구가 색소폰을 시작했던 이야기, 몰래 기타를 시작한 이야기, 그때 나도 색소폰을 시작할 걸 후회 했다는 이야기를 이어갔고,   

"듣기로는 이곳 회원님들 중 공기업, 대기업 임원 하셨던 분도 계시고, 저보다 훨씬 연배이신 분도 많다고 들었는데(회장도 82세), 그 나이에 색소폰을 시작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 저는 콩나물 대가리를 극복 못해 2개월 만에 기타를 포기했는데 회원님들은 얼마나 노력을 하셨기에 이렇게 잘 부실까 생각하니 존경스럽다"고했다.   
'사람은 배우는 동안에는 성장하고, 성장하는 동안에는 늙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러니까 회원님들은 이 나이에도 정말 멋쟁이로 젊게 사시는 것 같다"고 치켜세웠다.
"프랑스에서는 중산층의 기준이 돈만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의 수준도 있어야 하고, 거기다 스스로 다룰 수 있는 악기하나는 있어야 중산층 소리를 듣는다. 이 말은 결국 악기가 자신을 삶을 눈부시게 하고, 풍요롭게 한다는 뜻이다. 

커피를 만드는 전문가를 ‘바리스타’라고 한다. 저는 회원님들 같은 색소포니스트를 ‘소리를 만드는 바리스타라고 부르고 싶다. 같은 곡을 연주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담백한 아메리카노 같은 맛이 나도록 연주하고, 어떤 사람은 부드러운 카푸치노처럼, 어떤 사람은 달콤한 마키아토 같은 맛이 나는 연주를 한다. 듣는 사람 역시 어떤 곡은 담백하게, 어떤곡은 부드럽게, 어떤 곡은 달콤한 마키아토처럼 들린다. 
그만큼 색소폰은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을 깊이 울리는 마성같은 매력이 있어 우리나이에 딱 하기 좋은 악기"라는 칭찬도 더했다. 

겨우 3분 정도인데 말이 길어졌는지 친구가 두 손으로 가위표를 한다. 마쳐야  될 것 같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해 아직 봄이 오려면 멀었으려니 했는데, 어제 오늘 갑자기 벚꽃이 활짝 피어버렸다. 어쩌면 우리 인생의 황혼도 이처럼 생각보다 빨리 올수 있다. 오늘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다. 우리 모두 이 시간을 함께 즐기고, 함께 설레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는 말로 마무리를 했다. 

다행히 막힘없이 이야기를 했던 것 같고, 우리나이에 같이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했다.  (좀 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이야기가 누구의 가슴속에는 와 닿았을 것이고, 결국 나와 이 이야기만 나중에도 기억될 것이다.  

모두 60대를 넘은 나이고 70대 중반, 80대까지의 멤버들이다. 한때 각자의 위치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사람도 있고, 남편을 잃고 우울증을 달래기 위해 자식들의 권유로 온 사람도 있다. 
나름 경지에 오른 사람, 아직 초보인 사람도 있지만 베이스, 알토, 테너가 함께 연주하는 합주는 (수준을 떠나서) 각 색소폰이 내는 화음이 어우러져 거선의 기적처럼 가슴깊은 곳까지 울려왔다. 색소폰은 역시 마성이 있다. 
이렇게 1부 연주가 끝나고 잠시 휴식을 가지면서, 회상 연주자에게 다가가 "혹 제가 노래를 하면 선생님의 색소폰 연주에 맞춰 제가 회상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했더니 그분도 동의했다. 
아쉽게도 이웃의 민원이 걱정되어 많은 노래를 할 수 없었고, 나역시 준비한 노래를 부르지는 못했다.

내가 늘 했던 말이다
“사람은 배우는 동안 성장하고, 성장하는 동안 늙지 않는다”
“불량 노인이 되자”

2부 사회를 본 후배와 한 여성분은 이번 연주회를 위해 특별히 무대복까지 맞추었다고 한다.     
회원 모두 대단한 열정이고. 내가 보기에 팔팔한 청춘이다. 
이렇게 늘 배우는 자세로 살면, 분명히 자신도 성장할 것이고, 성장하는 동안에는 나이가 80이든 90이든 100세든 늙지 않을 것이다. 

나도 불량노인이 되려고 한다. 
청바지를 입고, 펍 에서 생맥주를 마시고, 외국어를 배우고, 여자 사람친구도 사귀고, 악기를 배우고, 봉사도 하고, 글도 쓰고, 철학적 사고도 깊고, 지갑도 잘 열고, 배낭하나 짊어지고 훌쩍 혼자 해외여행도 떠나는 멋쟁이 불량노인으로 말이다.  

그리고 다시 기타를 시작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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