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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반나절 쯤은 혼자 시골 길을 걸어보자.

유초잡감

by 유초선생 2025. 3. 31.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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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때를 따라 피고 지고, 흐르고, 풍화하고 쉬엄쉬엄 순응하며 사는데, 우리는 늘 조급하다. 
휴대폰이 잠시라도 없으면 불안해하고, 태풍으로 TV가 잠시 안 나오면 바로 관리사무소, 유선방송 등에 연락한다. 어차피 조치가 안 되면 안 나올 거고, 조치가 끝나면 바로 나올 텐데도 말이다. 
식당에 가서도 대기 줄이 길면 발걸음을 돌리고, 들어가서도 음식이 늦게 나오면 자꾸 눈길이 주방쪽으로 간다.    
모두가 조급하고, 참을성도 없고, 이해심도 없다. 

하지만 이 땅에 살면서도 전기세, 수도세도 내지 않는 사람도 있다 
자연인처럼 전기도 없고 수도도 없이 살면 내야 할 세금이 없는 것이다. 
자연 속에 살면, 조급할 것도 부딪힐 일도 없다. 그런 환경 속에서는 결국 자연을 닮은 삶을 살 게 되는 것이다.  

나도 은퇴를 앞둔 시점이다 보니 삶이란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노후문제, 은퇴 후의 삶, 후회 없는 삶, 나답게 사는 삶. 

무엇이 나를 나답게 만드는가?
좋든 나쁘든 나를 가장 잘 표현하고, 외모든, 생각이든, 능력이든 나의 특징이 흠뻑 묻어있는 나만의 비린내를 풍기며,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사는 것이 나 답게 사는 것이고, 나다운 것이다. . 

전기세, 수도세도 안내는 사람 중에는 강원도 산골, 산 위 오두막을 빌려 홀로 사셨던 법정스님도 있다.   
요즘처럼 나서기 좋아하고, 자랑하고 과시하고 싶어 안달이 난 세상에서 침묵과 무소유를 지킨다는 게 어려울 텐데, 고집스럽게 자신만의 삶을 사신 스님이다.  

세상에, 자연에 피해를 주지 않는 맑고 향기로운 삶을 사셨기에, 스님의 글도 아름답지만 그의 삶 자체도 수필이다.
글쟁이가 되고 싶은 사람은, 법정스님의 맑고 향기로운 글들을 꼭 읽어보면 좋겠다. 

내 컴퓨터 앞에는 마음을 다스리는 글이 포스트잇으로 붙어있다. 
맑은 영혼, 여유, 
긍정의 언어, 원영적 사고, 
철학적 시선으로 내면의 근본을 바라보라.

이 바쁘고 조급한 세상, 특히 정치적으로 혼탁한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순수한 나로 존재하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점검하고, 깨우치고, 반성하기 위해서라도 매일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진정한 자유는 구속당하지 않는 것이다. 구속은 갇히는 것이다. 
조직이든 사고(思考)든 어떤 한계 안에 갇히는 것이 구속이다. 
더 배우고 더 이루어야겠다는 욕망, 더 가져야한다는 욕심, 남에게 잘나 보이려는 위선, 좋은 집, 좋은 차, 명품, 과시욕, 명예욕, 권력욕 ...이 모든 것이 다 나를 구속하는 것들이다. 

또 세상의 이슈를 나의 이슈로 만들어 사생결단의 자세로 부화하고 뇌동하는 것도 스스로 한계를 만드는 것이고. 스스로 거기 갇히는 것이다.  
정신적 포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허영과 사치, 욕망의 노예뿐만 아니라, 관습과 이념의 노예가 되어서도 안 된다.  
그런 구속을 피하는 길은 그것들의 불필요함, 무상함을 인식하는 것이고, 그런 욕심과 욕망을 통제하고, 절제하고, 버리는 것이다. 
그럴 때 진정한 무소유의 자유가 얻어진다. 

고요함, 잔잔함, 부드러움, 그윽함, 맑음, 향기로움, 자연의 맛과 멋, 감사함, 걱정 없음, 두렵지 않음, 이해, 양보, 삶에 대한 근원적 깨달음, .... 
이것들이 행복의 재료들이고 레시피다. 
이것들은 내가 이미 가지고 있거나, 돈을 들이지 않고도 자연에서, 마음가짐으로 거저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난 과연 전기 없이 살 수 있을까?
글쎄 어렵긴 하겠지만 버틸 만은 할 것 같다. 요즘은 TV나 유튜브 때문에 책도 많이 읽지 않는데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라, 전기가 없고 할 일이 없으면 책을 읽고 글을 쓰면 된다. 
지난번 50권의 책을 당근에서 얻어놓았고, 읽었던 책을 다시 읽고 그걸 토대로 글을 쓰면 하루도 잘 갈 것이고 심심해 죽지는 않을 것이다.

이론적인 것, 관념적인 것, 피상적인 것에서 벗어나 우리는 본성으로 돌아가야 한다 .
단,사,리(断捨離) ... (가급적) 끊고, 버리고, 멀리해야 한다.
그래야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자연에 가까운 자신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 
그래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만의 속도로, 나답게 살 수 있다. 

모든 것은 마음으로부터 온다. 
산속에 홀로 살아서 외로운 것도 무서운 것도 아니다. 

도시의 환한 불빛 속에서도 외롭고, 사람이 많아도 외롭고 두렵다.
생생 달리는 차들이 들이 받을까 두렵고, 폭력배, 사기꾼, 시비가 생길까 두렵고, 주식이 폭락할까 두렵다. 
사람들이 내마음을 몰라주니 외롭고, 외로워서 술을 먹고 신나서 술을 먹어도, 돌아오면 또 뭔가 부족한듯 허전하다.    
그래서 다른 무엇을 또 찾게 되고, 빨리 찾으려니 조급해지고, 찾은 들 또 부족함을 느낀다.      
외로움도 허전함도 다 욕심에서 나온다.

도시의 휘황찬란한 불빛은 두꺼운 화장이고 욕망을 부추기는 것들이다. 
그래서 나는 골목길 걷기를 좋아한다. 
골목에서는 그곳의 속살을 볼 수 있다. 삶의 이야기가 있고, 삶의 주름들이 보인다. 
낮은 담장너머로 널린 빨래, 깨어진 항아리에 심은 화초. 벽에 기대둔 농기구, 웃자란 정원수
햇살이 가만히 내려않고, 바람이 그물망 속 생선을 말리는 그런 화장기 없는 얼굴이 나는 좋다. 

봄이 성큼 다가와 있다. 
봄꽃들이 다 지기 전에, 반나절쯤 시골길을 한번 걸어보면 어떨까?
따스한 햇살, 매향이 묻은 부드러운 봄바람을 즐겨보고, 
잠을 깬 개미들의 행렬, 벌 나비가 꿀을 빠는 모습도 보고 오면 어떨까?

혼자 떠나면 더 좋다. 
천천히 자신을 만나고 자신과 대화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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