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새해가 밝았다.
재야의 종소리가 울리고, 1초 상간에 2024년이 2025년이 되고, 나이도 한살 더 먹었지만 특별히 다름이 느껴지거나 변한건 없다.
TV방송도 그 장면 그대로 이어지고, 나도 작년에 앉은 자세 그대로다.
하지만 새해의 바뀜을 직접 몸으로 느끼는 건 2025년 새 다이어리를 적을 때다.
2024년 묵은 다이어리는 정리해 보관하고, 2025년 새 다이어리 첫 페이지에 첫 기록을 적을 땐 왠지 경건해진다.
보통 새해의 다짐들은 다이어리 표지 대면에 적어둔다.
다이어리를 펼칠 때 마다 먼저 눈에 보이도록 하여 늘 각오를 새롭게 하기 위함이다.
새 다이어리 첫 페이지를 쓰면서 바른 글자로 또박또박 적는다. 그리고 다이어리 갈피에 ‘정성들여’라는 포스트잇까지 붙여둔다.
지난 다이어리들을 보면 처음엔 또박또박 적다가 어느 정도 지나면 작심삼일이 되었는지 날려 쓰게 되었는데, 올핸 처음의 그 마음이 연말까지 그대로 이어지길 바라서다.
난 올해 특별히 달성해야할 목표를 세우지 않았다.
그저 “더 맑게, 더 밝게, 더 깊게" 만 적어두었다.”
가볍게, 즐겁게 살고 나를 보다 완성형에 가깝도록 만들어가자는 부담 없는 다짐 정도다.
사실, 올해도 목표를 세워 도전할 뻔 했다.
한국어 교원자격증 취득을 위해 지인으로 부터 건네받은 사이버대학 입학원서를 두고 몇일을 고민하다 최종 포기했다.
이미 그보다 높은 학위가 있어 편입하면 2년 안에 끝낼 수도 있지만, 그래도 48학점~60학점을 이수하는건 쉬운 일은 아니다.
3시간짜리 16과목이나 20과목을 들으려면 시간과 끈기가 필요하고, 제대로 된 공부를 하려면 책도 많이 읽어야 한다.
물론 성적이나 레포트 이런 것엔 자신이 있지만, 뭔가 시작하면 최선을 다하는 내 성격에 2년간 또 스트레스 속에 살 걸 생각하니 굳이 자신을 학대할 이유가 없어서다.
나는 올해로 만 65세가 된다. 공식적으로 고령층으로 분류되고, 기초연금 수령자격이나 지하철 무료이용도 가능하다.
게다가 아직 현역으로 일하고 있는데 왜 이런 무리를 하려는지 모르겠다.
자격증을 딴 들 물리적 나이로 볼 때 써먹을 시간도 없고, ‘어서 오세요’ 하고 불러줄 곳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물론 내가 좋아서 할 수는 있겠지만, 취미도 아니고 돈과 시간과 노력이 들고, 무엇보다 이것 때문에 많은 것을 포기해야하기 때문이다.
지난 달 일본친구가 선물해준 소설책《커피가 식기전에》의 번역을 시작했는데 (내 일본어 실력이 부족해서)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특히 의성어, 의태어, 일본식 외래어는 사전에도 나오지 않아 구글링에 이미지 검색까지하며 뜻을 찾아내는데 엄청 애를 먹는다.
물론 출판 할 것도 아니고 일본어 공부차원에서 시작하는 것이기에 속도는 느려도 재미는 있다.
만약 자격증 취득을 위해 사이버대학에 등록하게 되면 이런 것들도, 친구들과 놀러다니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이 포기해야 할 판이다.
그래서 올해는 특별한 목표나 계획 없이 그냥 인생을 가볍게, 즐겁게,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 한 해로 정한 것이다.
그런데 새해 첫날 시간적 여유가 좀 생기자 갑자기 “뭐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매달리고 파고 들어야 정신도 빠짝 들고 성취하는 재미도 있는데, 갑자기 생긴 여유에 괜히 불안한 마음마저 든 것이다.
무엇이든 해야 하는데 손에 잡을 것이 없으니 표류하는 느낌,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느낌.
“왜 이러지..?.. ?”
나의 고질병이다.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고, 결과를 만들어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에 이런 여유가 많이 낯설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어학공부를 해도 되겠지만 이건 나의 궁극적 목표가 아닌듯한 느낌이 자꾸 든다.
.........
“아니다, 올핸 천천히, 가볍게 살기로 했잖아”
정신을 차리고, 이런 마음을 더 확고하게 못박아 두기 위해 책장 속에서 책을 꺼낸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난 책을 읽을 때 꾹꾹 눌러읽고, 밑줄까지 그어두기 때문에 다시 읽기 편하다.
마음을 울리는 문장이나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하는 혜안, 지천의 단어들을 엮어 아름다운 문장으로 만드는 언어의 연금술에 반해 거기도 밑줄을 긋다보니 밑줄이 없는 페이지가 없고, 때문에 밑줄만 읽어도 한권을 제대로 읽는 셈이 된다.
저자는 말한다. “나는 결심했다, 이제부터 열심히 살지 않겠다고!”
배낭하나 메고 세계여행을 하는 사람들, 캠핑카를 몰고 전국을 여행하는 사람들,
나도 언젠가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고 늘 말해왔다.
지금까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공부도 많이 했는데, 더 이상 쓸데없는 지식 따위나 채우려 하지 말고, 뭘 이루려 애쓰지 말고, 좀 천천히, 가볍게, 즐기면서 살면 안 되는 걸까?
밤잠을 설치며 죽도록 공부해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회사에 취직했지만, 치열한 경쟁에 번 아웃이 되도록 일하다 지치고, 병들고, 스트레스 받고, 과로사에 자살까지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공부도 안하고 빈둥거리며 노는 것 같은데도 잘 먹고, 재미나게, 잘 사는 사람도 있다. 누가 제대로 된 자신의 인생을 사는 사람일까?
인생은 공평하지가 않다.
열심히 산다고 해서 그에 상응하는 보상과 행복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포기하지 말라”가 아니라 “포기하라”
포기하라는 곧 다른 선택이고 적극적인 행동이다.
'욕심'을 버리고 '만족'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 보라. 몸이, 마음이, 삶이 날아갈 듯 가볍고 행복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세상에는 많은 길이 있다. 남들이 다 가는 큰 길만이 길이 아니고,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일지라도 내가 걸으면 그게 또 길이 된다. 자신만의 삶의 방식대로 살믄 되는 것이다 .
만약 올해 학부에 다시 등록했다면 나는 지금 이시간도 인터넷을 뒤지며 여러 가지 자료를 찾느라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것이다.
포기해버리니 마음 편하다. 내가 그걸 포기했기 때문에 이렇게 아무 글이나 긁적일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도전하는 용기만큼 포기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하마터면 올해도 열심히 살 뻔 했다. ㅎㅎ
https://youtu.be/SNI86TZkrwc (dust in the w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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