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시골의 삶은 참 궁핍했다.
몇 마지기 되지 않는 토지 소산물로 많은 식구 양식하기도 모자라는 판에
자식들도 제대로 공부시키는 것은 애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미술시간이 제일 싫었다.
도화지, 크레용, 물감을 준비해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해결방법은 그냥 안가지고 가는 것뿐이었다.
소풍도 반갑지 않았고, 수학여행은 언감생심이다.
운동화도 중학교 들어가서 처음 신어봤고, 등교 10리길은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이런 상황들에 대해 도움을 줄 사람도, 해결할 방법 자체를 몰랐고 없었다.
늘 헌책에 전과나 수련장도 없었지만, 머리는 좋아서 반에서 늘 1-2등은 했다.
그 덕에 수업료가 전액이 면제되고, 교복.책까지 국비로 지급되는 국립특목고를 지원해 서울에 유학을 하게 되었으니 결과적으로 영 꼬인 인생은 아니었다.
돌아보면 참 힘든 시절이었지만, 한 번도 그 시절을 원망해본 적이 없고, 그냥 그때는 다들 그랬으니까로 받아들였다.
자식 뒷 바라지 못한 부모님 마음은 얼마나 더 아팠을까?
그게 나이 전부이고, 운명이었다.
그런 시절을 겪다보니 나는 늘 공부에 한(恨)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인지 나는 유달리 책과 종이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언제든지 메모가 가능한 종이가 있어야 안심이 되고, 책도 종이책만 읽는다.
(지금은 그런 버릇을 버렸지만) 하물며 신문에 끼워져 오는 광고지도 버리지 못하고 뒷면을 이면지로 썼다. 광고지는 아트지라 매끌매끌해서 볼펜으로 쓰면 잘 써지고 쓰는 재미가 있다.
남들이 보면 궁상맞다 할지 모르지만,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아끼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한(恨) 이 집착으로 바뀐 것일까?
종이를 만지면 마음이 편안하고, 책이 많으면 부자가 된 느낌이다.
지금도 손 닿는 곳에 책이 없거나, 한권의 책 읽기가 끝날 때쯤 다음 읽을 책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왠지 불안하다.
그래서 책은 다 읽어버리는 것이 두려워, 몇권의 책을 두고 나누어서 읽기도 한다.
이후 직장을 다니면서 그때 못한 공부를 시작했다.
다들 공부가 힘들다고 하지만, 나는 공부할 때의 내가 가장 나답고 행복하다.
그것이 내가 잘하는 일이기도 하다.
어쨌든 주경야독으로 학부, 석사, 박사까지 마치고, 최고경영자과정도 2곳이나 했다.
어릴 적 한(恨)이 되었던 그 공부를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원도 한도 없이 했던 것이다.
“이만하면 됐다”
이제 60 중반이니, 읽고 싶은 책 많이 읽고, 아무 글이나 투닥거려 보는 재미로 살아도 되는데, 마지막으로 뭔가 조금 더 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
은퇴 후 일본에 유학해서 하고 싶은 공부를 좀 더 하고 싶다.
굳이 지금의 전공과 관련 없어도 되고, 돈 버는 일과 관련 없어도 상관없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아내에게 농담 삼아 말을 꺼내 봤더니 “당신 하고 싶은 데로 하..”란다.
내가 아는 사람중에 명문대를 나와 석사를 2곳이나 하고, 박사를 하고, 교수도 했으면서도 은퇴 후 다시 방통대에 입학하여 문학공부를 하는 분이 있다.
이걸 (지적 혹은 보여주기식의) 욕심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자기의 삶을 사는 멋진 사람이다. (물론 학비에 대해서는 부담이 없는 분이다)
동기 한 사람이 내게 사이버대학 정규과정에 입학하여 한국어교원자격증을 취득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나도 교회 다문화사역을 하면서 한글을 가르치고 있지만, 세종학당(특히 해외) 등 공공기관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를 가르치려면 자격증이 필요하다.
공부란 건 일단 돈을 내고 입학을 하고 나면, 그 다음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
스트레스를 받든, 성적이 좋든 나쁘든 시간이 지나면 결과물이 나오는 게 배우는 과정이다.
만약 입학한다면, 내 성격에 또 죽을 동 살 똥 할 것은 뻔하다.
아내에게 모집요강 브로슈어를 보여줬더니 이번엔 ‘NO’다.
그러다 아파서 병원가도 자기는 책임을 안지겠다는 이야기다.
나는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사람은 배우는 동안에는 성장하고, 성장하는 동안에는 늙지 않는다.”
늘 배우려고 하는 나는, 지금도 정신적으로 성장하고, 꼰대소리를 듣지 않는다.
내가 한국어교원자격증을 취득해 볼까 하는 것도, 노후를 어떻게 젊게 살고, 작은 수입이라도 창출되면 더 좋고, 아니더라도 은퇴 후에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물리적인 나이를 생각하면, 자격증을 취득한다 해도 그런 일자리가 주어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젊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우선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객관적, 실체적으로 냉정하게 분석해 봐야겠다.
내 나이 60 중반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 중의 하나다.
가족 모두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돈도 크게 들지 않고, 시간이 가면 무조건 답은 나온다.
하면 열심히 해야 하고, 내 성격상 스트레스 받을 건 뻔하다.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다.
나이가 있는데 자격증을 활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활용을 못하더라도 나의 글을 쓰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선택하면 포기해야 할 것들도 많다.(책읽기, 글쓰기, 세계여행,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배우고 가르치는 동안에는 나는 늙지 않을 것이다.
바램처럼 몸과 열정이 과연 따라줄까?
스스로를 궐기시키기 위해 혼자 이런 슬로건을 외쳐본다.
'80까지 배우고, 90까지 가르치자' ....
그러면 나는 90이 되어도 빛이 나는 멋쟁이 노인이 되어있을 것 같다.
나의 이런 용기가 무모함을 택할지, 나약함 택할지 아직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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