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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면 가볍다.

유초잡감

by 유초선생 2024. 9. 26.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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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방 책상아래 뚜껑달린 스텐 쓰레기통이 있다. 
박스 같은 큰 쓰레기야 생기는 즉시 재활용바구니로 가지만, 책상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라야 아침저녁 먹는 약 봉지 껍데기, 메모를 하고 찢었던 종이 쪼가리 정도다. 

쓰레기가 어느 정도 차면 버려야 하지만, 이것들은 냄새도 나지 않고, 부피도 작아 쓰레기축에 끼지도 못한다.
그러다 보니 다 찬 것 같지만  쑤셔 넣으면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더 들어가기 때문에 쓰레기통이 꽉 찰 때까지 기다렸다 버리게 된다.  

그런데 쓰레기라고도 할 수 없는 작은 것일지라도 그걸 쓰레기통에 넣을 때 마다 눈과 마음은 ‘많이 찼네' '비워야 할텐데..'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 때문에 마음이 쓰이고, 무언가 갑갑함을 느끼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제는 버릴때가 되었다 싶어 책상 쓰레기통을 비웠다.  
이게 뭣이라고 ..... 열 발, 스무 발만 가서 큰 쓰레기통에 버리고 오면 되는데 왜 이런 걸 미뤘을까?
이게 뭣이라고 ..... 작은 쓰레기통하나 비웠는데 마음이 이렇게 깨끗하고, 여유롭고, 넉넉하다니....    

신기하다. 버리니 시원하다.
법정스님의 「무소유」와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를 읽으면서
이 하찮은 쓰레기통 하나에서 비움의 아름다움과 지혜를 깨닫는다. 
나도 버리는 걸 되게 아까워하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신발장, 옷장, 차 트렁크, 책상 서랍안, 창고 .....
새것도 있고, 아직 쓸만하고, 언젠간 쓰겠지 하며 버리지 못하고 쌓아둔 것이 산더미다.  
떠나간 사람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가슴에 붙잡아 두는것도 마찬가지지 않을까?

요즘은 비우는 연습을 한다. 
1년에 한번도 안 신은 신발, 2년에 한 번도 안 입은 옷, 트렁크에 비상용을 비치해둔 잡동사니, 그리고 시절인연들까지..
눈 딱감고 버려버린다.
버리러 갈때는 좀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만,  버리고 돌아올때는 속이 시원하다.
이 모든게 어쩌면 욕심의 찌꺼기다. 
하물며 부, 명예, 권력, 지식, 사랑, 인간관계 등 에 대한 욕망도, 집착도 
비우니까 시원하다, 가볍다. 
그 빈 자리엔 다시 무언가로 채울 수 있다.

우리 인생도 결국 비워야 채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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