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여름은 참 더웠습니다.
역대급 폭염이라더니, 체감온도 35도 이상인 폭염 일수가 25일로 지난 30년 평균인 8.8일보다 훨씬 많고요,
연속 열대야 일수 36일, 지난 50년 대비 평균기온도 1.3도 상승, 8월 4일엔 여주 금사에서 최고기온 41.6℃를 기록했다니 과연 역대급 폭염은 맞는 것 같습니다.
겨울에 춥고 여름에 더운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한편 그 빈도와 강도가 이전과 달라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재난으로 이어질까 내심 걱정도 됩니다.
그런 더위도 일본을 강타한 태풍 '산산' 영향인지, 아니면 가을이 오려는지
이제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 좀 살 것 같습니다.
북쪽 뒷 베란다 창을 통해 남쪽 앞 베란다로 빠져나가는 바람이 시원합니다.
냉동기의 원리처럼, 응축된 공기가 좁은 문을 통해 넓은 문으로 빠져나가며 팽창되다 보니 풍속이 빨라지고 공기도 시원해져 이 바람은 정말 가을바람이라고, 가을이 저만치 오고있다고 우기고 싶습니다. ㅎㅎ
지난 토요일엔 아버지 산소 벌초를 하고, 참석한 7남매 모두에게 추석선물까지 다 전달하고 나니 왠지 숙제를 다한 듯 개운합니다.
일요일엔 게으름 좀 부려도 되겠다 싶어 밀린 잠 뿌리를 뽑아버리려고 늦게까지 등짝을 붙이고 있는데, 기어코 일찍 눈을 뜬 햇살이 다가와 깨우네요.
밤 공기도 시원해진데다 벌초로 피곤해서인지 '잘 잤다'는 느낌으로 일어나 창문을 여니,
금정산과 아파트 꼭대기위에 떠오른 아침 햇살이 쏜살같이 달려와 몸을 밀치고,
다른 햇살줄기는 아파트 화단의 넓고 두꺼운 푸른 나뭇잎들 위에 떨어져 반짝입니다.
공허의 파란 하늘을 날아오면서 날이 서고, 그 파람까지 묻어와서인지 오늘 아침햇살에선 날선 푸른빛도 보입니다.
모가지를 빼고 하늘을 보니 흰 구름은 말간하늘에 뭉게뭉게 피어있고,
낙동강물은 햇살에 비늘을 반짝이며 평온하게 천천히 바다로 흘러갑니다.
요즘은 황사도 없고, 이따금씩 내린 국지성 소나기가 매연과 공해를 씻어내서인지,
공원과 아파트단지의 푸른 나무들이 경쾌하게 몸을 흔들며 산소를 토해내는것이 보입니다.
나무들도 이 아침이 참 좋은가 봅니다.
모두가 생의 의미로 활기찬, 창조의 아침입니다.
조용한것 같지만, 뿌리를 내리고, 산소를 만들고, 열매를 맺고, 익힙니다.
스스로 자라 자신을 만들고, 서로에게 필요한 것들을 나눠줍니다.
나무건, 강이건, 사람이건, 활동과 창조를 멈추면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살아있기 위해, 늙지않기 위해 잠에서 깨고, 마음도 깨웁니다.
눈을 감고 아침 햇살을 안아봅니다
산소를 가득담은 시원한 산들바람에 얼굴을 맡깁니다.
아~~ 정말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예전 같으면 이때 쯤 딸래미 피아노 소리가 들리고, 난 커피한잔을 내려 들고 행복을 느꼈을 텐데, 딸이 시집간 이후론 피아노 소리는 들을 수 없네요.
그래도 이젠 '나이 듦의 여유'가 또 다른 행복을 만들어줍니다.
산들바람의 부드러움 느껴보셨지요?
순면의 부드러움, 아득한 동화, 포근한 졸림.
목구멍을 깔끔하게 내려가는 물김치의 삼빡함.
찌든 육신, 찌든 영혼이 아니라,
이런 맑고 깨끗한 영혼이고 싶습니다.
술 취함이, 방탕함이, 흐릿함이 아니라
아침 햇살, 시원한 산들바람 같은 밝고 부드러운 삶을 살고 싶습니다.
목적에, 사람에, 이념에, 종교로부터도 구속당하지 않고 싶습니다.
물질, 권력, 명예, 사랑에 욕심부리지 않고,
매달리지 않고, 얽매이지 않고, 기대지 않고 싶습니다.
타성에 젖지않고,
남들에게 보여주려고 거죽의 일에 신경쓰지 않고,
나아가 나의 생각과 행동과 생사에도 구속받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부드럽고, 시원하고, 자유로운.....
저 산들바람처럼 말입니다.
제자가 "해탈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스승은 "누가 너를 묶어놓았느냐?"고 답했습니다.
내 스스로 묶고, 내 스스로 차꼬를 찼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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