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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에게도 긍휼을 ...

유초잡감

by 유초선생 2023. 12. 18.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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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쯤 전에 누가 성냥개비 반 만 한 물고기 몇 마리를 주길래 어항 속에 넣고 길렀다,
‘구피’종인가는 모르겠지만 하도 작아 그냥 ‘꼬물이’라 불렀다.  
얼마나 번식을 잘 하는지 금방 금방 새끼를 낳는데도 시간이 지나면 늘 그 숫자는 그대로다.
아무래도 큰놈이 새끼를 잡아먹는 것 같다. 
큰놈에게 그러지 말라고 겁도 주었지만 이놈들이 알까? ㅎㅎ

작은 유리어항에 갇혀 사는 것이 갑갑할 것 같아 돌 호박에 넣어 기르기로 했다.
골동품으로 가져다 놓은 돌 호박은 너무 무거워 두 명이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바닥에 모포를 깔고 끌어 베란다로 옮긴 뒤 거기 조약돌, 조개껍질 같은 장식품을 넣어 물고기 정원을 만들어 주었다. 
이놈들 살판났다. 유리어항에 갇혀 뱅뱅 돌기만 하다 호수에 나왔으니 이곳 저곳구경하며 마실가는 기분으로 돌아다니는 것 같다. 

문제는 햇볕 때문인지 돌 호박에 이끼가 자주 파랗게 낀다. 이걸 한번 청소하려면 호박과 장식품들을 세척제와 브러시로 이끼를 긁어내고. 씻고, 행궈 다시 정리하는 일이 여간 힘든일이 아니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다. 
꼬물이들이 얼어 죽을까봐 호박 주위에 종이 박스를 둘러두고 뚜껑도 덮어두었지만 호박이 차디차다. 꼬물이들도 거의 움직이지 않고 먹이도 잘 먹지 않는다. 호박을 거실로 옮기려니 힘들고 놔두자니 꼬물이들이 불쌍하다.
강에다 풀어주면 잡혀 먹히고 말텐데 이걸 어떻하지? 괜히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그래 유리 화병에 옮기자 
지난 가을 억새를 꽂아 두었던 높이 40cm 폭 25쯤 되는 장식용 화병이라 어항으로 해도 충분할 것 같다. 호박속의 장식물들을 깨끗이 씻어 화병 안에 넣어 놀이터를 만들고, 꼬물이들을 옮겨 놓는다. 

남은 10마리 모두 신났다. 좁은 어항이지만 몇 층짜리 놀이터를 옮겨 다니며 놀 수 있고 새끼를 숨길 공간도 충분할 것 같다. 
내 마음이 편하다. 사랑을 베풀었다는 생각, 차가운 돌 호박속에서 떨고 있을 꼬물이들을 생각하니 늘 마음이 안 편했는데 이제 사람도리를 한 것 같아 안심이다. 유리 꽃병을 위에서 옆에서 바라보며 꼬물이들의 움직임을 본다. 먹이도 잘 먹는다.  이런 판단을 실행한 내가 대견스럽다. ㅎㅎ. 

베란다를 밀고 들어오는 햇살이 밝다. 
꼬물이들에게도 햇볕을 쏘여주기 위해 햇볕드는 곳에 어항을 옮겨놓아 준다. 
베푼다는 것, 불쌍히 여긴다는 것...
이것이 사람이나 동물이나 물고기에게도 가져야 할 우리들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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