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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림자에게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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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초선생 2025. 8. 27.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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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말의 태양은 아직 정수리 위에 뜨거운데, 사람들은 벌써 가을을 노래합니다.  
해가 적당히 기울기를 더하면 점점 시원해지고, 단풍이 들고, 그러다 동짓날 해가 짧아지면  사람들은 또 지나간 봄을, 여름을 그리워하겠지요. 
 
요즘은 건강을 위해 아침저녁으로 걷기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퇴근 후 해질 무렵에 걷기 때문에, 서쪽하늘의 석양과 노을과  바람이 터치해 놓은 멋진 구름들을 자주 만납니다.   
자연이 만들어 낸 경이로움. 
그 풍경들을 보면 저는 무릉도원, 천국, 사후세계 같은 단어들이 떠오르고,
감히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힘 앞에 겸손해지고  '받아들임'을 배우게 됩니다.

석양을 뒤로하고 걷다 보면 긴 그림자가 나를 앞서 가는 것이 보입니다. 
해를 바라보고 걸으면 나를 볼 수 없지만, 해를 등지고 돌아보면 내가 보입니다. 
내 그림자가 그것입니다. 

내가 걸음을 멈추면 그림자도 서고, 내가 뛰면 그림자도 뜁니다. 
내가 춤을 추면 그림자도 춤을 추고, 내가 주저앉으면 그림자도 주저 앉습니다. 
나이가 들면 살아온 세월도 더 길어지듯이, 
해가 더 기울어지면 내 그림자도 더 길어집니다. 
문득 그 긴 그림자가 '나'이고, 내가 살아온 길이라라는 생각이 들 때면 섬뜩해 집니다.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말을 걸어봅니다. 
“너는 누구니? 어떤 사람이니?, 어떻게 살았어? 지금 제대로 살고 있니? 앞으로는  어떻게 살거야?” 
나와 붙어 있고, 나를 잘  아는 내 그림자가 하는 말, 나의 내면의 소리를 듣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늘 앞만 보며 달려왔습니다. 살아남고, 성공하고, 행복하기 위해서지요
앞만 보고 오다보니 내가 바르게 걸어왔는지, 지그재그로 왔는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석양을 등지고 돌아서 내 긴 그림자를 바라보듯이, 
은퇴의 시기,, 해가 기울기를 더하는 나이가 되면, 이제 내가 걸어온 길들을 되돌아 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과 방향을 정해야 합니다. 

남들은 젊은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하지만, 저는 지금의 나이 듦이 좋습니다. 
우선 가벼워져서 좋고, 평온해서 좋습니다. 
눈부신 여명보다, 눈이 편안한 석양과 노을이 좋고요, 
정오의 뜨거운 젊음도 좋지만, 하루를 마감하는 해질녘의 감사에서 행복감을 느낍니다.    
이게 바로, 우리 모두가 그려 가고 싶은 풍경이 아닐까요? 

저는 지금도 외국어를 공부 합니다. 출근하면서, 점심시간에, 퇴근시간에, 저녁에 산책하면서, 다문화친구들을 가르치면서요.
또 매일 루틴으로 몇 종류의 책을 나누어서 읽고,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영양가 없는 글도 타닥거려 봅니다. 
결국 이런 시간들은 제가 자양분을 얻고, 성장하고, 열매를 맺는 시간이고요, 그리고 나는 매일 새롭게 변화되어 가는 거지요.   

희안한건, 이제 세상을 다 알 것 같은데도, 책을 읽으면 또 깨우치는 부분이 있고, 기억력이 흐려지고 공부가 귀찮아질 나이임에도 꾸준히 하다보니 스스로 성장하는 것이 느껴지거든요. 콩나물 시루에 물을 부으면 물은 다 빠져 나가지만 콩나물은 자라듯이요. 

어느새 춘분-하지-추분-동지를 60여 번이나 겪으면서 나와 함께 했던 모든 것들도 다 바래가지만,  
저는 오늘도 성장하기 때문에 늙을 시간이 없고, 내 남은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을 살고 있습니다. 
꼰대처럼 나이 값 할 것도 없고요, 또 언젠가 사라질 것들에 욕심도 내지 않습니다.  

많이 가져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을 버림으로써 얻는 가벼움.
소유하되 싫증나지 않는 것들과, 할 일이 있어 하루하루 지루하지 않는 삶.  
호기심을 가지고 늘 낯선 문을 두드리고 낯선 걸음을 옮기며, 보헤미안처럼 건방진 여유와 멋을 즐긴다면,
나이가 들어도 (오래된) 소년처럼 늘 설레는 삶을 살수 있지 않을까요? 

"유초선생 잘 생각했어, 마음 편하지?, 앞으로도 쭉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사시게나"
석양에 길어진 내 그림자가, 가만히 나에게 속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