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첫날 벚꽃이 만개했다
도로변에, 산과 강변둑방길에, 공원에, 아파트에 온통 하얀 벚꽃 천지다.
커다랗게 뭉텅 뭉텅 피어있다.
시인은 하얀 벚꽃아래서 긴 편지를 쓰고 싶다고 했는데
난 긴 편지를 써도 받아 줄이 없어 .. 십 수 년 전 쓴 편지를 다시 꺼내 읽어본다.
(아래 편지는 일본 후쿠오카지역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나들이 구락부'와 국제교류를 하면서 주고받은 편지 원문입니다)
시즈코 누님께
“김중혁씨 소포입니다”
소포? 누가 보냈지? 보내줄 사람이 없는데?
응? 한자? ... 일본? ... 우와 ~ 시즈코 누나가 보냈네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소포를 풀어본다.
우와~ 예쁜 끈으로 묶은 선물과 (넥타이)
젊은 시절 받아 보고는 처음 받아보는 꽃 편지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말로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거야?”
누님 정말 감사합니다.
시즈코 누님!
꽃이 피는 봄입니다.
지난겨울 너무 추워서 봄이 오려면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계절은 때가 되니 또 제자리에 찾아와 목련, 개나리, 매화꽃을 피우고 있고,
벚꽃도 저렇게 꽃봉오리 가득 꽃물을 채우고 부풀어 있는 모습을 보니 곧 꽃망울을 터트리겠지요.
4월 4일 오늘 아침 일본방송을 들으니 일본에는 벚꽃이 만개했다고 하는데, 꽃이 북상하는 속도가 하루에 21km면 부산에는 1주일 후인 4월 10일 정도면 만개하겠네요. (편지를 보내는 4월 10일 오늘 만개했습니다)
누님! 일전에 한국에 왔을 때 보고 싶었던 누님을 만날 수 있어서 기뻤고, 무엇보다 누님의 멋진 모습과 열정에 감동했습니다.
변함없이 귀엽고(정말입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베르네 산골을 흐르는 맑은 시냇물처럼 경쾌하고, 자유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누님이 한편 부러웠습니다.
이번 일본 나드리 클럽(한국어로 ‘나들이’ 모임)의 사카구치 회장님을 비롯해 우치가와씨, 시보- 선생, 오노 간사도 만나게 되어 매우 기뻤고, 저도 그분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저가 일본어를 좀 더 잘 했더라면 더 즐거운 시간이 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오늘부터 누님은 한국어를, 저는 일본어를 더 열심히 공부해서 다음에 만날 때는 마음속의 이야기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지난번의 만남으로 누님과 훨씬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듭니다.
나들이통신을 보면 누님은 “한 달에 한번, 그것이 안 되면 두 달에 한번, 그것도 안 되면 석 달에 1번, 적어도 반년에 한번이라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1년에 한번은 절대, 절대, 절대 한국에 가자” 하셨더군요.
이제 자주 올수 있겠네요. 부산에 오면 한국의 동생이 있기 때문이지요.
부산 해운대 암소갈비가 먹고 싶으면, 자갈치 시장의 싱싱한 회가 드시고 싶으면, 한국영화가 보고 싶으면 ... 누님의 취미처럼 한잔하고 한국어로 마구 이야기하고 싶으면,
부담 없이 편하게, 동네친구를 만나러 가듯이 슬리퍼를 신은 채로 오셔도 좋습니다.
혼자라도 좋고, 남편분과 함께, 친구 분과 함께 오셔도 좋습니다.
나들이 클럽이 한국을 사랑하는 만큼 저도 일본을 좋아하고 사랑합니다.
비록 일본에 대해 아는 것이 적고 경험도 부족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일본은 좋은 자연환경과 예의 바르고, 정직하고, 친절한 사람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자랑스러운 것은 시즈코 누님이 일본에 계시다는 사실 ...
나들이클럽 여러분을 만났을 때 모두 자유로운 생각과 맑은 정신을 가지고 인생을 정말 즐겁게 사는 사람들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나도 나들이클럽 같은 모임을 만들어 국내는 물론 일본과 세계를 여행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고요.
국경을 초월해 말과 글이 다른 나라에 좋은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설레게 하는 일인지?
누님 덕분에 일본어를 더 잘 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또 한발 나아가 서로 도우는 길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꿈을 꾸지 않아도, 사랑하지 않아도 인생은 쌓여갑니다.
그러나 꿈을 꾸고 사랑하면서 살아가면 인생은 더 아름다워집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슴에 작은 정원하나 만들고, 거기에 봄에 피는 복수초, 민들레, 매화 그리고 아름다운 꿈을 심고 길러간다면, 우리 인생의 정원에서는 항상 맑고 깊은 향기가 나겠지요.
누님! 더 예뻐지시라고 화장품 하나 보냅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추신 : 한국어와 일본어의 언어의 맛이 다르기 때문에 이해가 되실까 염려됩니다.
다음엔 메일로 제 사진과 에세이도 하나 보내겠습니다.
(2012. 4.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