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봄을 맞으며...

카테고리 없음

by 유초선생 2024. 3. 16. 12:10

본문

꽃이 피었다 

출근하는 강변 길가에 팝콘처럼 토독토독 매화도 피고.   
아파트 화단엔 산수유도, 개나리도, 목련도 피었다. 
봄이 온 모양이고, 풀도 나무도 꽃도 앞다투어 봄을 부른다. 

봄이 오고 꽃은 피건만 그런데 올핸 도무지 느낌이 없다. 
겨울을 이기고 생명으로 찾아오는 꽃에 대한 기대가 커서일까? 
아니면 나의 마음이 굳어져 버린 것일까? 
하기야 온 겨울이 있어야 올 봄도 있을 텐데 
요즘 시절이 하 수상하다보니 계절도 흐리멍덩하여 어디서부터가 봄인지도 모르겠고 
꽃이 피니 봄 인줄 알기는 하지만 
작년처럼 날카롭게 가슴깊이 파고드는 느낌이나 애절함을 느끼지 못하는게 비단 나 만일까? 

“뉴.스.가.~ 뉴.스.다.워.야~ 뉴.스.지!” 
그래 역시 겨울은 겨울다워야 하고 
매화는 추위 속에서, 춘설을 이고, 지조 곧은 선비나 절개를 지키는 여인처럼 
사람들 가슴속에 뭔가 의미를 주면서 피어야 매화지 
날씨 따뜻하다고 지나 개나 핀다면 
봄이 되어 지천으로 피는 그냥 봄꽃과 무엇 다를 바 있겠는가 말이다? 

하긴 매화가 무슨 죄가 있겠나? 
겨울이 겨울답지 않다고 내가 그래도 매환데 함부로 꽃을 피울 수 없다며 안 필수도 없고 
매화가 기분 나쁘다고 도화가 되어 필수도 없는 법. 
똥 뀐 놈이 성낸다고 
혹시 문제는 나 자신한테 있는데 괜히 매화한테 화풀이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작년 후반기를 영 신통찮게 살다보니 삶의 의미마저 잃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희미한 세상과 벗하여 살다보니 나의 세상 보는 눈마저 희미해져 버린 것인지, 
자학이라도 하는 양, 
그런 놈이 무슨 지조를 논하고 절개를 논하랴 하면서 의도적으로 고개를 돌리다 보니 
매화란 존재가 나 같은 놈은 다가갈 수 없는 차원 높은 경지가 되고 말았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올핸 작년에 들렸던 토독토독 꽃망울 터지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밤새 몇 개의 꽃망울이 터졌는지 헤아려 보지도 않게 되어버린 것이 조금 서글프다. 

오늘 아침엔 무척 햇살이 맑다. 
베란다를 밀고 들어오는 햇살에 60을 넘긴 을 아저씨 볼이 따스하다.  
두 팔 벌려 가슴가득 햇살을 안아 보다가 문득 고3 여름 방학때 설악산 백담사 입구 강가에서 아침 텐트를 열고 나올 때 비쳐왔던 그 맑고 투명한 햇살을 추억해 내고는  
퍼뜩 커피 한잔을 만들어 들고는 햇살을 즐겨본다. 

햇살은 영혼을 치료하는 능력이 있다 
실오라기처럼 맑고 투명한 아침 햇살을 보면, 그 햇살이 렌토겐처럼 내 몸속 깊은 곳을 투과하며 나의 병든 몸과 마음과 영혼까지도 치료하는 것을 느낀다.   

(햇살이 아까워) 지난 설날 선물로 받은 책 한권을 꺼내들고 베란다 테이블에서 읽으며 커피와 함께 분위기를 연출해 본다. 
연출 ?? 
정말이지 어쩌면 난 그렇게 해서라도 잃어버린 나를 찾고 싶었는지 모른다. 

언젠가 나에게도....맑디 맑았던 영혼이 있었다고 기억되는데 
지금은 내가 미워서 떠나버렸는지 잠시 외출했는지 찾을 수가 없고 
다만 뿌옇게 흐린 멍청한 영혼만이 머릿속에 꽉 차있다 보니 생각도 흐리고 글도 잃어버렸다.  

그런 내가 매화를 보며 지조, 절개, 인내, 생명력을 이야기 한다는 것 자체가 한마디로 언어유희이고 
"매화가 최소한 이런 정도는 되야 매화지" 하고 기대한다는 것 역시 매화로부터 
“너나 잘 하세요”라고 핀잔을 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늘의 내 모습에 정신이 번쩍 든다. 

그래 내 탓이다 
매화가 무슨 죄가 있는가? 
지금의 내 흐릿한 영혼으로 매화를 바라보니 느낌이 없었던 것이지 
지금 막 꽃망울을 터트리며 피는 그 매화, 그 목련은 오늘도 많은 사람들에게 날카롭게 가슴을 파고들며 어떤 의미를 주었을 테고 
때론 연애편지의 첫머리를 장식하며 사랑의 꽃을 피우게 했을지도 모른다.  

이번 주말엔 매화도 만나고 목련에게도 악수를 청해야 겠다. 
맑은 햇살에 눈과 귀를 씻고, 맑은 눈과 귀로 바라보고 들으면, 작년에 들렸던 꽃들의 이야기가 다시 들릴런지도 모르겠다. 

순면의 부드러운 봄바람에 부드러워지고
연한 매향이라도 묻혀 올수 있다면 우리 인생도 좀 더 향기롭고 고상해 지지 않을까? 

728x90